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속재산처리법'에 일본식 한자어 '계출' 여전히 남아 있어

[법률방송뉴스] 어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일이었는데요.

오늘(30일)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는 일제가 남긴 잔재, 우리 법전에 남아있는 일본말 한자 얘기 해보겠습니다.

‘계출’(屆出)이라는 단어입니다. 김정래 기자입니다.  

[리포트]

귀속재산(歸屬財産), 흔히 ‘적산’(敵産)이라고 불리는 일제 당시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말합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점령군으로 한반도 이남을 ‘접수’한 미군정은 이 적산에 대한 관리와 운영, 처분 등 모든 권한도 함께 갖습니다.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한 달 뒤,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으로부터 일제가 남기고 간 귀속재산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양도받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체결한 최초의 ‘경제협정’입니다.

이후 이 귀속재산, 적산 불하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우리나라 ‘정경유착’의 시작이자 뿌리라 할 만합니다.

이때 불하 받은 적산을 바탕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해 지금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재벌’로 성장한 기업도 여럿 있습니다. 

이 귀속재산 처리법 시행령 제11조에 '계출(屆出)'이라는 낯선 한자가 등장합니다.

“귀속재산을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자는 당해 재산의 입찰 전일까지 관재청장에게 귀속재산 우선 매수원을 계출하여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시민들에게 ‘계출’이라는 단어를 아는지 물어봤습니다. 

[한지수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계출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계출이요. 잘 모르겠는데요“

[임병순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계출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못 들어봤는데요"

‘계출(屆出)’은 ‘이를 계(屆)’에 ‘날 출(出)’ 자를 씁니다.

한자 뜻풀이를 해보면 ‘이르고 나간다’, 즉 ‘신고’라는 의미입니다.

계출은 그리고 단순히 낯설고 어려운 한자가 아니라, 일본어로 '토도케데(とどけで)'라고 발음하는 그냥 일본말을 한자로 옮겨놓은 단어입니다. 

[기재부 관계자]
(계출이라는 말이 있던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계출이라는...)
“제가 잘 몰라서요. 그 귀속재산 처리법 시행령이요...”
(계출 처음 들어보셨죠) “어... 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2년 4월 ‘계출’을 ‘일본어투 용어’라며 ‘신고’라는 쉬운 말로 고쳐 쓸 것을 의결했지만, 우리 법전에선 6년이 넘도록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스탠드업]

일제가 남기고 간 것은 재산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법전 곳곳에 이렇게 그들의 말, 그들의 잔재를 남기고 갔고, 우리는 여전히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또는 안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김정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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