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화제의 사건이나 사회 현안을 인물을 통해 조명하는 시간, ‘피플’입니다. 고 장제원 전 의원의 성폭력 혐의 사건이 장 전 의원의 사망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입니다. 경찰은 그동안의 수사 결과 또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나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받지 못한 피해자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연 죽음은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피플’에서는 장제원 전 의원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장 전 의원 사망 소식을 들었던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 김재련 변호사
그 소식을 아는 기자분이 링크도 보내주시고 수사관님도 새벽부터 부재중 전화 와 있는 것을 보고 통화하면서 확인하게 됐는데요. 약간 진공 상태 같았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멍하고 모든 게 약간 멈춰져 있는 것 같은... 그런데 그 순간에도 ‘피해자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피해자가 오랜 기간 이 사건에 대해서 혼자 힘들어하다가 이 사건이 본인의 일상을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 힘들게 한 부분이 있어서 결국 용기 내서 고소한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뉴스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어서 혹시라도 또 이런 충격적인 소식이 피해자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그게 무척 걱정됐어요.
Q. 피해자분도 많이 놀랐을 것 같은데,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 김재련 변호사
(고소하기 전) 9년까지의 삶도 힘들었거든요. 그렇지만 일상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애써서 살아왔었죠. 조금 덜 힘들기 위해서 고소했던 건데 또 이런 상황이 생기다 보니까 일상을 유지하는 데 써야 하는 에너지가 훨씬 더 많아졌을 것 같아요.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본인만 생각하면 일상을 다 중지하고 어딘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해야 하는데 피해자분이 꾸려나가야 하는 삶이 있으니까 벗어날 수 없잖아요. 책임감이라든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애를 쓰고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고 계시죠. 그래서 저는 많은 분의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피해자분이 고소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김재련 변호사
이 사건 피해자가 저를 처음 찾아왔던 건 2022년 2월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앉았던 이 자리에서 3시간 가까이 본인이 겪은 피해와 그 후 삶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를 이야기했고요. 보통은 성폭력 사건의 경우, 특히 만취한 상태에서 피해를 본 경우에 많은 사람이 믿어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확보되기가 참 어려워요. 성폭력의 특성상. 그런데 이 사건 피해자는 다행히 객관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고소 가능하다, 고소하게 되면 지원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고 고민해보고 말씀 주시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못 하시더라고요. 그때 어머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셨어요. (고소) 안 하시겠다고요. 그 이유가 너무 두렵다고 하셨어요. 가해자가 특정 지역에서 굉장한 권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가해자 한 명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너무 많아서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또한 고소 시 여러 불이익을 입게 되고 공격받을 수 있다는 그런 두려움을 말씀하셨거든요.
그러고 나서 작년 가을에 피해자가 다시 저에게 연락이 온 거예요.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그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피해자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그런 기억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요.
그래서 법률적인 부분을 설명해줬죠. 공소시효가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준강간 같은 경우에는 10년이거든요. 이 사건이 15년 11월 18일경에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올해 11월 17일이 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거든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걸 고려하면 만약 고소할 생각이 있다면 공소시효를 고려해야 한다고 얘기했고, 이후에 피해자가 결심하고 고소한 거죠.
Q. 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기까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어떤 힘든 일을 겪었는지?
▲ 김재련 변호사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사실관계가 분명하게 자리매김이 되고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이렇게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절차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았을 때 피해자가 겪는 고통이나 분노는 상당하거든요.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에 아주 힘이나 권력의 차이가 큰 경우에는 피해자가 자존감에도 큰 상처를 입히게 되고요. 존엄성이 훼손되었다는 부분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인정하지 못하고 비하한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스스로 해를 가하는 심리상태에 이르게 되거든요.
결국은 피해자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다 보니까 그다음에는 계속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오래 할 수가 없게 되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피해자는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힘든 상황이 되고 결국은 사건에 대한 고통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고소한 죄명이 준강간이 아니라 준강간치상으로 고소를 한 거거든요.
치상이라고 하는 게 성폭력 당시에 신체 손상을 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폭력 등 불법 행위의 충격이 피해자에게 분노라든지 불면 같은 트라우마를 일으켰을 때, 그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또한 우리 판례는 강간치상에서의 상해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 김재련 변호사
성폭력 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는 공소시효를 가지고 있거든요. 시효 기간 내에는 언제든지 피해자가 고소할 수 있고 수사기관의 수사에서 죄가 되면 기소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잖아요.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신고하나, 공소시효 기간 내에 몇 년이 지난 다음에 고소하나, 그것은 피해자의 권리인 것이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로 신고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에요.
피해자는 왜 즉각 고소를 못 할까? 저는 우리 사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고소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았는데 참다가 결국은 안 될 것 같아서 고소했을 때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라고 생각하지는 못할지언정 왜 이제야 고소하냐고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고 그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상처인 거죠.
