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디지털 성범죄 진화 못 따라가, 죄 경중 제대로 심리했나"... 현직 판사의 '자기반성'
"법원 디지털 성범죄 진화 못 따라가, 죄 경중 제대로 심리했나"... 현직 판사의 '자기반성'
  • 장한지 기자
  • 승인 2020.07.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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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지속성·광범위성·회복 불가능성에 비해 제대로 된 재판·처벌 못 이뤄져"

[법률방송뉴스] 'n번방 방지법의 의의와 향후 과제' 국회 토론회, 오늘(20일) 토론회엔 현직 판사와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가 토론자로 나와 관련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현직 검사와 판사가 보는 디지털 성범죄 재판과 처벌, 어떤 말들을 했을까요. 현장을 장한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6일 서울고법은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다크웹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미국 사법당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불허합니다.

여죄가 있다면 한국 사법기관에서 수사받고 단죄받아야 한다는 것이 송환 불허 이유였습니다.

[손정우 아버지]
"3살 이후 어미 없이 자랐잖아요. 그렇죠. 미국으로 인도된다는 것이 물론 아들로서는 죄는 인정하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그쪽으로 보낸다는 것이 그냥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이죠."

하지만 인도 불허 결정이 타당한지를 두고 법조계에선 갑론을박이 일었고, 인도를 불허한 재판장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청원엔 50만명 넘게 동참하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손씨의 미국 인도가 성범죄 억제에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했던 한국의 아동 포르노 반대 단체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줬다"고 보도하는 등 주요 외신들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로라 비커 BBC 서울특파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검사들은 배가 고파 달걀 18개를 훔친 남성에게 징역 18개월을 구형했다. 이것은 손정우와 똑같은 형량이다"고 적었습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한국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꼰 겁니다.

이와 관련 오늘 토론회에선 사법부가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제대로 따라가거나 반영하지 못한 면이 있다는 ‘자기반성’이 나왔습니다.

[범선윤 판사 / 수원지법 성남지원]
"그동안 법원이 디지털 기술과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크웹이 다른 웹들과 어떻게 다른지, 텔레그램 메신저가 디지털 성범죄에 주로 이용된 이유가 무엇인지, 비트코인이라는 특수한 결제방법을 이용한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어떤 식으로 관전 행위, 소지가 이뤄지는지 등에 대해서 디지털 범죄의 진화속도를 제대로 따라갔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있습니다."

피해의 지속성과 광범위성, 회복 불가능성 등 피해의 심각성에 비해 제대로 된 재판과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범선윤 판사 / 수원지법 성남지원]
“조직적이고 지능적이며 교묘한 범행수법이나 신종수법을 이용한 범행임에도 그러한 중요한 내용이 수사기록에 구체적으로 현출되지 않고 범죄의 결과물로만 제출돼서 재판과정에서 죄의 경중이 제대로 심리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약식명령이 청구된 사건들의 경우 수사기록에 영상물이 전부 첨부돼 있지 않고 캡처 사진이나 수사보고서 형태로 부분적으로만 현출돼 있어 사건의 심각성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던 면도...

법원과 검찰 모두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건데, 범선윤 판사는 개선책으로 우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강화된 양형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범선윤 판사 / 수원지법 성남지원]
"사법부가 시대적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여 디지털 성범죄를 엄중하게 인식하지 못했고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데 법원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을 접할 때마다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하여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판사님들이 깊이 공감하고..."

양형기준 마련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지도 화두로 제시됐습니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각각 성폭력 피해 양태와 일상을 회복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범선윤 판사 / 수원지법 성남지원]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는 처벌불원 의사가 표시됐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촬영물이나 성착취물이 유포됐다면 그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되거나 재생산될 우려가 있고 피해자는 지속적인 불안감에..."

이는 다시 피해자의 '피해회복' 문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데, 유포된 성착취물 삭제엔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범선윤 판사 / 수원지법 성남지원]
"피해회복을 위해서는 디지털 공간에 있는 범죄결과물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법촬영물이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디지털 공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더라고 수사단계에서 압수수색 돼 몰수나 폐기가 가능할 정도로 특정돼 있지 않다면 현실적인 집행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그밖에 몰카나 성착취물 영상이 유포돼 있는데 피해자가 이를 모를 경우 법적인 조치나 처벌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범선윤 판사 / 수원지법 성남지원]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는 물리적인 증거가 존재하는 반면 피해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들은 본인이 피해를 당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이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재판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런 한계와 사각지대는 법과 제도 미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에 추가적인 법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지적입니다.   

[김진우 검사 / 법무부 형사법제과]
"말씀하신 것처럼 그럼에도 '온라인 그루밍' 처벌이라든지 미처 입법화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지적이 계속 있었고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서 입법적 개선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저희도 공감하고..."

아울러 디지털 성범죄 대응 사각지대 해소, 처벌 강화와 함께 신속하고도 실효적인 피해회복, 이를 위한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강조했습니다.    

[박종우 회장 / 서울지방변호사회]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과 디지털 성폭력 범죄의 예방과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이 실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디지털 성폭력 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사법제도 불신을 해소하고 해당 범죄에 대한 엄중대응이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화답해야..."

n번방 방지법이 지난 20대 국회 때 통과됐지만 사법부가 국민 정서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입법뿐만 아니라 검찰과 법원 등 사법기관 또한 시대적 요구를 따라가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장한지 기자 hanji-jang@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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