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화제의 사건이나 사회 현안을 인물을 통해 조명하는 시간, ‘피플’입니다. ‘디스커버리’란 재판 전 당사가 간 증거와 서류를 공개해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를 가리키는데요. 최근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해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 ‘피플’에서는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 대표 변호사를 만나 디스커버리 제도 관련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Q. 간단한 인사 말씀과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김주영 변호사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주영 대표변호사입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2000년도에 설립돼서 올해로 한 25년 됐고요. 그동안 주로 투자자들하고 소비자들 집단 피해에 대한 구제를 담당해왔습니다.

Q. 디스커버리 제도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신다면요?

▲ 김주영 변호사

디스커버리 제도는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증거 개시 제도’라고 하는데요. 소송이 제기된 다음에 변론 시기까지, 변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증거가 집중적으로 현출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판사가 관여하기 전에 당사자들의 협조하에 서로 가지고 있는 문서들을 다 내놓고 잠재적인 증인들에 대한 예비심문도 이루어지는 그런 절차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계시는데요. 디스커버리 제도, 왜 필요한가요.

▲ 김주영 변호사

저도 변호사를 하게 된 지 30년이 넘었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재판은 진실이 이기기보다는 증거를 가진 쪽이 이기는 재판입니다. 아무리 내가 억울해도 내가 증거가 없으면 상대방이 본인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증거를 가진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재판이고요. 그러다 보니까 충분히 증거가 나오지 않고 증인신문도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증거에 의한 재판보다는 법관의 소신 혹은 선입견에 의한 재판, 굉장히 주관적이거나 신념에 따른 재판이 많아지기 때문에 객관성이 결여되는데요.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증거가 충분히 현출되기 때문에 증거에 의한, 또 진실이 드러난 가운데 재판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할 때 발생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면요.

▲ 김주영 변호사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증거 아니겠습니까? 변호사가 아무리 변론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증인의 증언 한마디로 승패가 갈라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증거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이 이루어지다 보니까 공정한 재판이 안 되죠.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우선 재판의 공정성과 판결의 적정성이 증진된다고 볼 수 있고요. 사실 변론 전에 증거가 충분히 현출되면 어느 정도 서로 알게 돼요. 아, 이 재판은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되겠구나.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건이 중간에 ‘화해’로 끝날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신속하고 경제적인 해결이 가능하기도 하고요. 그다음에 증거의 현출 과정에서 법원이 개입하기보다는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하기 때문에 법원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디스커버리 제도가 변호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까요?

▲ 김주영 변호사

재판의 주도권이 법원에서 사실은 변호사들한테 옮겨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판결문까지 가잖아요. 그런데 디스커버리를 하게 되면 재판부의 관여가 거의 없이 당사자들끼리 서로 증거를 교환하고 예비심문하고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저도 미국 유학을 마친 다음에 디스커버리 제도 일환으로 증언 녹취, ‘데포지션’이라는 걸 한번 참석을 해봤는데 판사가 없어요. 상대방 변호사, 우리 측 변호사, 증인과 속기사만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는 최장 7시간까지 신문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신문 사항 제시 없이요. (신문을) 7시간 하니까 거짓말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핵심 증인에 대해서 이렇게 데포지션(증언 녹취)을 하게 되면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변호사들 업무는 많이 늘어나겠죠. 이점은 뭐냐면, (재판) 과정에서 화해로 끝나기 때문에 항소까지도 가지 않고, 그러니 소송이 빨리 끝나고 당사자들도 납득할 수 있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진상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려진 판결을 어떻게 납득하겠습니까? 당사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변호사들은 진실 규명에 주도적으로 관여하게 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사법부의 사법 자원이 상당히 절약될 수 있습니다.

Q. 최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서 디스커버리 제도 관련 세미나를 열었는데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 김주영 변호사

세미나는 상법 개정이랑 좀 연결이 돼 있는데요. 상법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자’, 다시 말하면 이사가 종전에는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있었는데,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도 명확히 하자는 것이 상법 개정안의 취지입니다. 이사들이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서 소수 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취지로 추진하는데, 재계가 굉장히 반대합니다. 금감원장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하는 대신) 배임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배임죄를 없애 형사 책임을 면하게 해준다는 건데, 그러려면 민사책임은 좀 더 실질적으로 추궁 가능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현재 기업 측이 증거를 독점하고 있다 보니까, 저희도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해봤습니다마는 증거가 안 나와요. 회사 내에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요. 현실적으로 이사의 민사책임을 물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통한 민사책임의 실질화 등을 주장하고 논의하기 위해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Q. 해당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하셨습니다. 관련해서 2017년에 ‘애플 배터리 게이트’ 사례를 들어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셨다고요.

▲ 김주영 변호사

2017년 말에 애플에서 아이폰의 운영체계인 iOS를 업데이트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소비자들한테 고지하지 않았습니다. 배터리가 일정 이하로 떨어지게 될 때 기기 성능을 일부러 저하시켜서 배터리를 덜 닳게 하는 기능이었는데요. 그 사실을 미리 고지했으면 좋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까 소비자들은 ‘아이폰이 오래돼서 그런가? 바꿔야겠네’ 이렇게 된 겁니다. 사실은 바꿀 필요가 없고 배터리만 교체하면 되는데요. 그것을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라고 하는데 이게 발생한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소송이 진행됐습니다.

