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 뜻하는 '인육(印肉)', 법전에 버젓이... 시민들은 '사람고기' 연상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말... 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에 등장
법제처 ‘순화 대상 용어’로 지정했지만... 10년 넘게 여전히 안 고쳐져

[법률방송뉴스] '인육'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사람고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뜻을 떠올리시는 분이 대부분일 텐데요. 우리 법전에 이 '인육'이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하는데요.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18일)은 '인육'입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병헌, 최민식 주연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입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자... 내장을 다 썼나?”

'인육'을 먹는 끔찍한 장면으로 논란이 됐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법전에 이 '인육'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민주공화국 국민의 기본 권리 중의 권리인 투표를 규정하고 있는 국민투표법입니다.

국민투표법 제78조 '무효투표' 조항입니다. 2항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투표는 무효로 하지 아니한다' 6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육으로 오손되었으나, 어느 난에 기표된 것인가가 명확한 것" 이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인육으로 더럽혀졌으나'... 시민들은 당연히 ‘그 인육’을 떠올립니다.

[이요한 (31) / 인천 남동구]
"인육이요? 사람고기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국민투표법에 나오는 인육은 그 인육이 아닙니다.

국민투표법 ‘인육’은 한자로 '도장 인(印)' 자에 '고기 육(肉)' 자를 씁니다.

직역하면 '도장 고기', 의역하면 '도장밥', 즉 도장을 찍을 때 쓰는 '인주'라는 뜻입니다.

법전 속 '인육'은 '인주'라는 뜻이라고 가르쳐주자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박성오(64) / 서울 강남구]
"이게 혹시 일본식 한자어 아니에요? 그것은 고쳐야죠."

[류미정(47) / 경기 군포시]
"인육은 사람고기, 이런 느낌이 나는데요. 이것은 전문용어이고 우리가 와 닿지 않는 것 같아요."

인육, 도장고기, 도장밥. 낯설기만 한 이 표현은 어디서 나왔는지 그 유래도, 정체도 불분명한 일본식 한자 조합입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
"저희도 어원사전을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게 '일본에 있는 인육에서 이렇게 왔다'라고만 돼 있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인 1914년 4월 쓰여진 '순종실록부록' 정도에나 나옵니다.   

"공문에는 인육으로 흑색을 쓰며"가 그것입니다. '공문에는 검은 인주를 쓴다'는 내용을 저렇게 표현한 겁니다.

[문명재 / 한국외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
"인주가 없을 때는 본인을 증명할 때 피로 자기임을 증명하는 도장을 찍었었는데, '육체의 일부, 피를 가지고 인주를 대용했다' 그런 설이 가장 유력하고요..."

법제처는 지난 2006년 법전 속 '인육'을 더 써서는 안 되는 순화해야 할 용어로 지정하고, '인주'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지만, 10년이 넘도록 '인육'은 우리 법전에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인육'과 '인주', '인육으로 오손되었으나'와 '인주로 더렵혀졌으나'. 어느 쪽이 더 이해가 쉽고 명확한지는 비교 자체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도대체 왜 안 바꾸는 걸까요.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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