성폭력 사건 자체에 대한 편견,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문제를 드러냈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장착하고 피해자를 공격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이것을 피해자들은 기존에 다른 사례들을 통해서 너무나 선명하게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문제 제기를 못 하는 거예요. 내가 피해자라고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피해자의 안전을 지켜주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하는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고 사법기관을 통해 판단된 내용에 대해서 가해자가 아무리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지지자들이 인정한다면,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죠.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는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피해자가 오랜 기간 ‘나 하나 참고 넘기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참기로 하고 고소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해자를 용서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거든요. 10년이 지났든 20년이 지났든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고소했다면, 그것은 피해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지해주고 응원해 줘야지 ‘왜 이제야?’라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가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고 그 사람하고 인연을 맺은 가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또는 사회적으로 관계 맺음을 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또는 지지자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가슴 아픈 선택인 건데 애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분에 대한 애도를 넘어서서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태도나 행동들이 결국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고소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내가 고소했다가 상대방이 그런 선택을 해버리면 그 부담감까지 어깨 위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렇게 수사 중에 극단적 선택을 하시는 분들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고요. 수사 중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행동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나쁜 반칙이라고 생각해요. 본인 삶에 대한 결정은 본인이 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해서 수사 절차가 진행 중이라면 적어도 그 절차에서는 최선을 다해 임해 주는 것이 그나마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Q. 사건을 ‘정치적 논쟁’에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김재련 변호사
잘못된 행태라고 힘주어 말씀드리고 싶어요.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력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거든요. 이미 발생한 위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 예를 들면 안희정 사건의 김지은씨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씨는 지금도 유튜브에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주된 이유는 가해자들이 상당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많은 지지자를 두고 있었는데, 그 지지자들이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을 공격하고 있고요. 심지어 안희정 전 지사 같은 경우에는 유죄 확정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온·오프라인에서 계속 공격하는 메시지들을 내고 있거든요. 저는 이걸 멈추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소속돼 있던 정당에서 당 차원에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만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해자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가해 행위를 멈출 수 있게 되거든요. 공격의 사인을 줬으면 멈추라는 사인도 주는 것이 공당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국민의힘 같은 경우에는 박 전 시장 사건이나 안 전 지사 사건에서 굉장히 민주당을 공격했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의지를 가진 것처럼 얘기했었거든요. 그러면 가해자가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장제원 사건에도 마찬가지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서 악용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장 전 의원 사망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한다는 경찰 발표가 나왔습니다. 수사 결과도 발표하지 않겠다고 하는데요.
▲ 김재련 변호사
사회적으로 이슈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서 중간 수사 단계도 브리핑하고 수사 결과도 발표하고 하는 그런 사례들이 있거든요.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국가수사기관이 보호해야 할 한 명의 성폭력 피해자가 있잖아요. 피해자가 고소했는데 가해자가 사망함으로 인해서 실체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수사를 진행해서 기소할 수 있는 수사기관의 권한이 오히려 강제적으로 ‘멈춤’ 버튼이 눌러진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가해자에 의해서 수사기관의 책무가 좌지우지되는 것은 맞지 않잖아요.
그러면 저는 적어도 실체·진실 발견과 피해자 보호를 통한 정의 수호를 존재 이유로 하는 수사기관이라면 수사 중에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수사기관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사 결과를 발표해 주시길 바라고요.
수사 결과 발표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고소한 이 사건이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지금까지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 수사를 통해서 확보한 추가 증거 자료들을 통해서 혐의 유무를 판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 사건사무규칙도 그렇고, 경찰 수사규칙도 그렇고 수사 중에 피의자가 사망했을 때는 공소권 없음을 하도록 규정은 하고 있는데, 사망했으니까 기소할 수 없잖아요. 유령을 재판받게 할 순 없으니까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사가 바로 중지돼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규정돼 있는 것도 아니고요. 범죄 혐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실체적인 판단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피해자의 권리와 일상 회복을 위해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할까요.
이런 권력형·위력 성폭력 사건을 인제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 사회는 가해자 중심주의인 것 같습니다. 가해자를 이렇게 신줏단지처럼 가운데에 모셔놓고 가해자에게 질문하고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질문하고 추궁하거든요. ‘정말 피해를 입었나’, ‘왜 그때 고소하지 않았나’,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 ‘여태 참았는데 왜 이제야 고소하느냐’ 등 끊임없이 피해자에게 묻고 추궁하고 비난하거든요. 저는 이런 질문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나의 절친한 친구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라고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만 바꾸어도 피해자는 이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돌덩이를 내려놓고 일상생활을 견딜 힘을 얻을 수 있거든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지금까지 고소하지 못했겠지, 어렵게 용기 냈으니까 잘 진행돼서 피해자 마음이 좀 풀리면 좋겠다. 이런 응원의 마음과 메시지를 주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는 일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거든요. 그런데 반대되는 시선을 우리가 보내니까 결국은 피해자의 무거운 어깨 위에 우리 편견까지 올려놓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저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고,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많지 않지만, 상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 보통의 시민에게 기대하는 것은 커요. 바라보는 시선만 바꿔주셔라... 가해자를 향해야 할 비판의 화살이 피해자에게 향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