미국에서도 집단소송이 제기됐는데 미국에서는 소송을 제기하고 1년도 채 안 돼 디스커버리가 진행되면서 애플 측에서 750만 장 이상의 문서를 제출하고, 모든 관련 직원들의 명단을 제출하고, 그 사람들에 대한 사전신문 증인신문 비슷한 것, ‘데포지션(증언 녹취)’이라고 합니다만 그것들이 다 진행이 된 겁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재판에 가지 않고 화해가 된 거죠. 그래서 5억 달러 배상 합의하고, 한 300만 명 이상에게 1인당 한 65달러에서 90달러씩 배상이 이루어졌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똑같은 피해자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소송이 제기됐는데요. 우리나라는 집단소송이 없으니까 공동소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서 제출 명령을 했는데도 제출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제재가 별로 실효성이 없으니까요. 결국은 1심에서 패소하고요. 심지어는 1심 막판에 애플 측에서는 이 업데이트를 소비자들이 과연 언제 했는지를 입증하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애플이 문제점을 밝힌 이후에 업데이트했을 수도 있지 않냐, 그것을 우리한테 입증하라는 거예요. 소비자들한테. 그런데 입증을 못 하니까 1심에서는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정보는 소비자들한테 없는 거예요. 입증 불가능한 거예요. 기술적으로 오히려 애플 측이 정보를 다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아이폰 사용하시는 분들은 업데이트를 언제 했는지 애플 측에 정보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우리한테 입증하라고 한 것입니다.

2심에서 그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법원에서 애플 측에 요구하니 그제야 밝혔습니다. 그래서 1인당 7만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만,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나라에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기 때문에 똑같은 사건에서 똑같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신속하게 배상이 이루어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피해자가 배상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죠.

Q.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국내에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특별히 고려하거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 김주영 변호사

소송제도라는 것은 굉장히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민사 사건 배심 제도도 아니고 문화적인 것도 다르고 변호사 업계 시장도 다르기 때문에 미국의 디스커버리에 관한 조항들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갖다 놓는다는 건 안 됩니다. 한국의 디스커버리라고 하면, 제가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이미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의 그 이상을 담은 제도들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에 많이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실심의 충실화라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법제도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각하 제도도 도입되고, 변론 준비 절차도 도입되고 이런 것들이 추구하는 바가 디스커버리 제도랑 비슷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이유는 강제력이 없어요. 만약에 문서목록제출명령 제도를 도입했어요. 그게 뭐냐면 가지고 있는 문서의 목록을 다 제출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출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가 있지 않아요. 문서제출명령을 불이행해도요. 미국의 경우에는 제재받습니다. 사법 모독으로 처벌도 받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문서제출명령을 불이행했다고 해서 큰 불이익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있는 제도를 충분히 디스커버리 제도의 취지에 맞게 개선하면 된다. 현재 민사소송법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 부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Q. 영업 비밀 유출이나 남용 가능성 등 디스커버리 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김주영 변호사

미국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굉장히 성공적으로 평가받다가 최근 한 20~30년 동안에 이메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특히 기업이 관련된 대형 소송에서 디스커버리 관련 비용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인 것들이 있는데, 사실 우리는 미국하고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앞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기존의 민사 소송제도를 개혁하는 방식으로 하게 되면 미국에서 보이는 부작용들은 많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나라도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익 특권을 도입한다든지 하는 보완은 이루어져야 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아직 부작용을 우려하기는 조금 이르다, 지금은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재판 문제가 급선무다. 이것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Q.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비롯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여쭤보겠습니다.

▲ 김주영 변호사

디스커버리 법원을 재계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기업 측이 소송을 당했을 때 있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겠죠. 그렇지만 또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도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하더라고요. LG와 SK 간에 배터리 관련된 분쟁이 있지 않았습니까?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끼리 미국에서 소송을 하는 이유가 ‘미국에 가야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거든요. 결국 이 흐름은 대세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이게 단순히 기업들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일반 소송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시간 외 근로를 했어요. 근데 내가 시간 외 근로를 했다는 그 기록은 회사가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시간 외 근로 수당을 청구했는데 기업에서 ‘난 그런 거 없는데’라고 하면 입증이 안 되죠. 시간 외 근로 입증 책임은 근로자한테 있거든요. 그런데 기록은 사용자에게 있고. 당연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내놓는 것에 대해 제대로 제재받지 않으니까 굉장히 억울한 케이스가 발생하죠.

우리나라의 재판 제도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양산되는 이유가 바로 이 증거 편재와 그 증거 편재를 해소하지 못하는 지금 민사소송법에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야 하고요. 여기에 대해서 법원도 지금 동감하고 있고 대법원도, 변협에서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음 정부에서는 반드시 디스커버리 제도 법안이 통과됐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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