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어렸을 때 친구들은 브룩 쉴즈(Brooke Shields), 제임스 딘(James Byron Dean), 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 등이 코팅 된 책받침에 관심이 많았다. 친구들과 달리 나는 미남 지휘자 카라얀(Herbert von Karaja)이 눈 감고 지휘하는 모습의 사진을 코팅해서 방안에 붙여 놓았다.

오디오 마니아였던 아버님은 언제나 집안에 웅장한 오케스트라 소리가 울려 펴지도록 LP판을 틀어놓으셨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 소리에 빠졌고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대장인 지휘자에 대해 동경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1908~1989)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50년대 중반부터 죽을 때까지 35년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그의 음반은 사후까지 2억장 정도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에게는 성악가 조수미씨를 발탁한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 10대 지휘자’라고 구글 검색을 해보면 모두 남성 지휘자(Maestro)들만 나온다는 것.  2017년 세계적 클래식 음반사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 50명'을 선정했는데 이 중에서도 여성 지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음악사에서 여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작곡가나 연주자보다도 가장 최근까지도 여성이 차별받거나 배제되는 영역이었다. 사실 오케스트라 단원조차 여전히 대부분 남성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 지휘자들의 활약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이 선보이고 있다.  마리아 피터스(Maria Peters) 감독의 영화 '더 컨덕터(The Conductor)', 도트 필드(Todd Fiela) 감독의 영화 '타르(Tar)', 그리고 배우 이영애가 출연한 드라마 '마에스트라(Maestraㆍ이태리어로 여성 지휘자를 뜻하는 말)' 등이 그것이다.

영화 '더 컨덕터'는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지휘한 안토니아 브리코(Antonia Bricoㆍ1902~1989)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수십명의 남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여자가 지휘할 수가 없다“는 편견이 가득했던 시절,  그녀는 "음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만큼 음악에 미쳤다"고 말하며 열정과 투지 만으로 편견을 넘어서며 여성 지휘자로 우뚝 섰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실력있는 여성 지휘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100년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니는 어느 오케스트라보다 ‘금녀의 장벽’이 높은 곳이다.  여성 단원을 1982년부터 받기 시작했고 지난해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여성 악장을 뽑았다. 그런데 내년에 동양인 여성 최초로 우리나라 여성 지휘자 김은선이 베를린 필하모니의 객원지휘를 맡게 된다. 김은선은 스페인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 국제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날렸고, 2010년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여성 최초로 지휘봉을 잡았다. 2021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음악감독으로 발탁돼 계속해서 '금녀'의 벽을 깨고 있다.

또한, 게오르그 솔티(Sir Georg Solti)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지휘자 성시연의 활약도 눈부시다. 2007년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한 성시연은 2007년 보스턴 교향악단 사상 최초의 여성 부지휘자로 임명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를 거쳐 2023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첫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됐다.

자랑스러운 이 두 여성 지휘자가 내년에 국내에서 공연을 갖는다. 성시연이 내년 1월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협연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 신년음악회를 지휘한다. 김은선은 2024년 7월1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브와 협연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한다. 세계 무대를 사로잡는 한국의 여성 지휘자들이 계속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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