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와 스타일은 보호받을 수 있을까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90년대 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애니메이션 <요리왕 비룡>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만화는 ‘국하루’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요리를 배우던 제자 ‘장풍’이 스승인 ‘미령’의 요리 비법이 담긴 책을 훔쳐서 도망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되는 만화책에서는 요리책을 훔치지는 않지만, 모든 요리 비법을 다 배워 더는 얻어낼 것이 없다며 금고에 있는 가게 운영비를 모두 털어서 떠난다. 이에 미령은 충격을 받아 앓아눕고, 어떻게든 국하루를 다시 일으키고자 그녀의 아들인‘비룡’의 모진 고생이 시작된다.

요리 비법, 조리법, 레시피, 뭐라 불리든 삼시 세끼를 먹고 사는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초미의 관심 대상이다. 유튜브에서 ‘암흑의 백종원’이라고도 불리며 60만 명의 구독자를 둔 모 크리에이터는 ‘1,000만 원짜리 고기집 된장찌개 레시피’, ‘비밀의 짬뽕 소스’ 등의 제목이 크게 박힌 썸네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비밀? 1,000만 원? 스스로 자신의 레시피를 공개한 것이라면 문제될 건 없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의 요리 비법을 공개해 버린 것이라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필자의 지인이 ‘쿠킹 클래스 수강생이 강사의 레시피를 똑같이 베껴 창업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음식 레시피는 지식재산 관련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 레시피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는 어렵지만, 조건을 맞추면 다른 법령에 의한 보호는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식 레시피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는 어렵다. 저작권법 제2조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는데, 이 조문을 뜯어보면 동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은 사상도 감정도 아닌 ‘창작물’임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표현물은 보호 받지만 아이디어는 보호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레시피가 바로 아이디어에 해당한다. 아이디어, 절차, 공정, 제체, 조작 방법, 개념, 원칙 또는 발견은 표현물이라 할 수 없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타인의 요리 비법을 그의 동의 없이 알아내어 음식을 만들어 내도 이를 저작권 침해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특허법」의 영역에서는 달리 생각할 여지가 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음식의 경우 산업적인 권리 보호가 필요할 수 있다. 공장이 아닌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만들기 위해 개발한 레시피라도 산업상 이용 가능성이 인정되고 신규성, 진보성, 명세서 기재요건 등 특허요건을 만족하는 경우라면 특허를 받을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조리법이 아니라는 사실(신규정)과 동종 기술 분야에서 쉽게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의 기술이 개입되어야 하므로(진보성) 레시피 자체가 특허를 받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울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공개되는 것이 꺼려진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공개를 전제로 일정 기간만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를 인정해 주는 특허 출원보다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영업비밀’로서 보호를 받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가네 설악추어탕’의 레시피를 영업비밀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 법원은 ‘봉지에 쓰인 공개된 내용물 함량표시만으로는 제맛을 낼 수 없다’라며,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재료의 배합비율, 조리 방식 및 순서 등을 달리함으로써 다른 추어탕과 차별적인 맛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남가네 설악추어탕의 제조 방법은 영업비밀로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10. 27. 선고 2008가합100089, 2011가합63425 판결).  

영업비밀이 되기 위한 요건은 꽤 까다롭다. 위 사건에서 법원은 ‘남가네 설악추어탕은 공장 소스 배합실을 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제조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비밀유지 서약서를 받는 등 추어탕 제조 방법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부분이 영업비밀성의 핵심이다. 「부정경쟁방지법」이 보호하는 영업비밀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유용성을 가진 정보를 비밀로서 지키기 위해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구체적으로는 보관 책임자의 지정, 보안장치나 보안 관리규정의 제정, 비밀로서의 분류 및 표시,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금지 및 제한에 관한 조치 등이 필요하다.

이런 ‘합리적인 노력’의 측면에서 <요리왕 비룡>의 케이스를 살펴보자. 국하루의 주인 미령이 요리 비법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장풍에게 서약서를 받고, 요리책을 금고에 잘 보관하고, 장풍이든 비룡이든 누구든 보안 책임자로 지정하고, 어떤 경우에 그 요리책을 꺼내어 볼 수 있는지 규칙을 정하는 등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면 전개가 달라졌을 수 있다. 물론 제2화부터는 변호사와의 상담이라는 지루한 얘기만 나오게 되겠지만 말이다.

■ 레시피와 ‘음식의 외형에 대한 보호’는 별개의 문제

앞서 살펴본 주제는 ‘요리법’에 대한 보호 문제였다. 요리법과는 별개로, 고만고만한 맛을 내는 케이크나 과자류를 차별화 하기 위한 ‘외형’에 대한 표절 문제도 종종 대두되곤 한다. 마카롱에 해외 유명 캐릭터들을 똑같이 그려 넣은 후 이를 판매한다면 「저작권법」과 「상표법」, 나아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사건에 휘말릴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주문제작 케이크의 경우 국내 작가의 웹툰, 이모티콘 등 이미지가 쉽게 도용되고 있지만,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주문제작 방식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기도 난감하다. 제작 및 판매자는 ‘구매자가 주문한대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디저트의 독특한 외형이 법의 보호를 받기 원한다면, 「상표법」상의 상표등록, 「디자인보호법」상의 디자인등록 요건을 충족하는지 검토해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저작권은 등록하지 않아도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지만 저작권을 등록하는 경우 권리자로 ‘추정’ 받을 수 있는 등의 부수적인 효과가 발생하므로 역시 고려할 가치가 있다. 물론 이들은 시각화 된 구체적인 표현물에 대한 보호조치이다. 특별한 맛을 내는 조리법에 대한 보호가 될 수는 없다.

맛있는 요리 레시피든 멋진 겉모습이든, 누군가에게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해 준다는 것은 복잡한 문제이다. 오늘부터 특별한 음식을 접하면 한 번 떠올려 보자. 이 음식에서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마땅한 부분과 창작자의 배타적인 권리를 보호해 주어야 할 부분을 구분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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