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2일 열린 대법원 시무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2일 열린 대법원 시무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재판 업무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것과 같이, 일상적 대국민 사법 서비스의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지난 15일 취임식)

사법부가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무에 AI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과 유사한 판결문을 재판부에 자동 추천하는 기술을 적용할 전망입니다.

기술 발전의 흐름 앞에서 사법부도 변화를 꾀하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습니다.

◇ 키워드 일일이 검색... AI, 판사 피로감 덜어줄까

오늘(22일) 법률방송 취재를 종합하면 사법부는 최근 법원행정처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으로 조직 개편을 사실상 마무리했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인사·예산·정책 등을 총괄하는데, 특히 AI 도입 같은 업무 시스템 최신화에도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처는 '사법정보화실'을 신설할 예정입니다.

정보화실에는 전산정보관리국과 차세대 전자소송 추진단, 형사 전자소송 추진단 등이 배치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운데 차세대 전자소송 추진단은 재판 업무에 AI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어떤 실·국이 생기고, (심의관이) 어느 부서에 배치될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행정처에) 일부 법관이 증원될 조짐이 있고, 다음달 초 인사 명령 시 확정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AI 도입에도 속도가 날 전망인데, 행정처는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안에 AI가 판결문을 자동 추천하는 모형을 오는 9월에는 출범시킬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법원이 처음 도입하는 AI 기법은 재판부에 배당한 사건의 소장, 준비서면, 의견서 등을 분석해 유사 판결문 상위 10건을 자동 추천해주는 방식입니다.

민·형사, 행정, 가사 사건 등 영역에서 도입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는 판사가 핵심 단어를 직접 입력해 판결문을 검색한 뒤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유사 사건을 찾아야 했습니다.

◇ 완성도 떨어지는 판결문... 이상한 계산 나오면 누가 책임져?

"암기가 중요하던 시절에서 인터넷 검색 엔진이 중요해졌던 것처럼, 이제는 AI에 질문을 얼마나 정교하게 잘하는지가 중요해졌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인간이 AI에 무지하거나 서툰 인간을 대체할 것."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행정안전부 직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법부가 이번에 도입할 시스템의 핵심은 AI가 판사에게 현재 담당하고 있는 재판과 유사한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해 쟁점과 결론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법관을 보조하는 재판연구원의 업무를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현재는 판결보다 조정·화해에 적합한 사건을 판사가 일일이 기록을 읽어보고 판단한 뒤 조정센터로 보내는데, 이같은 작업도 AI가 대신하게 될 수 있습니다.

법조계는 AI가 판례 검색과 분석, 판결문 초안 작성 등을 신속하게 처리하면 판사가 심도 있는 판결을 단시간 안에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문제는 정확도와 신뢰성입니다.

AI 지원 재판이 확대되더라도 유·무죄 판단 등 결론까지 제시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체적입니다.

AI가 낸 오류가 결과적으로 판결 오류로 이어지면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현재 나오는 판결문을 토대로 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국 사법부의 판결문에는 여전히 일본식 말투가 남아있고, 문장이 길거나 능동태보단 수동태를 많이 씁니다.

재판 당사자나 국민이 납득할 만큼 판결문 내용이 자세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염두해야 할 사안입니다.

AI가 내놓은 계산이 판결 오류는 물론 내용 오류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방송 DB)
(법률방송 DB)

◇ 중국 "AI 판결문 완성도 70%"...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지난해 말 중국 법원이 판결문 작성에 AI를 시범적으로 도입한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장쑤성 쑤저우시 중급인민법원이 장쑤성 고급법원의 승인을 받아 '생성형 AI의 판결문 작성 보조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쑤저우시 중급법원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 대출과 노동, 주택 임대 계약 분쟁 등의 사건 판결문 작성에 생성형 AI를 시범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이런 과정을 거친 판결문의 완성도는 70%에 달합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법률 문서 가운데 사건 관계자와 사실관계 확인 부분의 정확도는 95%를 넘었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프랑스에서는 변호사 업무를 대신한다는 AI 애플리케이션(앱)이 출시돼 법조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일 리옹 출신의 한 기업가가 개발한 이아보카(IAVOCAT)라는 앱이 등장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지난 50년간 나온 법원 판결과 결정문을 기초 자료로 삼은, 챗GPT와 유사한 법률 전문 AI라고 소개합니다.

현지 일간지에 따르면 연간 69유로(한화 10만원)의 요금에 법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이 앱은 출시되자마자 열흘 만에 2만명 이상이 구매했습니다.

프랑스 법조계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식 변호사 자격증 없이 변호사 업무를 하는 것은 불법이며, 앱이 존재하지도 않는 법률 조항을 인용하는 등 오류도 발견됐다는 게 법조계의 주장입니다.

일각에선 이 앱의 모기업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로 활용된 판결문상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반면 개발자는 자신의 앱이 인터넷 사용자에게 법률 조언을 제공하는 데에만 사용될 것이며, 일부 기능을 수정하겠지만 서비스를 아예 철회할 생각은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한국 사법부는 국민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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