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아 앵커 = 이번 주 ‘LAW포커스' 신년 기획으로 사법개혁에 대한 주제로 얘기를 해보고 있는데요. 마지막 순서로 법조계가 보는 사법개혁은 무엇인지 들어보겠습니다.

대법원장과 헌재 소장의 취임으로 기나긴 사법 공백이 끝났습니다. 이제 새로운 사법부 수장들이 이끌어가야 할 국내 사법개혁은 어떤 방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천식 변호사(법무법인 씨제스)= 글쎄요 ‘사법개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개혁(改革)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급진적이거나 본질적인 변화가 아닌, 사회의 특정한 면의 점층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일종의 사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개혁’은 ‘혁명’과 2가지 점에서 구별되는데요. 첫째로 급진적인 변화가 아닌 점진적인 변화이어야 하고, 둘째는 그 본질에 더 충실해야 하고 본질을 변화시키거나 희석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법개혁의 기본 방향은 곧 사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한 다음, 그 본질에 더욱 충실하도록 현재의 사법 현실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방향이어야 할 것입니다.

▲앵커 = 그렇다면 사법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안천식 변호사= 사법의 본질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해 국민 각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임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께서 이끌어 나가야 할 사법개혁의 기본 방향은 곧 ‘공정한 재판’ ‘신속한 재판’ 그리고 이를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지금의 법원 및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법조 현실을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고쳐나가도록 노력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말은 쉽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사법불신이란 곧 공정한 재판에 대한 의문, 신속한 재판에 대한 의문, 재판을 통하여 국민들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정의를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재판 지연이 큰 사법부 문제로 지목이 되면서 법원장추천제 등 여러 안들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가장 먼저 선제되어야 할 개혁안은 뭐라고 보나요?

▲안천식 변호사= 재판지연 문제는 최근 법원을 비롯한 법조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난관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원인에 대하여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재판지연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동안 법원의 잘못된 법관 인사 및 전보 문제가 축적되면서 그 결과가 최근에서야 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두 가지 면에서 원인을 짚어 보고 싶은데요.

첫째는 법관 순환 근무제를 들 수 있습니다. 법원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매년 전국 법관의 순환 보직 인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방 법원 2~3년, 수도권 법원 2~3년, 서울 지역 법원 2~3년 순환 근무하는 것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법관 순환보직 근무제가 법관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법관의 중앙집권화를 통한 서열화를 가속시키는 폐해 뿐 만 아니라 재판 지연, 재판에 대한 책임성 결여, 법관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무마, 지방 토호와의 결탁 등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라는 사법의 본질을 방해하는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애초 법관 순환보직제는 재판에 있어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법관이 특정 지방에 장기 근무할 경우(이른바 향판) 자칫 그 지방 토호 세력과 결탁하여 공정한 재판을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거 70~80년대에는 유용할 수 있을 지언정, 교통통신의 발달로 서울과 지방이 실시간 소통하고, 전자소송 등 디지털 기술이 활성화된 지금의 현실에서는 전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지방과 서울 등 지역간 잦은 순환보직으로 법관 개개인의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야기하여 사기를 저하시키고, 재판 업무에 집중도를 떨어뜨리며, 나아가서 법관의 재판에 대한 책임감을 저해하고, 사법수요자 입장에서도 법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대한 사각지대를 발생시키는 등 재판의 질을 근본적으로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만 개선하여도 법관의 재판 지연 문제는 상당히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되며, 아울러 법관들의 사기도 진작시켜 재판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다른 한편 일반 국민들로서는 장기간 근무하는 법관에 대한 평판을 축적하여 명실상부한 법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실제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과거 이른바 향판(鄕判) 제도를 보다 활성화시키고,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견제감시 장치를 제도화하는 것이 법원이 기울여야 할 중요한 개혁과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법관 수 부족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재정적, 입법적 뒷받침이 되어야 할 부분으로서 대법원장 등의 결단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법원장 추천제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이는 사법부 내의 사법 민주화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이해되고, 사법부 내의 민주화는 사법부 독립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법 민주화 역시 사법 본질의 한계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되어야 된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사법민주화는 사법개혁을 위한 필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사법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즉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법민주화 내지 법원장 추천제의 도입이 권장될 수 있지만, 법원장 추천제 역시 사법의 본질과 균형을 이루는 방향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며, 혹여 현실적으로 사법의 본질에 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러한 부분에 대한 과감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앵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또 하나 오는 2월 있을 법관 인사도 초미의 관심입니다. 조 대법원장의 색깔이 확연히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어떤 인사들이 법원 개혁 의지를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안천식 변호사=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은 법조계 내의 ‘딸깍발이’ 라고 불릴 만큼 많은 법조인 및 법관들의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신임 대법원장의 성향을 보수로 분류하는 의견도 있지만, 그분의 판결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어떤 특정한 이념 성향에 치우쳤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알기로는 법원 내 대표적 이념 단체라고 일컬어지는 ‘민사판례연구회’나 ‘우리법연구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이른바 색깔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이번 법관 인사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장차 법관의 순환근무제 범위를 줄여나가면서 대법원장 스스로 법관 인사 권한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고, 일부 권한을 각급 법원으로 이양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최근 대법원장은 신년사에서 "신속하지 못한 재판으로 고통받는 국민은 없는지,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억울함을 당한 국민은 없는지, 법원의 문턱이 높아 좌절하는 국민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하셨는데, 우리 사법에 깊게 드리워진 사법불신의 음습한 내막을 드러내고 치료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앵커= 사법개혁과 관련한 해외의 경우는 어떤가요?

