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여권이 추진하는 배임죄 폐기가 정치권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야권은 "이재명 대통령 면소를 노린 것"이라고 지적하는데요.
단순한 정쟁을 넘어 경제와 법 체계 전반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
배임죄가 폐지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앞으로(LAW)에서 알아봅니다.
정민지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먼저 배임죄가 정확히 뭔가요. 횡령죄와는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하면요.
▲정민지 변호사 (법무법인 유한 다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득을 취득하게 함으로써 임무를 맡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범죄입니다.
형법 355조 2항에서 가장 기본적인 배임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고, 356조는 반복·계속적으로 행하는 업무상 임무를 위배한 경우에 형을 더 가중하는 규정입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특경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이 적용되는데, 3년 이상의 징역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어 처벌이 굉장히 무거워집니다.
또 상법에서는 '특별배임죄'를 둬 회사의 임원 등 특정 지위에 있는 자가 배임죄를 저지를 경우 보다 강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횡령죄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변호사
횡령죄와 배임죄는 모두 타인의 신임을 배신해 발생하는 범죄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거 아닌가, 헷갈리실 수도 있는데요.
범죄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다릅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해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범죄이고,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불법적으로 취득하는 범죄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또 배임죄는 자신이 직접 이득을 취득하지 않고 제3자로 하여금 이득을 취하게 하는 경우에도 성립하기에, 행위자가 직접 재물을 취득하는 횡령죄와 구분됩니다.
▲진행자
경제 형벌 규정의 핵심, 재산 범죄를 다스리는 중요한 형법인데요. 기업 총수나 경영진 사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사례 좀 살펴볼게요.
<기업 경영인 사례>
①무리한 계열사 지원
한 기업 회장이 자신이 지배하는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기 위해 본사 자금을 저리 대여하거나 물품을 헐값에 공급 → 본사에 손해 발생
②사적 용도 사용
법인 자금을 개인 채무 변제나 가족 사업 투자에 사용 → 회사 재산을 임의로 유용
<금융권 사례>
①부실 대출 승인
은행 지점장이 특정 업체와 유착해 담보 능력이 없는 업체에 거액 대출을 승인 → 은행이 회수 불가능한 손실
②내부자 거래
펀드 운용사가 자신이나 지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불리한 조건의 거래를 체결 → 투자자와 회사에 손해
<공직자 사례>
①공공개발 특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특정 민간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사업권을 몰아주고, 그 대가로 이익을 취한 경우
②공공기관 자산 저가 매각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공공 토지를 특정인에게 매각 → 국가·지방자치단체에 손해
기업 운영의 경우엔 '실패한 경영 판단'과 '범죄적 배임'은 어디서 선이 갈릴까요.
▲변호사
우선 '경영 판단'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 봐야 하는데요.
경영 판단의 원칙이라는 건 기업의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오로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회사의 경영에 관한 판단을 한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회사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고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는데요.
미래에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될지, 그 결단을 내리는 시점에서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만약 경영자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고 결정을 내렸다면, 나중에 가서 보니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실패한 경영 판단'일 뿐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경영자에게 배임의 고의와 불법이득의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경영상 판단' 원칙을 일정 부분 고려하고 있습니다.
①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②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③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④손실 발생과 이익 획득의 개연성 등을 고려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입힌다는 점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행위를 한 경우에 한해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고 있고요. 그러한 인식이 없다면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거죠.
▲진행자
한국은 배임죄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편인 것 같아요. 외국의 경우엔 어떤가요.
▲변호사
독일과 일본에선 형법에 배임죄가 명문화돼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에는 배임죄라는 범죄 자체가 없고, 대신 해당하는 사안을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처리하거나, 횡령 또는 사기죄로 처벌함으로써 해결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형법에 규정했는데,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꾀할 의무를 위반해 손해를 가했을 때 처벌하나, 경영상 판단일 경우에는 책임을 면해준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일본도 형법상 배임죄와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두고 있지만,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 인정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요건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형법상 일반 배임죄와 업무상 배임죄를 두고,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별도로 두고 있으면서 배임으로 인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경법으로 가중 처벌하기도 하는데, 면책 조항이 없고, 구성 요건이 다소 불명확한데다가, 그 형량이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중 처벌된다는 점에서 너무 과도하지 않냐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진행자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런데 배임죄를 두고 재계는 조용한데, 정작 정치권에서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경제 형벌 합리화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변호사
민주당에선 기업인에 대한 경제 형벌과 민사적 책임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하면서, 배임죄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배임죄의 폐지, 판례에 따른 경영 판단 원칙을 조문으로 명확히 하는 방안, 대체 입법안 마련을 놓고 세 가지 안을 검토중이라고 합니다.
취지를 살펴보면 배임죄의 구성 요건이 추상적이고 막연해서 기업의 경영 판단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고, 배임죄로 기소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의 파급 효과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니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배임죄를 개정하겠다는 것인데요.
