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법학 진흥을 위한 토론회' 개최 "기초법학 교과목 필수제 등 제도 개선 필요"

[법률방송뉴스] 오늘(7일) 서울대 로스쿨에선 학계와 법원행정처, 법무부, 대한변협 관계자 등이 두루 참석한 의미 있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기초법학 진흥을 위한 토론회'가 그것인데, 어떤 말들이 나왔는지 현장을 장한지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오늘 서울대에서 열린 '기초법학 진흥을 위한 토론회'는 예비 법조인들을 배출해내는 로스쿨 교수들의 자기비판과 반성으로 시작됐습니다.

한국법철학회가 로스쿨 교수 153명을 대상으로 '로스쿨에서 기초법학 교육이 충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조사해보니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이 충실하지 못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전체의 절반가량인 52.9%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37.3%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습니다.

9.8%만이 다소 충실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답했고, 매우 충실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답한 교수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권오곤 한국법학원 원장 /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 의장]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기초법학의 위기라는 문제가 지속해서 거론되고 있으며 기초법학 과목들은 그 수강신청자가 적어 폐강이 속출하고 있고 그 연구자도 계속 줄고 있는 등 위기에..."

분류를 하자면 법학은 재판이나 행정사무 등 실제 법 해석과 적용과 관련된 '실용법학', 다른 하나는 법의 이론적 인식을 목적으로 하는 '기초법학'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법철학이나 법사상사, 법제사, 법사회학 등이 기초법학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초법학이,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0% 안팎까지 떨어지며 찬밥 신세가 된 지 오래입니다.

로스쿨이 변시 입시학원으로 전락하면서 변시 합격에 유리한 이른바 가성비 좋은 '실용법학' 위주로 배우고 가르치는 겁니다.

[정영환 / 한국법학교수회장]
"외형상 로스쿨제도가 정착한 것 같이 보이지만, 기초법학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이 너무 낮아서 모든 로스쿨이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학생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축사를 위채 참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도 기초법학의 퇴보와 몰락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기초법학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박범계 / 법무부장관]
"실용성과 효율성만 강조되고 기초법학이 외면받는 교육 현실은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기초법학에 대한 이해와 탐구는 실정법 너머의 법이념을 꿰뚫는 통찰력을 갖춘 법률가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종엽 / 대한변호사협회장]
"기초법학은 법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고, 인류의 사상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초법학은 법학 전반을 아울러 법 원리를 살피고, 어떻게 법을 이해하며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한편 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를 제시합니다."

'법조실무와 기초법학'을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대법관 출신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은 법관 시절 허덕였던 경험을 담담히 전하며 기초법학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 / 대법원 양형위원장]
"상급법원의 판례와 다수설에 의존해서 눈 감고 넘어가던 문제들에 대해서 이제는 더 이상 눈 감을 수 없게 됐던 것입니다. 판례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 가야 하는 어려운 난제들의 숲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게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이에 창의적이고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는, 시대를 선도하는 판결을 하기 위해선 기초법학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기초법학과 실용법학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기초법학이라는 뿌리 위에 실용법학이라는 줄기와 가지, 잎이 피어나는 한 나무라는 게 김영란 전 대법관의 말입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 / 대법원 양형위원장]
"연역의 세계가 아니라 귀납의 세계라는 방패막이 아래에서 선례를 변경할 법률적 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고, 입증책임의 분배라는 낡은 무기로 결론 내리면서, 아슬아슬하게 한 건 한 건 사건을 처리해나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어 첫 번째 주제 발표를 맡은 한국법사학회 부회장 정병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법사를 잊은 법학도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고,

한국법철학회 기초법학 진흥 TF 양선숙 경북대 교수와 오민용 서울대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초법학 교육·연구 현황과 기초법학 진흥을 위한 대안'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양 교수 등은 기초법학 교과목의 필수제 또는 학점이수제, 기초법학 교과목 개설과 운영 현황 로스쿨 평가지표 반영, 하계 및 동계 계절학기 기초법학 강좌 로스쿨 학점 인정 등의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주제 발표 이후엔 교육부 법학교육위원회 위원장인 김인재 인하대 교수, 수원고법 박광수 판사, 법무연수원 나희석 검사, 박상수 대한변협 부협회장 등 법조계 인사들이 기초법학 육성과 발전 방안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기초법학 없는 법학 교육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허무하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한기정 /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기초법학은 법학의 학문성을 지탱하는 버팀목입니다. 당장 변호사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당장 법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시한다면 법학은 학문성을 상당 부분 잃고 기술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우리 법학과 법조의, 그리고 법치주의의 손실입니다."

기초법학의 위기는 대한민국 법조계 자체의 위기라는 게 오늘 참석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자 진단입니다.

오늘 토론회가 기초법학 진흥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과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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