▲안천식 변호사= 앞서 본 바와 같이 사법개혁은 특정 국가의 사법제도가 사법의 본질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느냐의 문제로서 외국의 사법제도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예컨대 노르웨이 등 사법 선진국은 참심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반 국민 중에 선출한 참심원 보다 관료법관을 훨씬 더 신뢰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배심제도 역시, O.J 심슨 사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특히 1992년 LA폭동 사건의 촉매제가 된 사건(로드니 킹 사건)도 배심재판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즉 참심제도나 배심제도가 국민의 재판 참여 활성화로 법관의 독점적 재판 권한을 견제하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가 곧 우리 사회의 사법불신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여기서 사법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각기 다른 사법환경과 재판의 투명성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바로 우리 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전현직 판검사가 퇴임 후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저항감 없이 떳떳하게 변호사로 개업하는 사법 환경이 그것입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판사와 검사, 특히 판사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최고의 직업이자 대단히 명예로운 직업입니다. 반면, 변호사의 경우 판검사의 대척점에서 일하면서 많은 비판과 조롱을 받기도 하는 직업이죠.

사법 선진국 어느 나라도 판사가 퇴임 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떳떳하게 변호사로 개업하는 사회는 없습니다. 유독 우리나라만 판사 퇴임 후 아주 당당하게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대형로펌에 취업하는데, 그에 반해 재판 과정의 투명성은 미국 등 사법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한 수준입니다.

아마도 역사적으로는 광복 후 사법인력이 극히 부족한 탓에 이를 보충하는 방편으로 법관 퇴임 후 자연스럽게 변호사 개업을 하던 관행이 고착화된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하여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법의 본질이 왜곡되어 판검사 퇴임 후 변호사를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히고, 판검사 전관 출신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을 부채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부자연스럽고, 사법의 본질 자체를 왜곡하는 현상으로 고착되고 있으며, 사법불신의 원흉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사법개혁을 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국의 사법제도와 단순 비교하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법환경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고, 이에 걸맞는 대안을 찾아나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즉 현재와 같은 사법환경 즉 전현직 판검사들이 거리낌 없이 변호사를 개업하는 환경에서도 현직 판검사들이 흔들림 없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우리 사회의 사법정의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해 나가야 하고, 그만큼 재판 과정과 결과의 투명성은 훨씬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사법개혁에 대한 못 다한 말씀 한마디 해주시죠. 

▲안천식 변호사=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은 ‘법관의 양심’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법관은 독립적으로 재판 직무를 수행하며, 이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는 등 신분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법관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부여받았기에, 헌법은 법관에게 재판독립과 철저한 신분보장을 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현직 법관들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우리 사회의 사법불신을 일소하고 사법신뢰의 길로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법관도 사람인데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한 같은 법관끼리는 그 실수를 제대로 발견하거나 지적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부족한 점은 일반 국민 또는 변호사들과 겸허히 소통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말이지만, 현재까지 법원은 너무도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에 인색해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반 국민 특히 변호사들도 법원과 소통하면서, 문제가 있는 판결에 대하여는 합리적인 비판을 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상호 작용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사법불신은 점차 해소되고 법적 정의가 바로 서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앵커= 법조계와 국민 모두 한 마음으로 소통하고 자정적인 개혁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 강조해주셨습니다. 오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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