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의 권리와 2차적저작물 활용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만화 <검정고무신>의 그림 작가 이우영 씨의 급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접했다. 이우영 작가의 명복을 빈다. <검정고무신>은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만화 잡지 '소년챔프'에 연재된 작품이다. 단행본으로는 45권이나 된다.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어린이 기영이, 청소년 기철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코믹하면서도 정감있게 묘사해 큰 인기를 끌었다.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지금도 케이블 TV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이우영 작가가 세상을 등진 이유로 많은 이들이 <검정고무신>의 2차적저작물 활용에 대한 분쟁으로 인한 극도의 좌절감과 스트레스를 꼽고 있다. 이 작가는 2022년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 개봉을 앞두고 캐릭터 대행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2차적저작물을 만들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전에도 작품에 대한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 측과 여러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대해 상대방은 '이미 캐릭터가 상당한 수정을 거쳐 원작과 달라졌으며, 당시의 계약 관행에 따라 2차적저작물작성권까지 모두 양도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정고무신>을 둘러싼 과거의 언론 보도를 쭉 살펴보았다. 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와 계약관계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일부 보도를 통해 이 작가와 출판사 측 사이의 '2차적저작물작성권 양도계약'이 주된 쟁점이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과거 만연했던 이른바 매절계약으로 인해 불거지는 여타의 다른 저작권 분쟁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갈등이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 출판계의 오래된 관행 ‘매절계약’

저작재산권은 보통은 기간을 한정해 놓고 그동안 '이용을 허락'하는 형태로 계약을 한다. 유명한 소설이나 만화의 경우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출판사를 바꿔 다시 출간하는 때가 있다. 저작재산권이 여전히 작가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저작재산권도 재산권의 일종이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대가를 받고 아예 넘겨버리는 양도계약도 가능하다.

이렇게 앞으로의 판매량과 관계없이 작가에게 일정 금액을 일괄 지급한 후에 출판사가 영구적으로 저작재산권을 독점 양도받는 방식을 '매절계약'이라 일컫는다. 출판계의 오랜 관행이다. 특히 신인 작가들의 경우 작품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작가와 출판사 양측 모두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런 방식이 계약이 흔히 채택되어왔다. 만화 <검정고무신>의 경우 원작자가 신인 작가는 아니었지만, 어떤 내부적인 사정에 의해 원작자가 일시금을 받고 저작재산권 일체를 양도하는 계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매절계약 그 자체는 거래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형태이다. 신인 작가는 일단 자기 이름의 작품을 출간하는 일이 우선일 수도 있다. 만일 판매량이 지극히 저조하다면 판매량에 따라 수익이 생기는 '인세계약' 보다는 일시에 목돈을 받는 매절계약 방식이 유리할 수도 있다. 문제는 당사자 한쪽(주로 출판사)이 일방적으로 이런 형태를 요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작가들에게는 아예 출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 데 있다.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사건도 그렇게 시작했다. 이 사건은 수년 동안의 법정 공방 끝에 2020년 6월 대법원에서 백희나 작가의 패소로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소송에서 백 작가는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포함하는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취지의 계약 조항이 불공정한 법률행위 또는 약관규제법 위반을 이유로 무효라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저작물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적절히 분담하려는 측면을 고려했을 때 작가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백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출판계의 콘텐츠IP 활용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

작품의 상업적 성공으로 인한 수익이 원작자에게 전혀 돌아가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자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재산권의 일괄 양도의 경우에도 2차적 저작물 작성권에 대해서는 별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표준계약서와 표준약관을 수정했다. 그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게 2020년 1월 드러났다. 바로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 다. 창작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 조항인 '수상작의 저작권을 문학사상사에 3년간 양도해야 하며, 작가 개인 단편집에도 표제작으로 수록할 수 없다'라는 부분이 문제였다. 출판사는 같은 해 2월 4일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문제가 된 조항을 수정하는 등의 개선책을 발표했다. 2020년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기로 하며 일단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불공정한 계약으로 가장 억울한 입장에 처하는 것은 아마도 창작자일 것이다. 하지만 IP를 활용하고자 하는 출판사 등 기업도 마찬가지로 여태까지의 관행을 넘어선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추후 분쟁이 불거진다면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 위험도 있다. 무엇보다 공정한 콘텐츠IP 활용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장기적·지속적으로 시장을 키우는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다.

개별 거래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예상해 계약서에 서명·날인을 하는 것이 시작이다. 창작자들이 출판사 등 기업을 상대로 지금보다 더 당당하게 계약서의 검토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만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바라는 일이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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