[법률방송뉴스]
▲석대성 기자 (진행자)
61년 만에 무죄가 선고된 사건, 최말자 재심 사건을 다뤄봅니다.
1964년 성폭행을 피하려다 가해자의 혀를 물어 중상을 입힌 한 여성이 유죄를 선고받았다가, 올해 마침내 '무죄'로 선고가 바뀌었습니다.
법무법인 율샘 허용석 변호사와 이 사건의 전말과 의미를 짚어봅니다.
변호사님, 우선 사건 경과를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허용석 변호사 (법무법인 율샘)
네, 최씨는 만 18세였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 씨의 혀를 깨물어 1.5cm가량 절단되게 한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중상을 입힌 것을, 당시 법원은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고 '중상해죄'라고 판단했는데요. 더 황당한 건 성폭행 미수범이었던 노씨에게는 강간미수를 제외한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적용해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는 겁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진행자
이 사건이 당시에도 굉장히 논란이 됐었다고요.
▲변호사
네, 최씨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했고, 이후 해당 사건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는 등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었습니다.
▲진행자
60년, 긴 세월인데 최씨가 해당 판결이나, 당시 사회 분위기상으로나 상처가 상당했을 것 같아요.
▲변호사
가해자 노씨는 강간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 특수협박으로만 처벌받았기 때문에 최씨는 무려 61년 동안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중상해죄를 범한 범죄자로 낙인찍혀 살았고요. 일상에서 수많은 차별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진행자
결국 재심이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요.
▲변호사
올해 재심 공판에서 검찰이 "본 사건에 대해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무죄를 구형했고, 결국 재심 법원이었던 부산지법도 최씨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하게 됐습니다. 61년 만에 뒤늦게나마 최씨의 억울함이 풀린 거죠.
▲진행자
그런데 재심 청구에 관해서는 대법원까지 간 이후에 재심 청구가 인용됐다고 하는데, 이 부분도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변호사
재심이 청구되면 재심 사유가 인정되는지 먼저 따져서 재심 사유에 해당하면 청구를 인용하고 다시 본안 심리를 시작하게 됩니다. 즉, 최씨의 경우 재심 청구가 인용돼야 다시 재판을 통해 유·무죄를 따질 기회를 얻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씨는 사건이 있은 지 56년 만인 2020년 5월 '검사의 자백 강요' 등의 이유를 들어 재심을 청구했으나,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이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즉 재심을 개시할 이유가 없다고 본 거죠.
그러나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최씨 주장이 맞다고 볼 정황이 충분하고, 법원 사실조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부산고법은 올해 2월 최씨의 중상해 사건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를 인용했습니다.
▲진행자
뒤늦게 1심과 2심에서 재심 청구를 기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변호사
재심 청구 기각의 주요 이유는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 "법률 해석과 적용 오류를 지적하는 원고 측의 주장도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는데요.
그런데 형사소송법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 판결로 증명된 때'를 재심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수사기관이 당시 수사 과정에서 직무에 관한 범죄를 저질렀고, 이것이 확정 판결을 통해 증명돼야 재심을 개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형사소송법 422조는 '그러한 직무에 관한 범죄의 확정 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한 경우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대법원에선 당시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된 상황에서 조사를 받았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수사기관이 직무와 관련한 범죄를 저지른 것인데요. 그 범죄에 대해선 현재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확정 판결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됐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422조의 '그 확정 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해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재심 사유에 해당해 대법원이 재심 청구가 적법하다고 본 겁니다.
▲진행자
어쨌든 재심 청구가 인용된 건 최씨 입장에선 정말 다행일 텐데, 그럼 당시 법원은 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걸까요.
▲변호사
당시 법원은 '위험에서 벗어난 뒤에도 과도하게 반격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심하게 혀를 깨물었다'는 논리였죠.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가해자에게 가장 적은 피해를 주면서 도망쳐야 할 의무를 성폭력 피해자에게 부여한 것인데, 지금 기준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입니다.
성폭력 상황은 피해자가 안전하게 벗어나기 전까지 계속되는 현재의 침해이고, 이에 대한 피해자의 합리적인 저항은 정당방위로 보는 게 맞겠죠. 성폭행 당시의 상황이 아닌, 이후의 시점에서 여러 가능성을 상정해 저항이 과도했다고 인정해 버린다면, 급박한 위법 상황에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저항의 범위가 지극히 협소해지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당시 판결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할 겁니다.
