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오늘 '현장 속으로'는 지난주 있었던 경주 APEC 이야기입니다.

숨 가쁜 외교 일정은 일단락됐지만, 정상회의 동안 크고 굵직한 이벤트가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정상회의가 열리는 곳은 때마다 ‘안보·경제’와 ‘권리·정의’ 담론이 맞부딪히는 현장이 되곤 하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역 곳곳에서 열린 반대 집회.

이들은 왜 모였고, 무엇을 요구했을까요. 그리고 ‘반미’ 구호는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 걸까요.

석대성 기자가 현장을 찾았습니다.

■리포트

[데시 라이딕 / 미국 코미디언] (The Daily Show)
"와우! 금관이라니! 정말 사랑스럽고, 사려 깊은 선물이네요. 우리 대통령께 말이죠. 저기 한국, 근데 저기서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이봐요, 한국.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우린 여기서 우리 대통령이 왕 놀이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엄청나게 노력 중인데, 당신들이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님, 이 멋진 왕관 좀 보세요! 써보세요! 집에 가져가셔도 돼요!’ 그건 도움이 안 된다고요!"

APEC은 ‘권력의 축제’이자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올해 의장국을 맡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시장 이익 중심의 질서를 비판하는 집회.

이들은 APEC이 노동자와 농민,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합니다.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경주를 비롯한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는 트럼프의 경제 침탈 중단, 굴욕적 한미 협상 폐기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현장에 모인 노동자와 시민은 분노와 결연함을 안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농민은 우리 농산물과 생계를 지켜달라고 외쳤고, 노동자는 피땀으로 만든 일자리를 지켜달라며 힘차게 연대했습니다. 국민적 논의 없이 한 나라 예산의 절반 가까운 돈을 미국에 갖다 바치는 것이 어떻게 국익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것이야 말로 21세기형 경제 침탈이며, 노동의 약탈입니다.”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미국에 2,000억달러 투자한다고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국익입니까. 차라리 그렇게 할 돈의 10분의 1, 아니 20분의 1만 투자하더라도 기후 재난으로, 가을 장마로 고통 받고 있는 농민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으며, 또 얼마 전 시범사업으로 발표한 농·어촌 기본소득을 전체 지역으로 다 확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익이고, 그것이 희망이라고...”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국민을 위해 써야할 각종 공적 기금, 우리 국민이 열심히 모아온 연금 등을 모아서 달러로 바꿔서 미국에 투자하고, 이익이 나오면 5 대 5로 가른다는 얘깁니다. 투자 결정은 누가 합니까? 미국의 초국적 자본과 미국의 금융 자본이 합니다.”

올해 회의는 트럼프 관세 정책을 둘러싼 협상이 핵심.

기업 중심 투자 생태계는 환경 파괴와 군사적 갈등 심화로 이어진다는 게 이들의 프레임입니다.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한국 정부는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을 엄청난 협상 성과로 포장하지만, 그것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안보 전략의 일환에 불과하다. 미국이 한국을 방패로 삼아 중국과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한반도 전쟁 위기만 고조시키는...”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결국 이번 협상은 대규모 투자라는 이름으로 트럼프가 요구한 모든 것을 내주고,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군사 전력에 철저히 편승해 한반도 전쟁 위기만 높인 것이다. 트럼프에게 왕관을 바친 이재명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환태평양 연안 국가의 경제적 결합을 돈독하게 하고자 만든 국제기구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비공식’으로 돼 있으며, 명목상 각국은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권’을 대표합니다.

이들이 비판하는 APEC의 본질은 사실 명확합니다.

APEC이 추구해 온 방향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무역과 투자’.

다국적 기업의 성장과 역내 경제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을 도모하는 게 공식 목표입니다.

문제는 이를 ‘기업 중심의 착취 구조’로만 해석하는 겁니다.

[대학생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APEC 같은 경우는 ABAC이라고 하는 기업인 권고사항에 의해 사실상 모든 것이 이뤄지고, 기업인만을 위한 파티, 기업인만을 위한 회의인데, 거기에 과연 저희, 이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 학생의 삶은 있는가...”

이런 오해와 달리 APEC 논의 의제 상당수는 기후 협력, 디지털 격차 해소, 공급망 안정 등 현실적 ‘경제 안보’ 과제를 다룹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재생에너지 같은 신산업 협력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다만 ‘시장 자유화’ 기조에 역행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전세계의 갈등 축이 되고 있습니다.

[소롱 세노헤 / 레소토]
“레소토에서는 의류·섬유 부문에서 거의 1만6,000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최근 미국 관세가 50%에서 15%로 낮아졌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프리카 성장 기회법(AGOA) 없이는 미국과의 무역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국제민중총회(IPA) 회원]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이런 수단을 동원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상대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미국은 상대 국가의 굴종과 조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더 이상 혐오를 이용한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고, 사람을 이용해서 혐오 정서를 유발해서 편 가르기 하고, 더 이상 희생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트럼프에 대한 불신은 결국 반트럼프 연대로 번졌습니다.

[가브리엘 /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APEC은 매우 반민주적이에요. 민주주의는 과정이고, 기능을 다루는 겁니다. (트럼프가) APEC 국가로부터 훔쳤어요. 한국은 아닌가요? 당신도 기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에게 강탈당한 거예요. 미국 정부에게요. 이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아툴 /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한국 국민은 깨달아야 합니다. 제 말은 당신은 약탈당했어요. 범죄자가 와서 당신의 돈을 약탈했어요. 상상해 봐요. 그 돈이 (한국 안에서) 사용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다른 나라에 주는 건 잊으세요. 당신 국가 안의 문제는 해결됐나요? 그 돈은 이제 미국으로 가야 해요. 그 돈은 이곳 노동자와 농부를 위해 사용했어야 해요. (보건과 학교를 위해서도요.) 교육을 위해서도요.”

