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경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라면 누구나 조사의 첫머리에서 진술거부권을 고지 받는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자 형사절차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절차를 보면 진술거부권이 온전히 보장되는지에 대해 변호사로서 의문이 든다.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간 피의자 A씨.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기 전 수사관은 “피의자께서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며 진술거부권을 고지한다. 그리고 바로 “ 피의자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

순간 피의자는 혼란스럽다. ‘어… 진술거부권이 있다고는 하는데, 이 상황에서 바로 거부한다고 하면 내가 더 수상해 보이지 않을까? 괜히 불이익이 생기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대부분의 피의자는 결국 “아니요”라는 대답을 택한다. 

사실 이 장면은 피의자 조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권리가 있다고 알려주고는 곧바로 “쓸 거예요, 말 거예요?”라고 묻는 것. 형사변호사로서 이러한 상황을 접할 때마다 ‘권리를 알려주는 것인가, 포기를 유도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실질적인 진술거부권의 보장을 위해서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요”라는 질문은 삭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누구든지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피의자 조사 초반 경찰의 질문은 ‘진술거부권을 당장 쓰겠냐, 아니면 포기하겠냐’라는 이분법으로 바꿔버린다.

대부분의 피의자는 경찰서라는 낯선 공간과 수사관에게 이미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술을 거부하겠다”라는 대답은 쉽지 않다. 괜히 수사관에게 찍히는 건 아닐까, 협조적이지 않다고 기록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실상 강요된 “아니요”라는 말 한마디가, 진술거부권을 스스로 내려놓은 선언처럼 기록에 남는다. 헌법은 분명히 언제든, 어떤 시점에서든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초기의 한마디가 족쇄처럼 작용할 수 있다. 권리를 알려주는 절차가 오히려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피의자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요”라는 모순적인 질문을 삭제하고 수사관은 “피의자는 언제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라고만 피의자에게 알려주면 될 뿐이다. 피의자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권리 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진술거부권 고지는 피의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벨트다. 

권리는 선언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은 ‘권리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권리가 언제든 보장된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술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경찰의 진술 방식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안성열<변호사ㆍ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

김새론 유족 측 법무법인 부유 부지석 대표 변호사가 지난 17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연예 유튜버 이진호 씨에 대한 고소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김새론 유족 측 법무법인 부유 부지석 대표 변호사가 지난 17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연예 유튜버 이진호 씨에 대한 고소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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