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앵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정부가 작년 추석에 이어 올해 설에도 거리두기 없는 명절을 채택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따뜻한 정을 나눌 명절이지만, 수년째 비극 속에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2019년 고성-속초 대형산불로 모든 걸 잃고, 거대 공기업 한전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피해자들입니다.

4년이 지나도록 보상은커녕 마음까지 타버린 이들의 사연을 법률방송이 듣고 왔습니다.

석대성 기자입니다.

■VCR

"얼마나 죽어야 재판부가 이걸 받아주겠냐고! 죄가 없다? 왜 죄가 없어 XX 몇천 명이 길바닥에 나앉았는데! 몇 명이 죽었는데 죄가 없어!"

"젓가락 하나 없고, 옷 하나 없이 4년을 넘겼는데, 이게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이런 판결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그때 당시 간암 (말기라) 수술했거든요.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 지금? 이게 사는 게 말이 아니잖아요. 그거라도 주면 어떻게 살 희망이라도 좀 가져보는데..."

"점점 분노가 끓어요, 분노가... 반드시 제가 어떤 재앙을 일으키게 되면 나라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회가 이렇게 만들고, 사법부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보면 돼요."

'고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그 명성이 재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던 최인선 씨.

평생 모은 재산이 사라지는 데엔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최인선 / 고성산불 피해자]
"(지인이) 막 문을 두들기면서 빨리 나오라고 난리치는데 보니까 불길이 우리 집 지붕에서부터, 온 산이 뻘겋게... 통나무 주택이니까 형체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얼마나 허망하겠어요. 공기 좋은 곳에서 살려고 여기 내려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은퇴 후 아내와 고성에 온 지 6개월 만이었습니다.

키우던 반려견 두 마리도 가까스로 불구덩이에서 벗어났지만, 한 마리는 당시 트라우마에 갇혀 수년째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인선 / 고성산불 피해자]
"(탈출하라고 문을 열어주고 가셨는데) 네, (다시 집에) 들어온 다음에는 저렇게 한자리에 앉아서 꼼짝을 안 하는 거예요. 불러도 안 나오고... 동물들도 그렇게 4년이 지났는데도 그 악몽을 떠올리면..."

나고 자라고, 일생을 보내던 보금자리도 사라졌습니다.

[지병소 / 고성산불 피해자]
"방송에선 뭐 고성에 산불이 났다고 자꾸 자막이 나오는데, (갑자기) TV가 꺼져요. 이게 어디 전봇대가 탄 모양이다 했는데 나와서 보니 불이 여기 번졌어요. 뭘 챙길 겨를이 없어요. 그냥 살기 위해서 도망가기 바빴는데..."

2019년 4월 4일.

전신주 특고압 전선에서 생긴 작은 불씨는 화마가 돼 모든 걸 집어삼켰습니다.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북동쪽으로 향하며, 속초 앞바다 맞은편까지 불바다로 만듭니다.

강원 소방은 빠른 대처에 나섰지만, 물줄기를 역행시킬 정도의 바람을 꺾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강원 교육청은 속초와 고성 모든 학교에 휴업령을 내렸고, 춘천지법 속초지원과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기록물 이송 작업을 단행할 만큼 사태는 긴박했습니다.

전국 모든 소방력이 동원되고 맞불 작전까지 펼치며 겨우 진화했지만, 소실면적만 1266ha, 축구장 1700개 규모였습니다.

때아닌 봄 날씨가 이어졌던 1월 중순.

[김경혁 / 4·4 산불 통합비대위원장]
"아니 그래도 기초 난방을 제대로 해서 돌려놓고 쓰셔야지. 그럼 전화를 주시지, 그럼 내가 여기 수리공을 이쪽으로 보내서 수리를 해드리지..."

차광주 씨가 사는 임시주택은 바닷바람이 부는 밖보다 차가웠습니다.

화염 속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펼쳐진 현실은 겨울보다 매서웠습니다.

[차광주 / 고성산불 피해자]
"불이 난 집과 땅은 지상권만 제가 갖고 있었고, 땅은 남의 것이라서 거기 이 컨테이너(임시주택)를 못 놓게 돼 있었습니다. 이리 또 옮겼어요. 옮기라고 해서... 여기로 옮겼는데 몇 달 살지도 못하고 또 옮기라는 거예요, 기한이 다 됐다고... 그래서 다시 또 이리..."

맘 놓고 몸 누일 곳 하나 없는 와중, 간암 말기 선고까지 받았습니다.

항암 주사 한 번에 1000만원, 보상금을 받아 과거를 다시 사고 싶은 희망은 점점 망상으로 느껴집니다.

[차광주 / 고성산불 피해자]
"병원비도 워낙 많이 들었고, 보상금 나온 건 10원 써보지도 못하고 다 들고, 예전에 내가 갖고 있던 돈까지 다 들었으니까 거기(치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시골 사람들이 법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김경혁 / 4·4 산불 통합비대위원장]
"기초생활을 뭐로 하란 얘기야.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수급) 58만원으로 약값 쓰고, 병이 들어서 밖에서 노동도 못 하는 상태에서 자기 생활 자체에 대한 벌이·수익 자체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보·배상 (재판이) 끝날 때까지라도 지자체에서라도 어떤 제도적으로 (대안) 마련을 해줘야 할 거 아냐. 그래야 이분도 어떻게 살아남을 희망을 갖지. 보세요, 이게 겨울이 난방이 안 되는 상태에서 이렇게 생활한다는 게 있을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피해자들은 지금 3가지 싸움을 동시에 벌이고 있습니다.

