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전신주서 화재... 고성-속초 '축구장 1700개' 면적 소실
한전 "손해사정 60%만 보상"... 피해자들 "터무니없다" 억울함
한전 책임자 무죄 선고... 생활고 못이긴 이재민 2명 극단 선택

[법률방송뉴스]

▲앵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봄이 오는 걸 질투하듯 동장군이 매섭게 몰아치고, 눈까지 쏟아낸 한 주였습니다.

봄이 오면 산지에선 주의보가 켜지죠, '산불'입니다.

2019년 고성-속초 대형산불 기억하십니까. 수년을 지나면서 우리 기억 속에선 잊혔는데, 피해자들은 여전히 비극 속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유, 석대성 기자가 듣고 왔습니다.

■VCR

합리적 보상만 있으면 끝났을 공방, 어느새 4년째입니다.

2019년 4월 4일.

전신주 특고압 전선에서 생긴 작은 불씨는 화마가 돼 영동권을 집어삼켰습니다.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불은 속초 시내까지 번졌고, 소방 당국 총력전에도 축구장 1700개 규모 땅은 흔적도 없이 지워졌습니다.

'고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 불리던 최인선 씨의 집도 현재는 유적지처럼 터만 남았습니다.

[최인선 / 고성산불 피해자]
“(산에) 불이 훤하더라고요, 무슨 캠프파이어 하는 줄 알았어요. (집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잠이 깜빡 들었는데... (지인이) 차를 끌고 들어와서 문을 두드렸는데, 그분도 들어올 때 불길을 뚫고 들어온 거예요.”

키우던 개 두 마리도 생명은 건졌지만, 한 마리는 당시 트라우마에 갇혀 수년째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인선 / 고성산불 피해자]
"새벽 6시에 그때 소방차가 네 대가 들어왔을 때 (집에) 들어와서 그때까지는 졸졸 쫓아왔는데, 여기 들어온 후엔 저렇게 한자리에 앉아서 꼼짝을 안 하는 거예요. 치료도 받았는데, 주인이 오라고 해도 이젠 안 와요."

평생 모은 재산을 한순간 태워버린 건 한국전력공사가 관리하던 전신주 한 대였습니다.

국과수는 전신주 고압 전선이 끊어지면서 발생한 불씨가 1300억원 피해와 800명의 이재민을 만들었다는 감식 결과를 내놨습니다.

사고 후 지역마다 우후죽순 꾸려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당시 한전과의 협상은 피해자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고성 비대위가 주도합니다.

최선의 합의를 이끌 줄 알았던 고성 비대위 측은 '한전이 손해사정액의 60%만 보상한다'는 내용에 서명했습니다.

이마저도 배상이 아닌 피해민에 대한 생활안정지원금 명목, 결국 한전 책임은 이곳에서 처음 최소화됩니다.

협상 결과를 수용하지 않은 나머지 비대위는 통합 비대위를 꾸리고 다시 싸움에 들어갔고, 무대는 법원이 됐습니다.

[김경혁 / 4·4 산불 통합비대위원장]
"(특심위) 협상에서 합의하지 않았던 것은 불만족스럽기에 당연히 법을 통해 우리가 온전하게 협상이 이뤄질 수 있게끔 기대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마저도 지금 계속 늦어지고..."

긴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피해민 두 명은 생활고를 못 이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도 있습니다.

[차광주 / 고성산불 피해자]
"제가 몸이 건강한 사람 같으면 일이라도 해서 먹고살면 되는데, 아프니까 일을 못 해요. 암 수술해서..."

화염 속에서 겨우 벗어난 차광주 씨.

지상권이 없어 집을 잃은 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와중, 병원에서 간암 말기라는 뜻밖의 소식까지 듣습니다.

[차광주 / 고성산불 피해자]
"항암 치료하는데 주사 한 대가 1000만원. (문재인) 대통령도 약속했었잖아요, 내려와서... 약속해놓고 약속을 안 지키잖아요. 잘사는 사람 위해 있는 법이 아니고, 어느 누구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은, 평등한 법이 됐으면 좋겠어요."

피해민과 한전이 다투는 쟁점은 민사에 있지만, 형사 건과 비대위 내부 갈등도 부수적으로 얽히며 송사는 더 꼬였습니다.

관리소홀로 산불을 야기한 혐의의 전·현직 한전 직원들이 최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도 민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피해자 비대위는 판단합니다.

[한운용 / 고성산불 피해자]
"사법부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판결합니까. 정말 바람에 의해서 모든 범죄가 성립됐다고 얘기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판결을 갖다가 찍어다 붙이고 말이죠."

[김경혁 / 4·4 산불 통합비대위원장]
"한전 과실 자체가 중과실이냐, 경과실이냐는 엄연하게 분명히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친다고 저희는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배상) 협상 과정에 있어서 한전의 책임 요율 자체가 경과실로 나온다면 요율 자체가 낮아질 것으로 지금 판단하고 있어요."

정부가 한전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한 채무부존재 소송도 피해자들에게 불안을 더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하면 한전은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한 금액을 제외한 부분만 이재민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하는데, 일부 피해민은 받은 지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도 염려합니다.

[지병소 / 고성산불 피해자]
"우리가 궁금한 건 있잖아요. 정부 차원에서 생활안정자금이라고 우리 개인 통장에다가 돈을 넣고 그걸 지금 와서... 한전에서 달라고 하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가서 뭘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제 이재민에게 남아있는 건 악뿐.

산불로 재산은 물론 가족까지 잃은 피해자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김영봉 / 고성산불 피해자]
"사법부에서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재앙이 올 겁니다. 제가 다시 나타날 겁니다. 죄인으로 나타날 겁니다."

집을 잃고 고군분투하는 겨울, 어느덧 네 번째.

이재민들에게 고성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역대급 산불 피해에도 누구 하나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되면서, 피해자들은 절망 속에서 새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법률방송 석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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