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되지 않는다"... 유해용과 허경호 판사 3천600자 역대급 영장 기각문, 무신불립(無信不立)
"죄가 되지 않는다"... 유해용과 허경호 판사 3천600자 역대급 영장 기각문, 무신불립(無信不立)
  • 유재광 기자
  • 승인 2018.09.21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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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호 영장전담부장판사,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 유해용 전 판사 영장 기각
이례적으로 혐의별로 기각 사유 밝혀.. "범죄 성립 의문, 증거인멸 염려 없어"
검찰 "그동안 기밀이라던 대법원 자료가 비밀 아니라니... 기각 위한 기각 사유"

[법률방송뉴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일까요, 아니면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이 더 적절한 표현일까요.

공무상비밀누설과 직권남용, 절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 밤 늦게 법원에서 기각됐습니다.

오늘(21일) ‘앵커 브리핑’은 통상 한두 문장에 그쳤던 것과 달리 무려 3천600자에 달하는 우리 법원의 ‘역대급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어제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자신이 부장판사로 근무했던 서울중앙지법에 나온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 미묘해 보였습니다.

살짝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여기서 왜 기자들의 이런 질문을 듣고 있어야 하지’하는 떨떠름함과 짜증도 섞인 것 같은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표정.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대법원 기밀자료 수만 건을 무단 반출한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수사가 시작되자 관련 자료들을 모두 파기해 파문과 의혹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적용된 법적인 혐의는 모두 6가지입니다.

구속 여부 심리를 맡은 허경호 영장전담판사는 이례적으로 각각의 사안과 혐의들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를 일일이 다 밝혔습니다.

먼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선 “대법원에서 들고 나간 문건 자체가 '일반적 문서‘에 불과하고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비밀’이 아니니 ‘비밀 누설’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들고 나간 자료가 파일 형태여서 이를 보존가치가 있는 공공기록물 ‘원본’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로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절도 혐의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로 “전자문서 파일은 절도죄의 객체가 되는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절도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보고서에 기재된 사건번호와 이름만으론 개인을 식별할 수 없다”며 혐의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기각했습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문건 작성을 지시한 행위 자체가 위법하다거나 지시에 부당한 목적이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근무 시절 대법원에서 접수된 숙명여대-캠코 72억원 반환 소송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해 직무와 관련된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최종 결론은 결국 “구속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입니다.

기각사유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와 ‘압권’은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이 대법원 자료를 파기한데 대한 법원 판단입니다.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존재하므로 관련 문건을 삭제한 것을 들어 증거인멸을 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허경호 영장전담부장판사의 말입니다. 

“죄가 되지 않는다”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사법농단 재판거래 혐의 피의자로 영장심사를 받은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이 “억울하다”며 자신의 “안위”를 궁금해 하는 현직 판사들에 보낸 메일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실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같은 표현으로 영장이 기각된 겁니다.

허경호 판사는 그러면서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허 판사는 앞서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거주지와 대법원 근무 시절 사무실, 현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모조리 기각한 바 있습니다.

그 사이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관련 자료를 모두 파기했습니다.

변호사들 얘기를 들어보니 ‘범죄 성립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정도로 기각할 걸로 예상은 했지만 ‘죄가 되지 않는다’나 더구나 이미 벌어진 상황이 있는데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사유까지 달아 영장을 기각할지는 정말 예상 못했다는 반응입니다.   

검찰 반응도 한마디로 ‘진짜 해도 너무 한다’입니다.

“영장 판사가 낸 장문의 기각 사유는 어떻게든 구속 사유를 부정하기 위해 만든 ‘기각을 위한 기각 사유’에 불과하다”는 게 검찰의 성토입니다.

“그동안 재판 관련 자료는 ‘재판의 본질’인 기밀 자료라며 들여다보지도 못하게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해 왔으면서 이젠 똑같은 자료를 두고 비밀이나 기밀이 아니라고 하는 게 말이나 되냐”는 격앙된 모습입니다.   

세 차례의 압수수색영장 기각과 어제 구속영장 기각까지.

허경호 판사, 야구로 치면 일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한 경기에 1루타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때려낸 ‘사이클링’히트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공자가 논어 ‘안연’편에서 국가와 정치에 대해 한 말로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법원의 존재 이유는 무얼까요. 우리 법원은 존립할 수 있을까요. 무신불립. 일련의 영장 기각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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