민사와 형사, 그리고 비대위 내부 갈등입니다.

1300억원 재산 피해와 800명의 이재민을 만든 사고원인은 한국전력공사가 관리하던 전신주에 있었습니다.

국과수는 전신주 고압 전선이 끊어지면서 산불로 이어졌다는 감식 결과를 내놨습니다.

손해사정회는 실사에 들어갔지만, 피해자들은 "터무니없는 감가율을 보였다"고 주장합니다.

[김경혁 / 4·4 산불 통합비대위원장]
"내가 아무리 (피해 규모를) 증빙해도 증빙하는 게 다 받아들여지긴 어렵다고 판단했기에 저는 이제 그것을 거부했고요. 일단 법원 감정을 받아서 소송에 갈 수 있게끔 그렇게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시면 돼요."

한국전력은 이마저도 최종 피해보상 지급금 규모를 손해 사정액의 60%로 확정했습니다.

가령 1억원의 재산 피해를 본 사람이 손해사정사로부터 50%만 인정받았다면, 보상금은 5000만원.

한전의 배상 요율은 그중에서도 60%, 결국 1억원의 피해를 본 사람이 받을 보상금은 3000만원입니다.

소액의 피해자는 그나마 넘어가도, 10억원이 불에 타버린 피해자는 7억원을 손해 봐야 했던 겁니다.

한전이 손해사정 실사의 60%만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전 관계자] (음성변조)
"특별심의위원회에서 60%로 결정을 한 겁니다. (그럼 이게 한전 측에서 요구한 게 아니라...) 위원회에서 결정된 금액입니다."

사고 후 강원도와 고성군이 각 추천한 외부 교수 2명과 한전 측, 피해자 측이 선임한 변호사 각 2명씩으로 구성된 고성산불 특별심의위원회.

2019년의 마지막 날 이들은 ‘한전의 배상은 책임 비율을 판단한 게 아닌 피해 주민에 대한 생활 안정지원금 등 여러 정책적 사항을 고려한 것’이라고 합의했습니다.

이날 합의는 피해자들이 짊어질 긴 전쟁의 서막이자,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두 길로 갈라서는 신호탄이 됐습니다.

전신주 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됐던 전·현직 한전 직원들이 또 한 번 재판정에 섰습니다.

1년 전 1심 법원은 이들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항소했고, 사건은 고등법원으로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날 법정 안에선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한운용 / 고성산불 피해자]
"이런 판결이 어디 있습니까. 이게 공정입니까, 이게... 하늘이 무섭지도 않아요?"

항소심 역시 무죄를 선고했고, 산불 피해자들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김경혁 / 4·4 산불 통합비대위원장]
"단 한 푼도 배상금도 지분도 안 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끌고 오는데 4년이 되도록 뭐 하는 거야, 대체..."

산불로 동생을 잃은 김영봉 씨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김영봉 / 고성산불 피해자]
"동생이 (누나를) 구하러 갔어요. 가서 불을 끄다가 이제 그슬린 채 사망했습니다. 조만간에 사법부를 대신해서 제가 정의 실현하겠습니다. 저는 그 생각밖에 없습니다."

피해 주민들은 이렇게 절망 속에서 새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긴 분투 속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두 명은 2023년을 맞이하지 않고 스스로 극단적 길을 택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특히 상처가 된 건 같은 피해자들이었습니다.

[김영봉 / 고성산불 피해자]
"(정치권에서) 한전에 매수된 사람만 살짝 만나고 한전 편을 들고 간다든가, 한전에 매수된 자들은 이재민 커뮤니티에서 같은 이재민이 이재민을 조롱합니다."

[최인선 / 고성산불 피해자]
"어용 비대위에서 구상권 (제의가) 들어오면 (특심위 합의를) 원천무효 하겠다고 해놓고 그것도 안 해놓고... 어용 비대위들이 이재민들을 기만하고 유린하고 조롱하는 짓을 했는데..."

어용,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기관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걸 낮잡아 부르는 말입니다.

당초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크게 고성 비대위와 속초 비대위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협상권은 피해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고성 비대위에 있었는데, 특심위에서 합의를 주도한 것도 이들이었습니다.

당시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노장현 씨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고 표명했지만, 다른 비대위들은 한전과의 밀실야합을 의심하며 노씨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고성 비대위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나온 것이 지금의 통합비대위입니다.

[김경혁 / 4·4 산불 통합비대위원장]
"(고성 비대위가) 70%를 차지하다 보니 저희 자체가 협상권이 없었어요. 초반에 대응만 조금 우리가 다 똘똘 뭉치고, 다 같은 이재민들이 하나의 팀으로 대응했다면 그나마라도 좋은 결과를 조금이라도 얻었을 텐데, 제일 아쉬운 게 통합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던 게 제일 아쉬운 거예요."

이들이 합리적 보상을 받을 방안은 없을까.

재산을 잃었다는 슬픔과 인정하기 힘든 사법부의 판단, 그리고 같은 피해자들로부터도 배제당한 상처를 안고 이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취재 말미, 한 그루의 소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에 타 사라질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희망이었습니다.

터전을 잃고 지내는 겨울, 어느덧 네 번째.

어디에 살아도 우리는 언제나 화재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앗아간 고성-속초 대형산불 사태는 피해자는 있어도 명확한 책임자는 없을 수 있다는 소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석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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