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일화로 알아보는 친권 상실과 후견인지정 제도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연말은 공연계의 최성수기다. 공연계의 스테디셀러는 뭐니 뭐니 해도 클래식 공연이다. 그중 매년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연주회다. 너무나 유명한 불멸의 천재 작곡가, 베토벤. 

그런데 그가 제수(弟嫂), 즉 동생의 아내와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815년부터 1820년까지 무려 5년이나 계속된 소송인데 말이다. 분쟁은 조카 카를(Karl)의 양육권 때문이었다. 베토벤에게는 사망한 남동생의 아들을 데려오는 문제였고, 소송 상대방인 제수 요한나(Johanna)에게는 자기 아들을 빼앗기냐 마냐의 문제였다. 날 선 공방이 오가지 않을 수 없다. 소송이 너무 힘들어서 베토벤은 1819년에는 단 하나의 작품도 발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1815년 11월,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르 안톤 카를(kaspar Anton Carl)은 형 베토벤에게 아홉 살 아들의 후견인이 되어달라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문제는 그가 죽음 직전에 아내인 요한나를 공동후견인으로 추가했다는 데 있다. 평소 요한나를 탐탁지 않게 여겨 온 베토벤은 이 죽음 직전의 의사표시를 무효라 생각했다. 조카 카를을 요한나에게 넘기지 않고 자신이 맡아 키워야 한다는 강렬한 책임감에 치열한 양육권 다툼을 시작한다.

편의상 ‘양육권 분쟁’이라 요약했지만, 엄밀히 요한나의 친권 상실, 베토벤의 후견인지정 및 양육자지정 이렇게 3가지 청구가 복합된 분쟁이었을 것이다. 수술에 동의하고, 전학을 신청하고, 여권 발급을 신청하는 등 일상적인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를 대리하기 위해서는 법정대리인이 필요하다. 보통 부모가 친권자로서 법정대리인이 되지만, 사망하거나 특별한 사유로 친권을 상실하게 되면 ‘후견인’을 선정해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 역할을 맡긴다. 베토벤은 ①요한나의 친권을 상실시켜 ②자신이 조카의 후견인이 되고, ③양육권까지 가져오려 한 것이다.

19세기 오스트리아에서는 부(父)가 ‘유언’으로 자녀의 후견인을 지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대에는 공동친권자인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하면 자동으로 생존한 부모가 단독친권자가 된다. 양육권도 마찬가지다. 베토벤과 요한나의 소송은 ‘부(父)의 유언’의 법적 효력을 두고 시작되었지만, 현대에는 부(父)의 유언만으로는 이런 소송이 성립할 수 없다. 현대엔 요한나가 일단 단독친권자가 된 후, 친족이나 검사가 요한나는 친권과 양육권을 행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입증해 법원에 ‘친권상실선고 청구’를 해야 한다. 법원이 생존 부모에 대한 친권상실선고를 해야 비로소 생존 부모의 자녀에 대한 친권이 소멸(제한)된다. 

이렇게 ‘부(父)의 유언의 효력’를 다투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단독친권자가 된 모(母)의 친권·양육권을 상실시키는 것인지’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하지만 진행되는 소송의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비슷하다. 요한나가 얼마나 아이를 키우기에 부적합한 인물인가로 쟁점이 좁혀지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소송에서 보여준 모습은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고 한다. 왜일까? 죽은 남동생과 조카에 대한 책임감, 제수(弟嫂)에 대한 불신 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쉽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제기한 가설이 바로 ‘요한나가 베토벤의 숨겨진 연인이고, 카를은 사실 조카가 아닌 아들’이라는 설(說)이다. 이런 의문은 버나드 로즈(Bernard Rose) 감독의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1994)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극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실제 베토벤과 요한나의 소송기록을 접하면 이런 설정은 결코 영화적 상상력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를 증오하는, 말 그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요한나의 전과를 거론한다. 그녀는 결혼 전 자기 집의 귀금속을 훔쳐 가출했고 결혼 이후에도 같은 일을 벌였다. 누군가에게 목걸이를 비싸게 팔아주겠다고 접근해 이를 넘겨받아 경찰에 분실신고를 해버리고 자기가 가졌다. 그 외 몇 가지 절도, 사기, 횡령, 무고도 범했다. 베토벤은 그녀의 사치와 허영이 범죄로 발전했기 때문에 양육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동생이 죽기 직전 아내를 공동후견인으로 추가한 것은 그녀가 정신이 혼미한 남편을 이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법원은 베토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1816년 조카 카를의 단독후견인이 되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어떨까? 범죄자 부모는 친권을 잃을 수 있을까? 민법 제924조는 친권상실선고의 근거 조항이다. 아동복지법 제18조 제1항은 친권 상실 사유를 크게 4가지로 나누고 있다. ①친권남용, ②현저한 비행, ③아동학대, ④그 밖에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이다. 부모의 범죄는 ‘현저한 비행’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종류의 전과자가 친권을 상실하는 것은 자녀에게 바람직하지도 않고 혼란만을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중범죄’는 되어야 친권이 박탈될까?

