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의 학폭을 바라보는 다양한 법률적 시선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하 학폭) 피해자의 복수를 주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학폭 문제가 성별과 세대까지도 넘어선 ‘전국민적인 트라우마’에 가깝기 때문일까?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드라마에 대한 품평을 넘어 자신의 경험과 현재까지 계속되는 고통을 공유하는 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학폭을 둘러싼 공론화는 주로 피해자의 시선에서 이뤄진다. 피해자는 과연 가해자를 단죄할 수 있을까? ‘더 글로리’의 주인공인 문동은(송혜교 분)은 수사와 재판이라는 공권력에 기대는 대신 사적인 복수를 선택한다. 드라마 속 교사와 경찰은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 분), 전재준(박성훈 분)과 한통속이다. 부모로부터도 방치된 미성년자 문동은은 속수무책이다. 

아쉽게도 동은이 현재 시점에서 중립적인 수사관을 만난다 하더라도 공권력에 의한 단죄는 포기해야 한다.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다. 현행법상 공소시효는 폭행 5년, 상해 7년, 강제추행 10년이다. 공소시효가 남아있고 피해 당시의 증거들을 잘 모아둔 몇몇 경우에 형사적인 처벌을 받게 한 일명 ‘사이다 스토리’가 전설처럼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아다니고 있긴 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 상처를 감추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견디다 공소시효를 도과하고 만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 공소시효가 도과하기 전부터 사적 복수를 결의하지만, 사실 현재로선 문동은도 사적 복수 외엔 별다른 단죄 방법이 없긴 하다.

 

■ 평범한 이들의 복수 ‘폭로’

드라마 속 문동은은 강력범죄 행위도 불사하는 복수의 화신이지만, 현실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복수는 대개 ‘폭로’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학폭 폭로는 그 자체로 피해자 입장에서 ‘치유’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어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할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폭로가 모두 ‘복수’인 것은 아니라는 걸 일단 짚고 넘어가자.

어쨌든 폭로는 여러 가지 후폭풍을 만들어낸다. 가해자가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폭로의 파괴력은 크다. ‘더 글로리’ 속에서 잊고 있었던 문동은의 존재를 다시 알게 된 유명 기상캐스터 박연진은 문동은이 방송사 홈페이지에 학폭 사실을 폭로할까봐 전전긍긍해 한다. 만약 동은이 연진의 과거 비행사실을 언론에 폭로했다고 가정해보자. 연진은 어떻게 대응할까? 

연진의 대응을 추단할 수 있는 실제 사례가 있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넘어가던 즈음에 끊이지 않던 유명인에 대한 학폭 폭로를 기억하는가? 그때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배우 지수(본명 김지수)는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며 방송 중이던 작품에서 하차했다. 그 이후 그는 폭로 게시물 작성자와 댓글 작성자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학폭 피해자인 피고소인들은 최근 위 명예훼손 고소사건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폭로의 후폭풍은 이렇게 명예훼손의 피의자가 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 학폭 폭로로 손해를 입는 3자도 있다

가해 유명인 외에 폭로가 난감한 사람은 또 있다. 가해자인 유명인과 전속계약을 체결한 소속사나 광고계약을 체결한 광고주는 어떨까?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줄 스타라 믿었는데, 이젠 되려 큰 손해가 날 위기니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기획사와 광고주의 손해는 민법상 손해배상의 일반 규정인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입증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내가 멋대로 살겠다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가? 제대로 반듯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나? 그리고 소위 ‘멘탈’이 강하거나 약해서 서로 다른 정도로 입은 정신적 상처는 또 어떤가? 같은 사건을 겪고 왜 유독 당신만 더 힘들어 하나? 이런 입증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은 별도의 계약으로 의무의 내용과 손해액을 미리 정해놓기도 한다. 사건이 터지면 민법 제750조의 모든 요건 사실에 대한 입증 없이, 계약조항에서 정하는 핵심 문제만 서로 증명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일반 불법행위 책임에서 계약상 책임으로 주소를 옮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옮겨진 주소지가 바로 개별 계약서상의 ‘품위유지의무’ 약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하는 대중문화예술인 방송출연표준계약서(배우) 제5조 (3)항은 품위유지의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작에 참여하는 자는 본 프로그램의 제작 방영과 관련하여 사회적 물의 (약물, 도박 등 법령위반과 이에 준하는 물의)를 일으키거나 대중문화예술인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개별 전속계약이나 광고계약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내용의 품위유지의무 조항을 조금씩 변주한다. 여기에 계약 금액을 고려한 손해액을 미리 정해놓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배우(또는 소속사)에 지급할 광고료가 2억 원인데, 만약 배우가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해 광고를 사용하지 못할 때는 받은 2억 원을 돌려주고 거기에 손해배상으로 2억을 얹어 총 4억을 배상해야 한다는 식이다. 대법원이 품위유지약정의 유효성을 인정한 이래 연예인과 소속사, 광고주와의 계약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 현재의 비행과 과거의 비행(학폭)을 동일하게 볼 수 있을까?

품위유지의무 위반과 관련된 기존의 사건들은 대부분 출연계약 기간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학폭 사건들은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나 민법상 소멸시효가 도과된 ‘옛날’일인 경우가 많다. 과거의 비행을 이유로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변호사들도 의견이 갈린다. 과거의 비행이 뒤늦게 드러난 것으로 소속사·광고주와의 관계에서 손해배상책임까지 지울 수는 없다는 견해와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일어나 결과적으로 재산상 피해가 생겼다는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으므로 비행의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견해의 대립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반대되는 의견이 아니다. 서로 다른 계약조항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결론이 달라진 것일 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계약서에서는 “모델은 계약 기간 중 자신의 귀책 사유로 인해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실추함으로써 광고주의 제품 및 기업 이미지를 훼손해서는 아니된다”라고 쓰여있다. 이런 경우 어떤 변호사는 “계약 기간 중”이라는 문구를 제한적으로만 해석해 계약 기간 내에 벌어진 사건만 문제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앞서 언급한 대중문화예술인 방송출연표준계약서(배우) 제5조 (3)항은 좀 다르다. 스크롤을 올려 다시 확인해보자. 그냥 물의를 일으키면 안 된다. 이 조항을 바탕으로 약정 문구를 만들었다면 아마 비행 행위의 시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렇게 ‘과거의 비행’에 대한 확립된 법리는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계약 문구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보니, 대중예술계는 그 나름의 자구책을 찾아가고 있다. 약속을 새로 하는 것이다. 기존 계약서에 학폭 내용을 추가하기도 하고 별개의 서약서를 받기도 한다.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대한 법리는 포괄적이나마 존재하고 있으니, 계약서를 잘만 쓰면 아티스트 측에서도 회사 측에서도 피해에 대한 대비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연예기획사나 콘텐츠 제작사 차원에서의 검증도 더 치밀해지는 것 같다.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해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은 책임도 무겁게 져야 할 것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시작한 이번 칼럼은 이렇게 계약서를 잘 써야 한다는 변혼사의 걱정으로 마무리된다. 통쾌한 사적 복수를 꿈꾸는 드라마와는 달리 현실은 지리한 공방으로 당사자 모두가 탈탈 털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현실로 돌아왔지만, 고민은 잠시 내려두고 여러분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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