[가브리엘 /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당신 정부에 따르면 트럼프를 환영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왕으로 만들고 있어요. 모르겠네요.”

[아툴 /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좋아요. 당신이 어떤 선물을 당신의 손님에게 준다면 이해해요. 그런데 왕관이라뇨? 말 그대로 그가 왕이 되라는 의미로 준 건가요? 그가 당신 국가를 다스릴 것이라는 의미로 준 건가요? 왕관을 준 상징은 뭡니까? 당신은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왕관을 주나요? 당신에게서 돈을 뺏은 사람에게 말이죠. (그게 장난이었다면 정말 웃기는 장난이네요. 장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대학생 APEC 반대 집회 참가자]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미국에서는 노킹스 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관을 주는 그런 모습을 보고, 정말 미국에 속한 나라도 아닌데, 대한민국이 자치 국가로서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속한 듯한 느낌을 받고 굉장히 분노가...”

시위대의 구호는 거칠지만, 그 안엔 ‘경제 주권’과 ‘정의로운 무역’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담겨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들이 내세우는 프레임이 정작 현실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건 APEC을 끝낸 정부도 마찬가지.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등 큰 틀에서 안보 분야 합의는 했지만, 세부 조율하는 문제가 과제로 떨어진 실정입니다.

이런 합의 내용은 대부분 최종적으로는 미국 의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협상은 이제부터”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합의문이나 공동성명조차 없는, 이것저것 다 생략된 백지 외교가 바로 이재명 정권의 실용 외교였습니다.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지만, 3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팩트시트(요약문서)도, 합의문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재명 정부가 협상 내용을 발표하고 돌아서자마자 미국에서는 곧바로 다른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상회의는 합의문으로, 거리는 구호로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올해 APEC은 주목할 만한 기대 없이 자유화와 공정, 환경과 성장, 안보와 인권이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맞부딪힌 풍경이었습니다.

어떤 증거와 가치로 설득할 것인가.

그 질문만 남았습니다.

법률방송 석대성입니다.

▲진행자

보도한 석대성 기자와 더 얘기 나눠 봅니다.

석 기자, 먼저 이번 경주 APEC 한마디로 어떤 회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석대성 기자

자유무역과 경제안보의 균형을 모색한 회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엔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였는데 이제는 공급망과 첨단 산업, 기술, 에너지(자원) 문제가 모두 안보의 범주로 들어왔습니다.

이번 APEC에선 그 흐름이 분명히 드러났는데요. 무역의 자유로움은 유지하되,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즉, 완전한 자유무역에서 ‘안정된 협력 체계’로의 전환기에 있는 회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따라, 그에 대한 각국의 조율 시도 역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

의장국을 맡은 한국 입장에선 이번 APEC이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나요.

▲기자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협력의 조정자 역할이 부각됐고요. 기후와 공급망, AI 등 신산업 의제를 주도하는 것을 시도했던 회의였습니다.

먼저 정부와 여당의 평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경주 선언을 이끌어 내면서 대한민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교류와 번영, 역내 평화 증진을 위한 역할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APEC 주간에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완화했습니다. 대미투자 패키지에는 연간 투자 상한을 설정해 많은 분이 우려했던 외환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했고...”

[정청래 /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주 APEC이 역대급 성과를 내며 막을 내렸습니다. 국민의힘은 예상치 못한 성과에 많이 놀라겠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이 관세 협상을 가장 잘한 리더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국민께서도 A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딴지 걸기를 그만두고, 애국의 대열에 동참하시길기를...”

▲진행자

일각에선 관세나 투자와 관련해서 한미 간 실질적 합의가 부재해 ‘성과 부풀리기’라는 비판도 나오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일단 이번에도 합의문이나 공동성명도 없었죠. 정부는 ‘사실상 합의’라며 성과를 강조했지만, 미국 측에선 ‘구체적인 조율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정치적으로는 선언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시작 단계라는 평가입니다. 실질적 효력은 내년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진행자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움직임도 눈길을 끌었어요. 국제사회 반응은 어땠죠.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강화, 미국 우선주의를 재확인할 수 있었고요. 자유무역 기조를 흔드는 행보가 잇따르면서 국제사회 안팎에선 여전히 미국의 불확실성에 불안감이 표출되는 상황입니다. 또 한편으론 한국 등 일부 국가는 이를 ‘현실적 거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이번 APEC에 맞선 시위도 눈에 띄었는데, 이런 반대 움직임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자

세계화 피로감과 불평등 심화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다만 일부 구호는 과거식 반미에 머물러 있어, 현실 대안이 부족하단 지적이 나옵니다. 이념적 비판을 넘어 정책 감시로 전환돼야 설득력을 가질 것 같다는 평갑니다.

▲진행자

이번 회의 계기에 한국 외교·경제 정책은 어떤 숙제를 안게 됐나요.

▲기자

가장 우선은 한미 간 실질적 경제 협력 재설계가 필요해 보이고요. 관계·공급망·기술 협력 등 구체적 합의 도출도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국내적으론 포용적 성장과 경제 민주화 병행이 관건이겠습니다.

▲진행자

다음 APEC은 중국이 의장국인데, 향후 아시아 질서의 흐름은 어떻게 예상되나요.

▲기자

내년 APEC은 중국 선전에서 열리죠. 미중 간 경제 블록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APEC이 갈라짐의 상징이 아닌 조정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가 핵심입니다.

▲진행자

네, 석대성 기자와 국제 이슈의 흐름을 다시금 짚어봤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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