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속재산처리법 시행령 등 우리 법전 곳곳에 남아있어
'검사에 임하다'는 뜻... 국가 행정기관 직원의 '현장조사'
"권위적·수직적 표현"... 법제처 등 순화 권고에도 안바꿔
[법률방송뉴스]
올해는 대한민국이 미 군정청에서 사법권을 넘겨받은 사법주권 회복 70주년이기도 하지만, 미 군정청에서 일제가 남긴 귀속재산에 관한 권한을 넘겨받은 경제주권 회복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관련해서 오늘(13일)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는 이 귀속재산처리법 시행령 등에 나오는 '임검'(臨檢)이라는 용어 얘기 해보겠습니다.
김정래 기자입니다.
[리포트]
‘귀속재산’(歸屬財産), ‘적산’(敵産)이라고도 불리는, 패망한 일제가 한반도에 남겨두고 간 일본인 소유 재산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인 1948년 9월 11일, 해방 이후 3년간 미 군정청이 가지고 있던 귀속재산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양도받습니다.
그리고 제정된 법이 바로 ‘귀속재산처리법’입니다.
이 귀속재산처리법 시행령 제43조에 '임검'(臨檢)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당해 공무원으로 하여금 귀속재산 소재지 또는 사무소에 임검하여 서류, 장부 기타 물건을 조사하거나 질문을 할 수 있다"입니다.
시민들에게 ‘임검’이라는 말을 아는지 물어봤습니다.
[박명숙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임검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조광석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임검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어, 안 들어봤는데요"
'임검(臨檢)'은 '임할 임(臨)' 자에 '검사할 검(檢)' 자를 씁니다.
‘검사에 임한다’, 그냥 ‘검사한다’는 뜻입니다.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는 국가 행정기관 직원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현장에 가서 조사하는 일, 즉 ‘현장조사’ 정도의 뜻으로 쓰입니다.
임검은 또 형사소송법상 ‘현장검증’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행정기관의 직무가 방대하다보니 어업자원보호법, 근로기준법 시행령, 선박안전조업규칙 등 우리 법전 곳곳에 이 ‘임검’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어업자원보호법 제2조에는 "위반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단순한 통과선박일지라도 이를 정지시키고 임검, 수색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이런 식입니다.
임검, 검사에 임하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 2016년 ‘임검’이 “조사자와 피조사자, 조사대상을 위계에 의해 구분하는 권위적인 용어”라며 개선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강현철 /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법률용어나 아니면 경찰 쪽에서만 쓰고 있고요. 좀더 쉽게 현장조사나 이런 쪽으로 관련돼서 ‘용어를 바꾸자’라는 쪽으로 얘기를 한 거고요"
법제처 역시 지난 2016년 임검이 ‘조사자와 피조사자를 수직적 관계로 두는 권위적 용어’라며 정비를 권고했지만 말 그대로 ‘권고’에 그쳤을 뿐, 바뀐 건 없습니다.
[법제처 관계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거를 고쳐줬으면 좋겠다’라고 부처한테는 얘기를 하는데 근데 그게 뭐 저희가 이렇게 권고를 했을 때 그것들이 다 강제 대상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어렵고 낯설고 권위적이기까지 한 법률용어들을 알아서 찾아내 순화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법제처가 '좀 순화를 하라'고 권고를 해도 꿈쩍도 안하는 우리 정부부처 행정관청들.
어떡하면 바뀔까요. 바꿔야 할 건 법률용어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바꿔야 합니다.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김정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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