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한민국 양대 명문 사학이 뒤집어졌습니다. 중간고사에서 연세대는 AI를 이용한 부정행위, 고려대에선 단체 대화방을 이용한 시험 문제와 답안 공유가 문제 되고 있는데요. 대학 측은 해당 시험을 모두 무효로 하고,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대학의 시험 부정행위 개념도, 규모도 달라지는 시대. 앞으로(LAW)에서 정민지 변호사와 법적 쟁점과 제도적 과제 분석해 봅니다.
먼저 사건을 요약해 보자면 연세대에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부정행위가 확인됐습니다. 정원 600명 수업에서 200명 가까운 학생이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시험 중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등 수법은 쓴 걸로 전해집니다.
고려대에선 교양과목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해 문제와 정답을 실시한 공유했고, 학교 측은 해당 시험을 무효 처리하고, 관련 학생을 조사 중입니다.
변호사님, 먼저 고려대 사례부터 짚어볼까요. 단체 대화방에서 문제와 답안을 공유하면 경우, 단순한 부정행위를 넘어 형법상 처벌을 받을 여지도 있을까요.
▲정민지 변호사 (법무법인 유한 다담)
쉽게 말하면 고려대 사례에서는 단체로 ‘컨닝’을 한 것인데요. 쪽지에 정답을 적어 옆 친구에게 전달하거나, 답안지를 살짝 보여주는 아날로그식 컨닝이 아니라, 단톡방에서 다같이 문제와 정답을 공유하는, 디지털 시대의 컨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톡방에서 답안을 공유하는 행위는 단순한 부정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나, 국·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 받을 수도 있는 거죠.
2020년 코로나가 확산되자 대학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수업을 온라인 강좌로 개설했었는데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온라인 시험으로 대체되자, 시스템상 감시가 소홀하단 점을 악용해 집단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러 이슈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온라인 시험에서 '컨닝을 안 하면 바보'라는 분위기여서 문제가 되지 않다가, 대다수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부정행위가 대거 적발돼 이슈가 됐습니다.
대학에서는 학교 차원에서 징계 조치를 하거나,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계획적이라고 판단한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을 하기도 했는데요. 검찰에선 대학생들의 컨닝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지만, 영리행위가 목적인 경우에는 실형이 선고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시행하는 전기기능장 실기시험과 관련해서 위계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해당 시험 관련 교재나 강의 동영상을 판매하는 카페에서 회원을 미리 모집해서 단톡방을 개설하고, 실기시험 문제지와 답안을 배포해서 부정행위를 했다가 정당한 직무집행 방해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진행자
학교가 바로 시험을 무효로 처리했는데, 억울한 학생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게 학생의 소명권 없이도 가능한지 궁금한데요.
▲변호사
만약 학칙에 '소명권 부여'가 명시되어 있다면 학생에게 소명할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에선 학칙에 부정행위의 판단 기준이나 부정행위에 대한 조치 등을 정해두고 있는데, 학생에게 소명 기회를 제공하고, 사유서를 제출 받는 등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고 심의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규모의 컨닝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면 대학 입장에선 빠른 해결을 위해 바로 시험을 무효 처리하고 다시 재시험을 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징계를 내린다면 당연히 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마땅하고, 특히나 대학은 교육의 장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학생들에게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진행자
이번엔 연세대 사례로 가봅니다. 챗GPT와 자연어 처리(NLP) 기능을 사용했는데, 이건 타인의 도움이 아니라 도구 활용이죠. 법적으로 동일한 부정행위로 볼 수 있나요.
▲변호사
명시적으로 시험 중에 AI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면 이는 명백히 부정행위에 해당합니다. 학교마다 시험의 부정행위자 처리에 대한 지침이 마련되어 있을 텐데요. 학생이 시험 중 교수가 허용하지 않은 도구를 사용해 답안을 작성했다면 미리 준비된 참고 자료를 활용해 답안을 작성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시험의 공정성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으니 부정행위로 볼 수 있는 거죠.
만약에 AI 사용 금지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이 없었다고 한다면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는 윤리 기준을 위반한다고 판단된다면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부정행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부정행위'라는 건 시험이나 학업 평가에서 부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행해지는 모든 기만행위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행위는 학문의 정직성과 교육의 공정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는 건데요.
시험 중 AI를 사용하는 것이 공정한 평가를 저해한다면 충분히 부정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학교 측은 '영상으로 확인했다'고 하는데, 영상 증거가 법적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요.
▲변호사
온라인 시험을 치면서 화면에 부정행위가 포착되어 영상으로 남아 있다면, 이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적법한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시험을 주최하는 곳에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온라인 감독환경을 적법하게 설정하고, 녹화된다는 사실을 응시자에게 사전에 알리고 동의를 받아야 할 것이고요.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행동이 영상에 명확하게 포착돼 있고, 녹화 내용이 편집이나 조작 없이 원본으로 보관돼야 할 겁니다.
▲진행자
AI 활용을 오히려 '표현의 자유나 학습권으로 보호할 여지가 있다' 주장하는 부분도 있어요.
▲변호사
네, 표현의 자유라는 건 개인이 자신의 생각·의견·사상 등을 자유롭게 외부로 표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요. 모든 권리가 그렇듯 타인의 권리나 공중도덕, 사회윤리 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호된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표현의 권리는 민주사회를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권리이지만, 타인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제한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습권도 마찬가진데요. 시험이라는 것은 학습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고, 공정성이 담보돼야 마땅합니다. AI의 사용이 시험의 평가 목적을 훼손하게 된다면 표현의 자유나 학습권을 내세운다고 해서 무제한으로 보호받을 수는 없는 거죠.
▲진행자
관련해서 제도와 교육 현장이 빠르게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지금처럼 'AI를 쓰지 말라' 말만 하는 건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변호사
AI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부정행위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문제인데요. 이미 변화의 흐름이 거세졌는데, 막아세우는 것만으론 혼란을 막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학에서도 AI 사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학생에게 사전에 공지한 다음, 기존의 다른 부정행위와 마찬가지로 엄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시험 화면을 녹화하고, 다른 프로그램의 실행이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등 시험 환경을 통제하고, AI 부정행위를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이나 도구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더 나아가 평가 방식을 개선해서 검색만으로 기계적으로 답이 나오는 단순한 문제 대신, AI의 활용이 어려운 심층적인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교육 현장 외에 사회 곳곳에서 AI 사용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와 부작용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도 AI가 생성해낸 '가짜 판례'가 이슈되고 있고, 해외에선 허위 판례를 제출한 경우 징계를 내리거나, 소송 비용을 부담시키는 등의 사례도 있었어요.
AI는 물론 좋은 도구이지만, 부정한 목적을 갖고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오히려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윤리 교육과 인식 개선을 통해 부정행위를 예방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진행자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딜런 토마스의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AI 시대의 대학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데요.
인간은 고유의 빛깔을 갖고 있죠. 기계의 답이 아닌 인간의 사유와 지성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때보다 AI에 맞선 지성적 저항이 필요한 시점 같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정민지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