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류하다', 국어사전엔 '유보하다' '미루다' 뜻
민법에서 '이의 보류'는 '이의 제기'의 뜻
국립국어원 "황당... 이 정도면 소통장애 수준"

[법률방송뉴스]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연중 기획 기사를 진행하면서 오늘(11일) 같은 경우는 또 처음 봅니다.

“이의를 보류하다”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뜻이 떠오르시나요. 당연히 “이의 제기를 잠시 미루다” 정도 의미를 생각하실 텐데요. 우리 민법에서 “이의를 보류하다”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민법만의 독창적이다 못해 유아독존적인 말 사용.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영화 ‘변호인’]
“지금부터 형사1부 81고단7929 국가보안법 위반...” “이의 있습니다!”
“변호인, 아직 재판 시작도 안했어요.” “재판을 안 시작했으니까 제기하는 겁니다.”

우리 민법에도 이 ‘이의’와 연관된 표현이 있습니다. 

민법 제145조 법정추인 조항.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에 관하여 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추인할 수 있는 후에 다음 각 호의 사유가 있으면 추인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의를 보류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조항입니다.

‘이의를 보류하다’ 시민들은 이 표현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준영(52) / 서울 영등포구]
“생각이 같지는 않고 다른 생각이 있지만, 지금 말하지는 않겠다라는 뜻 같습니다.”

[김소희(47) / 서울 서초구]
“반반 아닐까요 반반? 어떤 일을 따졌을 때 반 정도로 해서 따질 수도 있고, 따지지 않을 수도 있고 이런 얘기 아닐까 싶어요.”

‘보류하다’는 “어떤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아니하고 나중으로 미루어 두다”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유보하다’, ‘늦추다’, ‘미루다’가 있습니다.

사전에 나오는 뜻에 따라 민법 조항 '이의를 보류한 때'를 해석하면 '이의를 유보한 때, 이의를 미룬 때' 정도의 뜻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민법에서 '이의를 보류한 때'는 '이의를 제기한 때'라는 정반대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자로도 지킬 보(保) 에 머무를 류(留). 보류라는 똑같은 단어를 쓰면서 보류를 ‘유보’가 아닌 ‘제기’라는 전혀 엉뚱한 뜻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들도 민법에서 ‘이의 보류’는 ‘이의 제기’라는 그런 뜻으로 쓴다니까 그런 뜻으로 쓰고는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단어 사용입니다.

[권정호 변호사 / 법무법인 향법]
“통상적으로 보면 이의를 달다, 이의를 제기하다, 이런 뜻입니다. 일반인들에게 굉장히 어렵고 이 일을 한다는 건지, 이 일을 안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5년 전 법무부는 ‘이의를 보류하다’를 ‘의미 이해에 혼란이 있는 용어’로 선정했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우리 법전에서는 여전히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혼동 수준이 아니라 ‘소통장애’라는 것이 관계자의 진단입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
“무엇을 보류했다고 하면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지, 그것을 ‘제기를 하는 것’ 반대의 의미로 해석되면 곤란하잖아요. 약속을 보류했다고 하면 약속을 안 한 거잖아요. 입법한 사람과 그것을 법을 보고 이해를 하는 일반 국민 사이에 소통장애에 오는 거잖아요.”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이의 신청을 보류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 ‘이의를 보류하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