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논란 ‘김 할머니 사건’... 안락사와 조력 자살,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존엄사 논란 ‘김 할머니 사건’... 안락사와 조력 자살,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 유재광 기자, 남승한 변호사
  • 승인 2020.07.07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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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캐나다 등 안락사 허용, 네덜란드·스위스 등은 '조력 자살' 합법화
"치료 가능성 없고 극심한 고통만... 품위있는 죽음 선택할 권리, 사회적 합의 필요"

▲유재광 앵커= 존엄사와 안락사 얘기 더 해보겠습니다. '남승한 변호사의 시사법률'입니다. 존엄사가 법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정의가 확립이 된 게 있나요.

▲남승한 변호사= 일단 존엄사는 '깨어날 가망이 없는 의식상실 상태에 있는 환자로 하여금 인간답게 또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생명유지 치료를 중단하는 것', 이런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앵커= 안락사는 그런데 훨씬 더 적극적인 것이죠, 보통.

▲남승한 변호사= 네. 안락사 같은 경우는 현대의학상 불치병 같은 것으로 인해서 빈사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격심한 육체적 고통 같은 것을 제거, 완화시켜 줘서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평온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현행법으로는 안락사 중에도 소극적 안락사라는 것에 한해서 일정한 요건을 두고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위법성을 조각하는 것인데요.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은 적극적 안락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중단하는 그러다 보니까 그 결과에 의해서 생명이 중단되는, 사망하는, 이런 것은 소극적 안락사라고 하는데 일정한 경우에 한해서 인정했습니다.

▲앵커= 이게 좁은 의미의 존엄사랑 소극적 안락사 사이 경계가 약간 모호해 보이기도 하네요.

▲남승한 변호사= 안락사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생명을 중단하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고요. 존엄사는 그런 것보다 조금 더 광범위한 개념 같습니다. 본인 스스로 인간답게 죽을 권리라든가 이런 거까지 다 포함하니까 의료진이나 또는 가족, 유족들의 동의 의사 이런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닌 본인의 의사를 얘기하는 것인 것 같고요.

소극적 안락사가 허용된 사례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살인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현대의학상 아예 치료가 불가능하다든가 또 상당한 육체적 고통 때문에 굉장히 시달리고 있고요, 그리고 목적이 오로지 환자를 고통에서 해방시킬 목적인 경우에 한해서 그리고 거기에 본인이나 명시적인 진지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서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거나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합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앵커= 이게 우리나라에서 관련한 판례 같은 게 있나요.

▲남승한 변호사= '김 할머니 사건'이라고 해서 몇 년 전에, 몇 년이라고 해도 꽤 된 사안인데요. 이 할머니께서 2008년 2월에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습니다. 자녀들이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는데 병원이 거부했습니다.

결국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소송을 냈는데요. 2009년 5월에 대법원에서 김 할머니의 가족들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인공호흡기를 떼는, 그러니까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장치를 뗀 것인데 그렇게 떼고 나서도 튜브 등으로 영양분을 제공받으면서 일정 기간 더 생존을 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경에 사망한 사건입니다.

▲앵커= 이게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고 했는데 판결은 뭐라고 하면서 내렸나요.

▲남승한 변호사= 대법원은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죽음의 과정이 시작됐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뒤에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한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이런 것들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한다, 그리고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라고 봤습니다.

이때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다라는 것과 관련해서 환자의 의사가, 그렇다는 진지한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김 할머니의 경우 식물인간이 된 상태이니까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이럴 경우에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기는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로 볼 수 있습니다.

▲유재광 앵커= 이게 대법원에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례를 내렸는데도 지금 관련법 같은 것은 잘 안 돼 있는 모양이네요.

▲남승한 변호사= 네. 김 할머니 가족들은 이 소송과는 별개로 연명치료 중단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야 되는데, 국가가 법률을 만들지 않았다, 입법 부작위다, 라고 얘기하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을 각하했는데요.

헌법재판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인정된다고 하지만,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는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법제화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니까 법제화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각하한 것입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현재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일종의 존엄사 관련법으로 불리고 있는 것 아닌가요, 지금.

▲남승한 변호사= 네. 결과적으로는 그런데요. 존엄사 관련한 법안이 몇 차례 발의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장 아니냐'라는 논란이 있었고요. 결국은 연명치료에 소요되는 막대한 치료비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비판 때문에 돈 없으면 치료도 못 받는 것이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선거에 표에 불리하다 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국회 통과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2월부터 존엄사법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기는 한데요.

이 법 1조 목적에 의하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중단 등에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한다' 이렇게 돼 있어서요. 존엄사를 상당부분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셈이 됐습니다.

▲유재광 앵커= 이게 뭐 안락사다, 존엄사, 적극적 존엄사, 말은 좀 여러 가지이긴 한데요. 어쨌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존엄사와 안락사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 아닌가요.

▲남승한 변호사= 네. 다른 차원입니다. 김 할머니 같은 경우 환자 본인이 의식이 없어서 환자 의사를 확인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고요. 또 사망 임박단계, 사망 진입단계 이런 얘기를 했는데요. 이것을 개별 사안에서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나아가 안락사의 경우에는 신체적 고통은 없는데, 예를 들어 전신마비로 식사나 보행, 대소변 등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 또 상당한 중증 치매환자 같은 경우에 이분들이 품위있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이런 경우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사망에 이르는 결과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안락사를 도입해야 하느냐, 이분들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느냐, 이런 점 때문에도 단순한 연명치료 중단과 적극적 존엄사, 안락사와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재광 앵커=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남승한 변호사=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에는 '엔드 오프 라이프 액트'(End of life Act)라고 해서 일정한 요건을 갖췄을 때 안락사를 허용한다고 합니다. 캐나다의 경우에도 당사자의 명시적인 동의를 전제로 안락사를 허용한다고 하고요. 네덜란드의 경우 '조력 자살'이라고 의사들의 도움을 받는 안락사 집행을 허용하고요.

호주 빅토리아주의 경우 의사가 안락사를 직접 집행하는 것은 금지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사자가 안락사를 집행하는 것을 의사가 돕는 것은 허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스위스 같은 경우에는 환자의 간곡한 요청으로 동정심에서 안락사를 한 경우에는 징역형으로 처벌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력 자살은 또 합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된 자살 유도나 방조는 형법에 따라 처벌합니다.

각국의 예에서 광의의 안락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다 굉장히 다양하게 인정하기도 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예외도 굉장히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어떻게 한다 이렇게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유재광 앵커= 안락사 문제 어떻게 보시나요.

▲남승한 변호사= 종교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람이 죽을 권리가 본인에게 없다는 판단도 할 수 있고, 신이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고는 합니다만, 반면 극심한 고통에서 품위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인간에게 부여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법률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굉장히 깊은 성찰이 이루어진 뒤에, 사회적으로도 합의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다른 시각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현재로서는 까다롭고 법제화 하기에도 굉장히 난해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유재광 앵커= 말씀하신 대로 화두가 던져졌으니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론화는 필요해 보이네요. 잘 들었습니다.

 

유재광 기자, 남승한 변호사 jaegoang-yu@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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