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뜨거운 감자, 영상저작물의 추가 보상 문제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때마다 시즌을 대표하는 노래가 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연금’ 혹은 ‘벚꽃 연금’이라 일컬으며 이들이 작곡가와 작사가에게 가져다주는 엄청난 저작권료를 부러워하곤 한다. 인기를 얻은 노래가 창작자에게 주는 보상 체계는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노래가 아닌 영화와 같은 영상물은 창작자에게 어떻게 보상을 가져다줄까? 천만 관객을 들이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OTT에서 숱하게 재생되는 영화도 창작자에게 착실한 연금 노릇을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은 아니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영상저작물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려도 현재로선 영화 창작의 간판격인 연출자, 즉 영화감독이 애초에 받은 보수 외에 추가적인 이익을 얻지는 못한다. 노래가 꾸준히 재생되는 만큼 돈이 쌓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원인은 영상저작물의 저작재산권 양도를 추정한 저작권법 제100조에서 시작한다. 

 

 

 

■ 현행법은 영상저작물에 대해 저작재산권의 포괄적인 양도를 추정 

현행 저작권법 제100조는 영상저작물에 관한 특례를 두어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등 창작자가 저작물의 영상화를 위해 저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을 양도한 경우, 특약이 없는 한 영상저작물 복제, 배포, 방송, 전송 등의 권리를 포함하여 그 영상저작물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권리를 모두 양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화는 여러 창작자가 모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권리 관계를 하나하나 다 조율해야 하는 상태로 놔둔다면 영화 제작과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고려에서 특별히 만들어진 조항이다.

쉽고 거칠게 말하자면 별도의 합의가 없다면 영화의 주된 창작자들은 일단 제작사에 저작권을 모두 넘겨주고 영화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거래의 ‘갑을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투자자나 제작사와의 관계에서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개인이 저작권을 끝까지 보유하는 ‘별도의 합의’를 요구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몇몇 스타 감독을 제외한 다수의 영화감독은 일단 자신의 작품이 제작되어 공개되는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다. 흥행에 따른 ‘연금’은커녕 제작에 대한 ‘보수’도 변변치 않은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영화의 주된 창작자인 영화감독의 창작환경은 대체로 열악하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의 2019년 및 2021년 ‘영화감독 수입 실태 조사’ 결과는 놀랍다. 전체 영화감독의 70% 이상의 연 소득이 평균 2,000만 원 이하로 조사되었다. 영화 스태프는 2021년 평균 연 소득이 3,001만 원으로 2019년 평균 2,814만 원보다 5.6% 상승했지만, 영화감독은 변동이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라고 제2의 박찬욱, 봉준호가 탄생하길 기대하는 건 가혹한 일일 수밖에 없다. 

■ 평균 연봉이 2,0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영화감독들을 위한 추가보상제도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여야 국회의원들은 영화감독의 창작환경 개선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8월 유정주 의원(의안번호 17131)과 9월 성일종 의원(의안번호 17402)이 각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저작권법 개정안은 앞서 설명한 저작권법 제100조의 저작권양도 추정 규정은 그대로 유지한 채 영상저작물의 저작자의 ‘보상권’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보상금 지급의 주체는 영상저작물을 소비자들에게 최종 공급하는 OTT, 방송국 등 플랫폼들이다.

이런 논의의 배경에는 변화된 영상물 유통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외국 OTT는 물론 티빙과 웨이브 같은 국산 OTT 플랫폼의 확산으로 영상저작물 콘텐츠의 유통 구조가 급격하게 변했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로 OTT 기업들이 꾸준히 이익을 얻는 반면, 과거와는 다른 유통망으로 인해 이용량과 수익을 예측하기 어려운 창작자들은 창작물의 이용에 따른 합리적이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방법이 더욱 요원해진 것이다. 

이에 유럽과 남미의 여러 국가는 이미 수년 전 저작권법 개정이라는 입법을 통해 영화 창작자가 영상저작물의 이용량에 비례한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정비했고, 미국은 강력한 창작자 조합의 힘을 이용해 저작물의 이용에 따른 추가 보상을 계약 내용으로 포섭 중이다. 이런 국가들의 집중관리단체(CMO, Collective Management Organization)는 회원들인 영화감독 등 개별 창작자를 대표해 해당 국가 내에서 발생한 보상금을 수집하고, 수집된 보상금을 다른 국가의 CMO에 송금한다. 이미 K-영상콘텐츠의 인기가 높은 만큼 이들 국가에는 한국으로 가야 할 보상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아직 영화 창작자의 보상권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 해외에 쌓인 보상금을 국내로 들여올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보상권 신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영화감독 개개인의 창작환경을 개선하는 일이자 동시에 국가적 차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기회’라 목소리 높인다.

■ 제도의 신설과 정착을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필요

물론 추가적인 보상을 하나의 권리로서 법제화하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제도의 신설로 주머니가 가벼워질 OTT 업체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되고, 영화 창작자들 사이에서도 보상권의 주체가 되는 창작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지 이견이 생길 것이다. 전자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저작권법 개정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후자는 개정 이후 시행령 제정 단계에서 치열한 공방을 거쳐야 할 문제다. 무엇이 되었든 논의의 기본은 충분한 사회적 관심과 토론이다. 

2000년대 초반은 음악 저작권과 수익 분배 문제로 음악계 전체가 혼란스러웠던 시기다. 전국, 나아가 전 세계 어디에서 어떻게 울리고 있을지 모르는 음악에 대한 정당한 이용 대가를 교통정리할 시스템이 안착될 수 있을까? 당시에는 모두 혼란스러워했지만, 현재는 그럭저럭 제도가 정비되어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영상콘텐츠의 주된 창작자에게 ‘이용에 따른 보상’이 주는 일도 비슷한 혼란을 겪을 것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첫걸음을 떼어야 하지 않을까?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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