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 "오는 6월부터 통행 방해 차량 적극 제거... 불법 주정차는 보상 책임 없어"
소방관, 민원과 소송 등 '뒷감당' 부담... 통행 방해 차량 이동 및 제거에 소극적
"소방기본법 시행령에 재판 비용·보상 주체와 절차 등 명시, 소방관 부담 덜어야"
제천 화재 관련 소방청이 “6월부터는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는 주정차 차량을 적극 제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소방청은 특히 “불법 주차는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주차 차량 제거'에 따른 보상 규정 등을 담은 소방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오는 27일 시행되는데 따른 조치란 설명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환영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유감이다.
흔히 대형 사건이 터지면 관계 당국이든 언론이든 벌어진 '결과' 를 가지고 사건을 재구성하고 '원인'을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다. 결과가 있으니 당연히 원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결과’를 가지고 어떡하든 '원인'을 찾아내려다 보면 단순 선후관계와 인과관계, 원인도 선행 원인과 후행 원인,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이 뒤죽박죽 섞일 가능성이 높다.
제천 화재,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안타까운 사고다.
그런데 '냉정히'랄 것도 없이 그냥 일견해도, 소방차가 늦게 도착해서 사망자가 많아졌는가. 그것도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늦게 도착해서 사망자가 많아졌는가.
‘그렇다’는 가정 하에 ‘주정차 차량 적극 제거’ 라는 해결책과 논리를 이번 제천 참사에 대입하면, '소방차가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늦게 도착해서 하필 2층 여탕에서 사망자가 집중 발생했다'는 결과에 대한 황당한 사고 '원인'이 나온다.
일반적인 원인을 특수한 사건에 억지로 끼워 넣은 결과다.
불법 구조변경과 비상구 폐쇄 등 건물주나 관리인의 책임은 논외로 하더라도 소방 당국이 과연 적절하게 대처했는지, 인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한 건 아닌지 등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깨끗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불법 주청차 차량으로 인한 화재 진압과 구조 지연. 원론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를 하고 이에 대해 ‘앞으론 밀어버리겠다’ 는 식의 대책 발표. ‘제천 참사’에 대한 소방 당국의 책임과 논란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도 '불법주차 때문에 소방관이 애를 먹는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그 선의까지 폄하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다만 여기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개정 전에도 소방기본법은 소방차 통행을 가로막는 주차 차량 등 장애물을 치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위법, 불법 주차 차량에 대해선 배상 책임이 없다고 소방기본법에 명시하고 있다.
'불법 주차 차량은 밀어버려도 된다'는 얘기는 전혀 새로운 얘기도 아니고, 6월 27일까지 기다려서 시행해야 할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소방관들이 '밀어버리지' 못한 이유는 법이 없어서도, ‘원칙대로 대응하라’는 소방청 지시가 없어서도 아니다. 차주들이 국가나 소방청, 소방서가 아닌 소방관 개개인을 상대로 화를 내고 '악악' 대고 소송을 내기 때문이다.
소방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좀 늦게' 도착해도 화재가 다 커다란 인명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명 사고로 이어진다 해도 책임과 비난은 '그놈의 불법 차랑들' 때문이지 소방관 때문은 아니다.
설사 초동 대처가 늦은 게 명백한 경우에도 책임과 비난은 소방 당국과 '국가'나 초동 대처를 늦게, 사고를 크게 만든 각종 불법행위들에 쏟아지지 소방관 개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은 아니다.
화재가 클수록, 진압이 어려울수록, 불법행위가 많고 중대할수록 소방관 개개인은 대개의 경우 부족한 인력과 장비, 열악한 상황에도 화마와 치열한 사투를 벌인 존재들로 묘사된다.
소방관 입장에선 불법 주차 차량 밀어버리고 발생할 오만 가지 경위서와 민원, 소송 등을 감안하면 불법 주차 차량과 맞닥뜨렸을 때 밀어버리지 않고 좀 쩔쩔 매고 좀 늦게 도착하는 게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불법 주차 차량 밀어버리고 발생할 뒷감당을 소방관 개인에 맡겨두는 한 아무리 '밀어버리라'고 지시해도 이 문제 해결은 요원하고 무망하다.
꼭 불법 차량이 아니어도 문 뜯었다고 창문 깼다고 뭐라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업무수행 관련 소방관이 겪는 이런저런 법적 분쟁. 일단 변호사만 국가가 붙여줘도 소방관 부담의 90%는 덜 듯하다.
단순 변호사비 부담이 아니라 정당한 업무수행의 경우 설령 재판에서 지더라도 손해나 손실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정부나 국회가 할 일은 개정 소방기본법 시행령에 소방관 업무 수행에 따른 손해 배상이나 손실 보상 절차와 주체 등을 명확히 적시하는 게 급선무인 듯하다.
무조건 다 밀어버리는 게 능사는 당연 아니겠지만, 정말 긴급하고 필요한 경우 '소방관의 위엄' 정도 제목으로 불법 주차 차량 싹 밀어버린 광경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적어도 소화전 앞에까지 버젓이 불법 주차한 차량들은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불법 주차 대응 문제는 문제고, 사족이지만 '소방관 몸짱 달력' 만들어 파는 건 안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몸짱 여경 달력' '몸짱 여군 달력' 만들어 팔았다면 아마 난리가 나고 뒤집어졌을 것이다.
화재 진압하다 사망하거나 부상한 소방관과 유족들 돕겠다는 취지는 백 퍼센트 좋지만, 그게 꼭 울퉁불퉁 벗은 몸의 소방관 달력 팔아서 해야 하는지 좀 불편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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