당시 판결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지금은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나요.
▲변호사
본인이 피해자 신분이라 하더라도 사건 사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기본적인 조건으로는 ①현재의 부당한 침해 ②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 ③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즉, 상대방의 현재 불법적인 공격으로부터 자신이나 타인의 법익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서, 그 방어 행위가 침해 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정도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제 공격받았거나 미래에 공격받을 것을 예상하는 것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또 상대방의 공격을 제압하고 나면 더 이상 '현재'의 침해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방어 행위는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 신체, 재산 등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보복하거나, 공격 의사를 갖고 먼저 공격하는 행위는 정당방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침해 행위에 비해 과도해선 안 됩니다. 방위 행위의 상당성 여부는 침해 행위의 종류, 침해의 정도, 침해 방법, 침해 행위의 완급 등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윤리적 기준에 부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뺨을 때리려는 것을 막기 위해 상대방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건 '상당한 이유'가 없는 과도한 방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진행자
당시 판결은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는 게 과도한 저항이었다고 본 건데, 노씨가 이 사건으로 장애를 갖게 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 궁금한데요.
▲변호사
당시 수사나 재판 경과를 찾아보면 가해자 노씨가 이 사건으로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까지 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씨가 언어 구사 능력을 잃거나 장애인이 되진 않았고, 신체검사 1등급으로 군 복무도 잘 마쳤으며,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낳아 잘 살았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서요. 피해자의 저항 행위로 장애나 기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되진 않습니다.
▲진행자
이번 무죄 판결이 갖는 의미는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변호사
가장 큰 의미는 사법 정의의 회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못된 판결로 고통받아온 개인이 자신의 명예를 되찾은 사건이기 때문에, 본 판결로 인해 사법 정의가 회복됐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법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극복됐음을 선언한 것이란 의미도 있겠습니다. 물론 최근 판례는 최씨의 과거 판례와는 다르게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의 방어 행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그 이전부터 형성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사회적 합의가 본 판례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로 과거사 청산 의미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즘 과거사청산위원회에서 과거 자행됐던 국가적 범죄에 대해 국가 주도로 이를 조사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본 사건에서 과거의 검찰이나 법원의 판단을 국가적 범죄라고까지 보긴 어려운 면도 있겠으나, 분명 잘못된 판단이었고, 이에 대해 법원은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 무죄를 구형하는 방식으로 과거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았는데요. 국가가 자신의 과오를 직접 인정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과거사 청산과 그 취지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행자
정당방위에 대한 해외 사법기관의 판단도 궁금한데요.
▲변호사
2년 전쯤 멕시코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저항 과정에서 가해자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정당방위로 인정돼 무죄가 선고된 바 있고요.
미국이나 유럽 국가도 피해자의 저항권을 폭넓게 인정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방위 행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합리적인 믿음에 근거해 방위 행위가 이뤄졌다면 일반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스다코타주 대법원의 판례는 '방위 행위가 정당화되기 위해선 정당방위 행위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긴 행위자의 믿음이 합리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 때의 합리성은 합리적이고 사려깊은 사람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관점에 입각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즉, 범죄 상황에서의 저항이 필요하다는 피해자의 믿음을 기준으로 저항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 미성년자였던 최씨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것도 야간에, 가해자로부터 강제로 성폭력을 당하는 상황이었다면 최씨가 선택한 저항 방법은 당시 위법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합리적인 저항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판결은 수사기관이나 판사의 기준에서 당시 죄씨의 방위 행위가 합리적이었는지를 판단한 것으로는 부당하다 할 것입니다. 또 1960년대가 상대적으로 여성 인권이 경시되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음에도 최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설사 수사기관이나 판사의 입장에서 판단했더라도 충분히 무죄 판결이 선고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진행자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법원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변호사
향후 파급 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첫째, 성격이 유사한 성폭력·가정폭력 사건뿐 아니라 일반적인 범죄에서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 범위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간 법원의 정당방위 인정 범위가 너무 좁다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피해자가 범죄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 안전과 권익을 지키기 위한 저항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둘째, 재심 제도의 활성화입니다. 과거 형사사건에서 다른 억울한 사건으로 처벌받은 분도 많으실 텐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심이 활성화돼 재심을 통해 잘못된 수사나 판결을 바로잡아 억울함을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더 크게 열릴 것을 기대해 봅니다.
▲진행자
'최말자 재심 사건'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여성의 무죄 판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