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찍다’는 뜻의 '압인'과 '날인'에서 앞 글자 딴 일본식 조어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45년 도장가게 운영한 주인도 모르는 말
포털 사전 검색하면 '앞날' 아니냐며 '단어 철자 확인해 보세요'
2009년 법제처 '정비 대상 용어'에 포함됐지만 아직 그대로 방치

[법률방송]

‘압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게 생각나시나요.

발음만 들어서는 앞으로 다가올 날을 뜻하는 ‘앞날’이 생각나는데요. 전혀 다른 글자에 전혀 다른 뜻이라고 합니다.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단어 압날, ‘도장’과 관련되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은 압날입니다.

김정래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런저런 서류에 도장 찍을 일이 많은 대한민국 법조계의 메카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서울중앙지법 부근의 한 도장 가게입니다. 

재질도 색도 글씨체도 다양한 도장들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45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는 도장 가게 주인에게 '압날'의 뜻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한남정 사장 / OO문화사]
(도장업 하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내가 한 45년... 압인이라는 것은 요것 갖고 압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압날이란 것은 내가 처음 들어본 소리요."
 
'압날'(押捺)이라는 낯선 단어는 '검찰보존사무규칙' 제9조(보존절차) 1항에 나옵니다.
 
"보존사무 담당직원은 재판확정기록 표지의 우측 상단 여백에 기록분류인을 압날하고..."라는 문구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포털 어학사전을 검색해 봤습니다.

없는 게 없다는 포털 검색 결과는 그러나 '압날'에 대한 검색결과가 없습니다.

'단어의 철자가 정확한지 확인해 보세요'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었습니다.

포털도 모르는 '압날',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김상애·유희순 / 서울시 개포동]
"처음 봤어."
"이 글자를 보니까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지 그 전에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이런 단어가 있는지조차."

[신수영 / 경기도 평택시]
(혹시 압날하다 보신적 있으십니까)

"없어요."

(처음 보셨습니까)

"네. 네..."

압날은 일단 한자로는 '누를 압(押)' 자에 '누를 날(捺)' 자를 씁니다.
 
그대로 해석하면 '누르고 누른다'는 알 수 없는 뜻이 됩니다.

압날은 '도장을 찍다'라는 뜻의 '압인'(押印)과 '날인'(捺印)에서 앞글자만 따온 말입니다.

즉, 그냥 '도장을 찍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검찰사무규칙 '기록분류인을 압날하고'는 '기록분류 도장을 찍고'라는 고쳐놓고 보면 정말 쉬운 말입니다.

이 쉬운 말을 '기록분류인을 압날하고'라는 황당한 문장으로 써온 것입니다. 

[이수정 / 서울시 종암동]
(도장을 찍는다는 말인데 연상이되십니까, 압날하다)

"글쎄요..."

(잘 모르시겠어요)

"네... 생소한 단어 같아요."

사실 이 압날이라는 한자는 '오우나츠'라고 발음되는 전형적인 일본식 한자어 조합입니다.
  
[인선경 / 경기도 성남시]
(이게 일제식 잔재 용어라면 법률용어로 계속 쓸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요. 그런데 이건 정말 모르겠어요.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더 큰 문제는 이 '압날'이라는 단어가 지난 2009년 법제처 정비 대상 순화용어에 이미 포함돼, 정비하기로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쳤다는 사실입니다.   

국회의 법 개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검찰사무규칙은 법무부나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10년 가까이 고치지 않고 그냥 써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법무부 관계자]

“아마 그동안 하는 과정에서 약간 좀 빠진 것 같기는 한 것 같아요. 이후에 개정 수요 때 한번 반영을 해봐야죠...” 

검찰이나 법무부는 '압날'이라는 단어를 고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40년 넘게 도장을 만져온 도장 가게 주인조차 그 뜻을 모르는 낯선 일본식 한자 단어 압날.

어떻게 보면 '악랄'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압날'이라는 단어를 법무부와 검찰은 계속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김정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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