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한자말 조합 'じょさいどうき'(죠사이도키) 그대로 쓰고 있어

[법률방송]

흔히 ‘4분의 기적’이라고 하는 심폐 소생술.

급작스런 심장 이상으로 쓰러진 응급 환자를 소생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긴급 의료장비, 바로 심장 충격기인데요.

법률방송 연중기획,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24일)은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참으로 ‘불친절한’ 용어, ‘제세동기'(除細動器)입니다.

신새아 기자의 리포트 보시겠습니다.

[리포트]

오늘 오후 서울 강남역입니다.

출입구 바로 옆에 작은 상자가 있습니다.

상자엔 ‘심장마비 환자에게 사용’ 하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 장비가 들어 있습니다.

박스 옆에는 ‘자동제세동기’라는 글자가 찍혀 있습니다.

급작스럽게 심장이 정지한 응급환자를 소생시킬 때 사용하는 ‘심장 충격기’입니다.

제세동기가 심장 충격기를 뜻하는지 아는 줄 물어봤습니다.

[백종순(58) / 전북 전주시]

“심장정지 됐을 때 이거 하는 거 아닌가요.”

[한순점(65)/ 서울 수서동]

“심장 충격기.”

일단 워낙 많이 쓰이는 말이어서 제세동기가 심장 충격기라는 건 많은 시민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세동기가 어떤 연유로 심장 충격기라는 말로 쓰이는지에 대해선 일반 시민들은 물론 심지어 의료진도 제대로 모릅니다.

[서울 대형병원 의사]

"심박 부정맥 같은 거를 제대로 하게 하려는 충격기? 뭐 그런 거 아닌가요?"

(어디서 유래하고 있었는지 알고 계셨나요?) "아니요. 모르겠어요." 

뭐를 의미하는지는 어렴풋이 알지만 그 유래나 단어 구조를 짐작하기 힘든 말 제세동기.

제세동기(除細動器)라는 말은 정확히 무슨 뜻이고 어디서 유래했을까요.

일단 한자로 뜯어 놓고 보면 제(除)는 제거하다, 세(細)는 세밀하다, 동(動)은 움직임, 기(器)는 기기라는 뜻입니다.

조합하면 ‘세밀한 움직임을 제거하는 기기’라는 알아듣기 힘든 뜻이 나옵니다.

직역하면 ‘세밀한 움직임을 제거하는 기기’라는 뜻의 ‘제세동기(除細動器)’가 어떻게 심장 충격기라는 뜻이 됐을까요.

이 부분은 의학 용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단 ‘잔 떨림’이라는 뜻의 ‘세동’(細動) 은 의학적으로 ‘심장 근육이 불규칙한 수축 운동을 하는 병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제세동’(除細動)은 이런 심장의 병적인 상태를 제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제세동기가 심장에 전기 자극을 줘 심장을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심장 충격기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이 제세동기는 물론 우리나라 말은 전혀 아니고 중국 한자도 아닌 전형적인 일본식 한자 조어입니다.

그래서 사전에 ‘제세동기’ 라고 치면 맨 위에 'じょさいどうき'(죠사이도키), 제세동기(除細動器)라는 일본말이 뜹니다.

[백종순(58)/ 전북 전주시]

“그건 몰랐어요. 아 이게 일본말이에요 ? 그럼 한국말로 고쳐야죠.”

[시민]

“(왜 그렇게 쓰이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유래를 알기 어려운 일본식 한자어 제세동기.

일본식 한자어 순화 운동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음에도 이 제세동기는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 우리 의료 관련 법에 남아 있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7조의 2항 “자동제세동기 등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응급장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조항이 그것입니다.

제세동기와 심장 충격기, 의사와 법조인.

통상 진입 장벽이 높은 직업일수록 남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그들만의 용어’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쉬운 말이 있다면 그냥 누구나 다 알기 쉬운 말을 쓰면 안 되는 걸까요.

제세동기와 심장 충격기.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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