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현상 그 너머와 이면에 있다"

장한지 법률방송 기자
장한지 법률방송 기자

“피고인 김기춘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징역 3년이 선고되는 순간, 김기춘 피고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법원의 첫 판단에 따르면 음습한 기운으로만 느껴진 블랙리스트는 실제 존재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과 1980년 광주를 2017년 오늘로 소환한 영화 ‘택시 운전사’를 찍은 송강호씨는 블랙리스트의 음습한 기운을 이렇게 얘기했다.

“소문만으로도 블랙리스트의 효력이 발생한다. 작품을 선택할 때 ‘이 작품은 정부가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기검열을 했다는 것이다.

송강호 정도 되는 배우가 이런 부담을 느꼈다면 다른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블랙리스트가 우리 사법부에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오래다.

어떤 조직이든 업무에 대한 평가는 있어야 하고, 그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평가의 목적이 특정 성향을 기준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입맛에 안 맞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평가가 아닌 뒷조사가 된다.

불행히도 ‘판사 블랙리스트’ 판사에 대한 성향 평가는 후자에 속한다.

대법원은 진상조사위를 꾸렸지만 조사위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아볼 수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블랙리스트가 '있다' '없다'가 아닌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정황이 없다”는 모호하지만 명확한 표현.

모호한 건 그 ‘표현’이고 명확한 건 그 메시지.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판사들은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코트넷에 조사위의 결론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고, 결과에 항의해 사표를 내는 부장판사가 나왔으며, 판결로 말한다는 판사가 다음 아고라에 재조사를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정색하고 재조사를 요구했고, 이를 수용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

재조사위원회는 판사 블랙리스트가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법원행정처 PC도 확보했다. 그러나 정작 재조사위는 ‘비밀침해죄’ 등을 이유로 해당 PC를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중한가. 한 법관에 대한 혹시 모를 비밀 침해인가, 사법부에 대한 의심을 씻어내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인가.

오른손엔 칼, 왼손엔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 먼 맹인으로 묘사된다.

진실은 보이는 데 있지 않고 그 너머와 이면에 있다.

PC라는 껍데기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도 진실은 나오지 않는다. 그 안을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법원이 왜 안 하는지 혹은 못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납득을 못하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 편집자 주/ 이 칼럼은 '대한변협신문'에 함께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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