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항소심서 징역 7년 구형받은 지 하루 만에 '화이트리스트' 검찰 조사
"정의 지키는 검사의 직무는 태산보다 무겁고 크다"던 김기춘의 검찰총장 퇴임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오늘(20일) 보수우파 단체 지원 ‘화이트리스트’ 관련 혐의로 검찰에 불려나와 조사를 받았습니다.

어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7년을 구형받은 지 하루 만에 별건으로 다시 검찰 조사를 받은 겁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전경련을 압박해 수십 개 보수단체에 총 69억원을 지원하도록 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특검 조사 결과 김기춘 전 실장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에게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좌파들은 잘 먹고 사는데 우파들은 배고프다, 잘 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이분법으로 나라를 가르고 운영한 김 전 실장의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로,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서 전경련 돈을 주머니 쌈짓돈쯤으로 생각했음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어제 블랙리스트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도 “북한과 종북 세력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공직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제가 가진 생각이 결코 틀린 생각은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결코 사리사욕이나 이권을 도모한 것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위해 애국심을 갖고 성실히 직무수행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그러면서 “남은 소망은 늙은 아내와 식물인간으로 4년간 병석에 누워 있는 아들의 손을 다시 한 번 잡아주는 것”이라고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의 세계관을 새삼 언급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코마에 빠진 아들을 둔 가족사를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듭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파견검사로 초헌법적인 유신헌법 초안 실무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신헌법에 기초한 긴급조치로 수많은 누군가의 ‘아들’들이 정권을 비판하고 저항했다는 이유로 중정 등에 잡혀 들어가 모진 고초와 수모를 당했습니다.

김 전 실장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간첩과 공안사범 때려잡는데 누구보다 자신의 표현대로 ‘성실히 직무를 수행’ 했습니다.

가깝게는 노태우 정부 시절 국가 권력에 의한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인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 당시 법무부장관으로 사건 조작 책임의 정점에 김 전 실장이 있었습니다.

“정의를 지키려는 검사의 직무는 태산보다 무겁고 크다. 이는 말로서가 아니라 반드시 행동으로 지켜져 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조국 민정수석, 적폐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말이 아닙니다.

지난 1990년, 김기춘 전 실장의 검찰총장 퇴임사입니다.

김 전 실장은 이 퇴임사에서 “강력한 검찰이 되고 싶은가. 그러려면 높은 도덕률과 탁월한 실력으로 무장하라”고 후배 검사들을 독려했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검찰 국정농단 수사팀이 ‘김기춘 검찰총장 퇴임사’를 기억하는지 못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찰은 화이트리스트도 철저히 수사해 김 전 실장 등을 추가 기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입니다.

‘인생유전’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 ‘앵커 브리핑’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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