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과거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 하에서 돈은 금의 가치와 연동되었다. 따라서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는 법이나 “공공위원회에 참여한 자에게 30만 원의 보수를 지급한다”는 정부 규정은 사실상 “범죄자는 XX그램 이하의 금을 국가에 납부하라”거나 “공공위원회에서 일한 자에게 X그램의 금을 지급하겠다”는 것과 유사한 의미였으며, 그 자체로 일정한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71년을 기점으로 세계경제는 금본위제를 떠나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게 되었다. 변동환율제에서 돈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가치척도가 없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돈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공공위원회에 참여한 자에게 20만 원의 보수를 지급한다”와 같은 규정 속의 숫자는 더 이상 고정된 가치를 담보하지 않고 점점 실제 크기가 작아진다.
변동환율제에서 돈은 인플레이션에 따라 실질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국가의 GDP가 상승하더라도, 이는 단순히 화폐가치 하락을 반영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따라서 물가, 부동산 가격, 최저임금, 보수, 용역비, 벌금, 과태료 등 모든 금전 수치는 시간이 지나며 일정 수준 높아져야 과거와 동일한 실질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물가, 부동산 가격, 임금 등은 국가 개입이 없어도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지므로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이 반영된다. 그러나 최저임금, 벌금, 과태료, 정부가 정한 각종 보수와 같이 법령이나 규범에 의해 고정된 금액은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지지 않으므로,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지 않는다. 이 중 최저임금은 매년 위원회에서 조정되므로 일정 부분 현실화되지만, 벌금액·과태료액·정부 보수 등은 별도의 조정 절차가 없다면 제정 당시의 실질가치보다 현저히 낮아진 상태로 장기간 유지되기 쉽다.
이로 인해 벌금, 과태료, 정부 규정 보수 등은 입법자나 당시 사회가 의도했던 효과보다 약화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예컨대 “3,000만 원의 벌금”은 오늘날 큰 금액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제정 당시에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억 원의 벌금” 정도로 체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벌금이나 과태료마다 모두 ‘액수 조정 위원회’를 두어 주기적으로 금액을 현실화한다면 과도한 행정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조정되지 않는 벌금이나 과태료를 일정 기준에 연동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에 연동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은 과거의 입법자의 의도와 현재의 체감 사이에 괴리가 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저시급의 2만 배 이하의 벌금”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2025년도 최저시급이 1만 30원이므로, 이 경우 사기죄의 벌금형 상한액은 2억 60만 원이 된다.
이와 같은 방식은 벌금뿐 아니라 과태료, 정부 규정 보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저임금 연동제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치 저하를 방지하면서 제정 당시 의도했던 경제적 이익·불이익의 효과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기원<변호사ㆍ한국법조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