기업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배임죄로 인해 기업이 판단과 결정을 자유롭게 내리지 못하고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일을 막아, 기업 활동을 정상화하고 더 나아가 주가 상승으로도 이어지게 하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진행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반기업 정서를 집요하게 이용해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갑자기 배임죄를 없앤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면소 판결을 받게 하겠다는 것" 이렇게 지적했고, 야권에서 비슷한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실제 배임죄가 없어지면 지금 멈춰 있는 이 대통령 재판에도 향후 영향을 미칠까요.
▲변호사
만약 형법상 배임죄가 완전 폐지된다면, 이 대통령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에서 범죄 후의 법령 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는 면소 판결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면소 판결은 증거를 조사한다거나, 심리를 거치는 등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고, 소송절차를 종결시키는 종국재판의 한 종류입니다. 유죄도, 무죄도 아닌 거죠.
형벌 조항이 폐지된다면 해당 행위가 더 이상 범죄로 인정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게 되고, 그렇다면 재판을 계속할 실익이 없기 때문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재판에서는 면소 판결을 선고합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 재판에서도 면소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거죠.
▲진행자
배임죄가 폐지되면 일반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변호사
배임죄가 폐지되면 일반 국민의 재산권 보호와 관련해 여러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경영진이나 임직원이 일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경우 지금은 형사 처벌대상이 되기 때문에 좀 더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배임죄가 폐지돼 더 이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면 피해자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만 가능하게 될 텐데요.
현재는 수사를 통해 배임죄가 유죄라고 밝혀지면 법원의 판결문을 갖고 민사소송을 청구해 비교적 쉽게 불법행위를 입증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데, 배임죄가 폐지되면 민사소송만이 유일한 대응수단이 되고 실질적으로 피해 입증이 굉장히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단 주주의 입장에선 회사를 상대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민사소송은 피해자가 소송의 당사자가 돼서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피해 규모가 작거나 경제력이 약한 국민의 경우에는 그 경제적 부담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배임죄가 폐지된다면 경영의 자율성과 투자 활성화 측면에서는 긍적적인 효과를 주겠지만, 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다른 장치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제도적 미비로 인하여 피해구제가 어려워지고, 국민의 재산권 침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야권 지적처럼 고위 임원이나 공직자가 회삿돈 또는 공공자산을 사적으로 써도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지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텐데요.
▲변호사
현재 배임죄 폐지 논의의 근거가 되는 것은 기업 경영진의 자유로운 판단 보장을 통해 경영 활동을 정상화하고 투자 활성화를 노리겠단 건데요. 고위 임원이나 공직자가 회삿돈이나 공공자산을 빼돌려서 직접 취득했다고 하면 이런 경우에는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으니, 여전히 처벌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3자가 혜택을 받게 해준 결과 회사나 나라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 법적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사주가 기업의 돈을 마치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쓰듯이 마음대로 쓰는 기업문화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형사처벌이 없어지면 이들을 견제할 장치가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고요.
▲진행자
전면 폐지 대신 적용 범위 축소나 처벌 요건 강화 같은 건 어떻게 보시나요.
▲변호사
배임죄의 처벌기준이 모호하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인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도 위축시키는 문제점이 있으니 폐지를 하자는 건데, 경영진이 회사를 위해서 투명하고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 하도록 억제하는 등 배임죄가 현행 형사법 체계에서 기여하는 역할도 분명 있기 때문에, 섣불리 폐지하는 것보단 그 문제점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개선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면적으로 배임죄를 폐지하는 대신 형법에 있는 배임죄 규정을 남겨두고, 상법에 있는 배임죄 규정만을 폐지한다거나, 배임죄의 구성 요건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해서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지만, 그 기준이 일관되지 않기에 독일 형법과 같이 경영 판단을 원칙적으로 면책한다고 명문화할 수도 있고요.
일본 형법과 같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는 목적범의 경우에만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개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진행자
그래도 배임죄가 사라지면 민사적 손해배상만으로도 피해자 권익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을까요.
▲변호사
민사적 손해배상만으로는 강제력이 다소 약할 수밖에 없고,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형사처벌이 갖는 억제력을 민사적 손해배상이 대체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요.
만약 지배주주가 주도한 어떤 행위로 인해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면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는데요, 그 기업이 지배주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렇지만 일반 주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기업에 발생하는 손해를 간접적으로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을 텐데, 일반 주주로서는 기업이 내부적으로 어떤 의사 결정을 내렸는지, 그 근거는 무엇이었는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울 겁니다.
민사소송에선 손해배상을 구하는 당사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되는데,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모두 해당 행위를 한 임직원이나 이사회 등이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일반 주주로서는 이를 확보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같이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서 재판 전에 당사자끼리 증거를 사전에 공개하고 공유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고, 이러한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배임죄를 폐지해 버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배임죄를 먼저 폐지해버리기 전에 주주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디스커버리 등 민사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를 먼저 수립하고, 이 제도들이 제대로 정착돼 실무적으로 잘 운용되는지 여부를 확인한 다음 배임죄 폐지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배임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경제와 정의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국민 재산을 지키는 길, 그 접점을 찾는 게 정치와 법의 역할일 겁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