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로 이어지는데... 법원 판결 솜방망이
국내 교제폭력 규율하는 법안은 오직 형법 뿐
▲앵커= 이렇듯 국내 교제폭력이 단순 연인 간의 싸움이 아닌 강력 범죄로 번지면서 사회적 엄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같은 교제폭력이 발생할 시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법안이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요.
교제폭력에 대처하는 해외 법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VCR]
사랑하는 사람이 악마로 변하는 순간.
연인관계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만 남게 되는 교제폭력.
폭행에서 나아가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로까지 나아가는 상황임에도, 국내 법원에선 교제폭력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연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는 게 판례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김덕 변호사 / 법무법인 중현]
“최근 교제폭력이 단순 폭행에서 심한 경우에는 살인까지 이어지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판결의 형량은 매우 낮게 나오는 편입니다. 그게 바로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가 ‘연인’이라는 이유 때문인데요. 이러한 교제폭력 사건에서 이런 점을 양형요소로 고려하고 형량이 낮게 나오는 것이 양형이 오로지 판사의 재량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에서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양형기준표에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교제 여부는 포함돼 있지 않은데요. 현행 양형기준표에는 폭력범죄에서의 가중요소를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 ‘존속 피해자’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이 정도로만 들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연인과 같은 특수한 관계를 양형기준에 공식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같은 이유 때문인지 교제폭력 가해자들의 구속 비율은 터무니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 말까지 접수된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2만5,967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신고 된 건수에서 검거된 인원은 4,395명이었고, 이중 구속된 비율은 단 82명(1.87%)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교제폭력을 규율하는 건 폭행과 상해를 다루는 형법입니다.
'교제'라는 개념이 포괄적이다보니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법로는 규율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마저도 가정폭력에 속하지 않거나 스토킹 피해 입증을 해야 하다 보니 피해자들은 교제폭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회에선 교제폭력을 범죄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 제·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습니다.
교제폭력 관련 법안이 발의된 건 지난 19대 국회에서 박남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로 '데이트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이 발의된 이래 21대까지 총 8건.
하지만 이들 법안 대부분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되거나 폐기됐습니다.
이렇듯 국내 법과 제도는 미비한 상황에서 교제폭력에 대처하는 해외 법안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미국, 호주는 교제폭력 관련한 강력한 처벌 법안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시행된 클레어법은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다 사망한 여성 클레어 우드 이름에서 비롯됐습니다.
해당 법안은 남자친구의 폭력 관련 전과를 조회할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전과 조회는 경찰에게 전화하거나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신청할 수 있고, 신청을 접수받은 경찰은 정보 공개가 필요한지 여부와 비례 원칙에 맞는지 등을 고려해 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난 1994년 미국은 여성폭력방지법을 연방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연인 간 폭력뿐 아니라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 등 모든 종류의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사법 체계를 꾸리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연방법으로 명시한 겁니다.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불기소할 경우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민사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버락 오바마 / 당시 미국 대통령]
"오늘날 세 명 중 한 명의 여성이 파트너에게 학대를 당하는 상황 속에 나는 대통령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약속합니다."
또한 호주에선 교제폭력 가해자가 경찰 명령 발동 후 72시간 동안 피해자 또는 피해자가 있는 곳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가해자가 보석·석방이 되더라도 법원에 출두하기 전까지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건부 석방을 내립니다.
호주 정부는 신체공격·스토킹·폭력위협이 형사상 범죄에 해당한다고 명시해 놓고, 연인 간 교제폭력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제해 놨습니다.
이밖에도 네덜란드 역시 교제 중인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진 폭력을 가중처벌하도록 했습니다.
연인 간 폭력행위를 범죄로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시해놓은 해외와는 달리, 여전히 연인 간 폭력에 대한 심각성 인식이 낮은 대한민국.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교제폭력에 대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