과연 무엇이 중범죄인가? 극단적으로 부모 일방이 나머지 부모를 살해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유정 사건’으로 알려진 전 남편 살인사건이 친권 상실의 예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고 씨는 2017년 6월 피해자 강 씨와 이혼하면서 아들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단독으로 가졌다. 이후 고 씨는 강 씨를 살해했고 유죄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강 씨의 유족은 고 씨의 친권을 상실하고 아이의 후견인으로 강 씨의 남동생을 선임에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은 2020년 10월 이를 인용했다. 고 씨의 아들은 이제 삼촌(작은아버지)의 후견으로 자라게 된다.

이런 명백한 중범죄보다 죄질이 약한 범죄, 즉 절도와 사기 같은 범죄는 어떨까? 반사회적인 일탈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쁜 구성원이 아이에게도 나쁜 부모라 할 수 있을까? 법원은 이 점에서 매우 신중하다. 절도와 간통행위를 저지른 단독친권자에 대해 “비행을 저지른 친권자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친권을 행사하거나 후견을 하게 하는 것이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보다 낫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섣불리 친권상실을 인정하여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미성년자의 친족에 의한 친권상실청구를 기각했다(창원지방법원 1996. 8. 16. 95느211 심판). 

이런 논거라면 베토벤과 요한나의 소송도 결과가 뒤집혔을 수 있다. 요한나가 아들을 학대했다는 정황도 없다. 실제로 이 소송은 결과가 한 번 뒤집혔다. 관할 문제로 불씨가 살아나 베토벤은 패소하고 만 것이다. 패소에 대한 항소심에서 베토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때가 유일하게 작품번호(Opus)가 없는 시기다. 결론적으로 항소심에서 베토벤이 다시 조카에 대한 권리를 빼앗아오지만 말이다. 아무튼 19세기 오스트리아 법원도 절도, 사기, 횡령과 같은 재산 범죄와 친권 상실과의 관계를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친권과 양육권의 문제는 원칙이란 걸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문제다. 오로지 ‘자(子)의 복리를 위한 결정을 한다’는 최소한의 대원칙만이 있다. 무엇이 아이에게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는 사람마다, 사건마다 개별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법원의 결정이 진정 최선이었는지를 사후에 검증할 방도도 없다. 

다시 베토벤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조카는 베토벤의 후견 아래 행복하게 자라났을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재능이 없는 조카를 음악가로 키우려는 베토벤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카를은 스무 살 무렵에 자살 기도를 한다. 갈등은 깊어만 가고 결국 카를은 군입대를 통해 멀어진다. 두어 달 후 삼촌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다. 요한나의 손에서 자랐다면 행복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긴 마찬가지이긴 하다.

베토벤 말년의 음악을 최고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병약해진 육체의 한계를 딛고 탄생한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이다. 비단 육체적 고통만은 아니었다. 조카에 대한 후견권과 양육권을 둘러싼 분쟁과 이어진 조카와의 갈등. 이 모든 정신적 고통까지 합쳐진 고난의 시기였다. ‘소송’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으로서의 고뇌까지 알고 나니, 베토벤 말년의 음악이 달리 들린다. 

* 베토벤과 요한나의 소송에 대한 기록은 『클래식 법정』(조병선, 2015)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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