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지, 가도·곤색·시건 같은 정비 대상 일본식 용어”
[법률방송]
‘행선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것 같은데요.
우리 법전에도 이 행선지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전 국민이 다 아는 이 행선지라는 단어를 법제처가 무슨 이유에선지 정비 대상 용어, 그러니까 법전에서 쓰면 안 되는 용어로 지정해 놓고 있다고 하는데요.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18일)의 단어는 ‘행선지’입니다.
박지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입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또 어디선가에서 온 사람들로 활기차게 북적거리는 터미널 매표소 창구.
“승차권 발매 후 날짜, 시간, 행선지를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문이 눈에 띕니다.
당연히 ‘행선지’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시민은 없습니다.
[한수빈/부산시]
(행선지라는 단어 알고 계시죠?)
"네..."
[시민]
"행선지 (알고 계시죠?) 예... 근데 지금 방황하고 있어요. 지금 행선지를..."
이 행선지라는 단어는 우리 법전에도 나옵니다.
철도차량운전규칙 제24조 “열차 운행상 혼란이 발생한 때에는 열차의 종류·등급·행선지 및 연계수송 등을 고려하여 운전정리를 행하고...“ 라는 조항입니다.
‘행선지(行先地)’는 한자로 다닐 ‘행(行)’, 먼저 '선(先)’, 땅 ‘지(地)’자를 씁니다.
직역 하면 ‘먼저 갈 땅’ 이라는, 익히 아는 뜻과는 좀 다른 낯선 뜻이 됩니다.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면 익숙한 뜻이 나옵니다.
행선지, 명사, ‘떠나가는 목적지’ 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나오는 “가는 곳 으로 순화”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순화, 그러니까 행선지라는 말은 다른 말로 고쳐서 써야 할, 즉 써서는 안 되는 단어라는 얘기입니다.
이는 행선지라는 단어가 ‘유쿠사키’ 라고 발음되는 전형적인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전혀 몰랐다는 반응입니다.
[김혜숙/경기도 김포시]
(일본식 단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몰랐어요, 일본식 단어인지..."
[시민]
"아뇨, 처음 들었어요"
[원금옥/강원도 원주시]
"아, 일본식 단어면 바꿔야 되겠죠"
일제시대부터 써와서 익히 아는 뜻이지만 어느 순간 정작 일본식 한자어인지는 모르게 된 단어 ‘행선지’.
이 때문에 법제처는 ‘행선지’ 라는 단어를 임시도로를 뜻하는 ‘가도’, 치료를 뜻하는 ‘가료’, ‘곤색’, ‘구좌’, 시건장치 할 때 ‘시건’ 등의 단어와 함께 정비해야 할 일본식 용어 목록으로 정해 두고 있습니다.
[법제처 법령정비과 관계자]
“법령을 소관하고 있는 소관 부처에 저희가 계속해서 순화 용어에 대해서 해달라고 요청을 드리고 있는 상황이고. 그게 반영이 아직 안 된. 아직도 그 예전 쓰던 용어 그대로...“
법령 총괄 부처로서 일선 관할 부처에 지속적으로 요청은 하는데 반영이 잘 안 된다는 겁니다.
국회 법 개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처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규칙’을 왜 개정하지 않고 ‘행선지’라는 일제 때 잔재 표현을 그대로 쓰는 건지 국토부에 문의해 봤습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
“아마 다른 거 개정을 하려고 지금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그거 개정할 때 일괄 같이 개정하려고 그렇게 아마 준비를...”
이 ‘행선지’라는 일본식 한자는 철도 규칙 뿐 아니라 ‘군에서의 형 집행법’ 등에 아직도 남아 ‘정비’와 ‘순화’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선지, 익숙해졌다고 그대로 두고 써야 할까요.
시청자 여러분의 판단이 궁금합니다.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박지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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