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최초 목격자 15살 최모군, 범인 누명... 10년 간 억울한 옥살이
경찰, 진범 붙잡아 구속영장 신청... 검찰, 영장 기각 "범인 복역 중"
출소 후 재심, 법원 무죄 선고... 대법원, 진범에 '징역 15년' 확정 판결

[법률방송]

지난 2000년 벌어진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진범이 사건 발생 18년 만인 오늘(27일) 대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확정 받았습니다.

15살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옥살이를 한 사람의 한과 인생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이 있는데 국가란 무엇인가와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판결, 장한지 기자의 심층 리포트입니다.

[리포트]

15살 소년이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린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입니다.

“나 아니라고. 엄마, 나 아니라고..."

사건은 지난 2000년 8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15살 소년이던 최모씨는 새벽 2시쯤 전북 익산시 약촌 오거리 부근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 끔찍한 일을 목격합니다.

길가에 세워진 한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가 온 몸에 피를 흘린 채 쓰려져 있는 모습을 본 겁니다. 

예리한 흉기로 12차례나 찔린 택시기사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새벽 숨졌습니다.

최초 목격자인 최씨는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하는 등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합니다.

경찰은 그러나 어이없게도 목격자 최씨를 범인으로 몰아세웁니다.

택시 기사와 운전 시비가 붙어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것이 경찰 수사 발표입니다.

사람을 12차례나 찔렀다는 최씨가 입었던 옷과 신발 어디서도 혈흔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다방 배달일을 하던 15살 소년의 말을 믿어주는 국가기관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최씨를 살인범으로 발표했고, 검찰은 그대로 최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징역 10년을 선고합니다.

반전은  2003년 3월 일어납니다. 사건 발생 2년 8개월이 지난 시점에 경찰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당시 19살 김모씨를 체포합니다.

김씨는 경찰에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합니다.

경찰은 당연히 진범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합니다.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에 검찰은 발칵 뒤집힙니다.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엉뚱한 소년을 기소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결국 ‘범인이 이미 검거돼 복역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버립니다.

10대 소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풀어주는 것보다, 진범을 잡아 정의를 세우는 것보다 검찰 ‘체면’과 ‘위신’이 더 중요했던 겁니다.

그렇게 15살 소년이었던 최씨는 만기 10년을 다 채우고 2010년, 25살 청년이 돼서 출소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두문불출하던 최씨는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의 설득에 2013년 3월 광주고법에 재심을 신청합니다. 

법원은 2016년 11월 “최씨가 불법체포와 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최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검찰은 그제서야 진범 김씨를 체포해 구속기소합니다.

1·2심은 “김씨의 기존 자백과 증인들의 진술이 일관되게 일치한다.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합니다.

대법원은 오늘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18년 만에 세워진 정의, 또는 18년이나 지연된 정의.

최씨 재심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지고 단죄가 이뤄져 다행“이라며 ”15살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고 진범을 풀어준 당사자들은 아직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범을 붙잡아 신청한 경찰 구속영장을 기각한 검찰은 경찰에 대한 영장 청구권 부여 등에 대해 극력 반대하고 있습니다. 

명분은 ‘인권 보호’입니다.

[문무일 검찰총장 /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지난 13일)]
“저희 검찰은 우리 국민의 인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수사의 효율적인 형사사법시스템을 모색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검사의 영장심사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이중으로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유지돼야 할 사법통제 장치입니다.”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 애초 잘 한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 관련해서 굳이 가장 질 안 좋은 기관을 하나 꼽자면 어디일까요.

‘인권 보호’를 말하려면 말 할 자격이 있게 먼저 실천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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