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아 앵커= 내가 만약 현대의학으로 회복이나 치유가 불가능한, 소위 가망이 없는 상태라면 여러분은 그래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죽음을 기다리시겠습니까.

적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이른바 ‘안락사’ 개념을 포함한 ‘확장된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화두에 올랐습니다.

존엄사 문제를 수년 째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있는 비영리법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입법 촉구에 나섰는데, 그 현장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영화 ‘미 비 포유’ 중]
“(소개할 사람이 있어.) 옷 다 입었으니 들어오세요. (윌. 여긴 루이자 클라크.) 저는 루라고 해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유망한 기업인으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순간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버린 남자주인공 윌.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장 역할을 떠맡게 된 여자주인공 루이자는 그런 윌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되며 둘은 그렇게 만났습니다.

간병인과 전신마비 환자가 사랑에 빠지는, 뻔한 로맨스 장르인 것 같은 이 영화는 결말에 묵직한 화두를 던집니다.

윌이 사고 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안락사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내 몸을 내가 제어할 수 없다면, 우리에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을까.

최근 국내 한 척수염 환자가 안락사, 즉 조력사망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달라며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나서면서 존엄사 이슈가 재점화 되고 있습니다.

이 환자는 척수염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와 극도의 통증으로 존엄사를 원하지만, 이같은 권리가 국내엔 법으로 보장돼 있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명식(62) / 척수염 환자] 
“저는 주사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서 척수, 척수 전반에 걸쳐 염증이 생겼습니다. 염증이 생김으로 인해서 가슴 이하 하반신이 전부 마비됐습니다. 마비가 된 상태가 되고 나니까 그냥 마비가 된 하반신 장애인이 된 것이 아니라 두 다리의 통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통증입니다. 저와 같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분들,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시는 분들, 이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제도화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고 이 제도화를 하기 위해서 저희가 이렇게 헌법소원도..."

국가가 헌법 제10조(행복추구권)에 따라 개인의 존엄사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이 없어 환자들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게 이명식씨 주장입니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장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견디는 것은 환자들에겐 더욱 큰 절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회장]
“우리 협회에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동 자체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삶을 스스로 끝낼 수 있지만 오늘 하루 더 살아보는 것과,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언제까지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내 신체와 내 삶의 대한 선택권이 없는 삶은 더욱 큰 절망이라고...“

이러한 목소리를 담아 변호사 단체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은 존엄사를 원하는 이명식씨를 도와 이달 중으로 입법부작위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입법부작위란 입법자가 입법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해외에선 존엄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캐나다와 스위스 등 세계 10여개국에선 이미 존엄사 제도가 합법화됐고, 최근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이 헌재 결정을 통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헌법소원이 앞서 2017년과 2018년에 있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국회의 입법 의무가 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데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번 헌법소원 소송을 맡은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는 ”존엄사를 보장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재련 변호사 / 법무법인 온세상]
“존엄사가 우리 대한민국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주요 선진국가에서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입법을 이미 하고 있고 심지어 독일이라든지 오스트리아는 2020년경에 자살, ‘assist suicide(조력자살’)라고 해서 조력자살과 관련해서 형법상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헌재와 마찬가지로 국회 역시 존엄사 관련한 제도 마련에 소극적인 상황.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법은 논의가 멈춰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한해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중단하는 것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결정하고 준비한다는 존엄사의 취지에 비춰 보면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헌법소원 청구는 조력사망을 원하는 당사자가 직접 나섰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과 여론이 환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단체의 말입니다.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김현 변호사는 “존엄사 제도 입법을 당당하게 도입할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김현 변호사 /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대표]
“존엄사는 인간이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권리입니다. 인간의 기본권이고 선진국에서는 모두 보장돼있는 그런 중요한 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기본권을 국가가 보장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존엄사제도를 우리나라 입법에 당당하게 도입하고자 합니다. 소송을 9월 이내에 저희가 제출할 것이고..."

삶과 죽음의 사이, 어떤 선택이 나를 위한 지혜로운 선택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선진국에선 조력존엄사가 합법화되는 추세인 만큼, 이번엔 헌재가 기존 판단을 뒤집고 새로운 결론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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