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한 것도 죄가 되나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한 것도 죄가 되나요?
  • 곽노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 승인 2019.08.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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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드라마, 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와 독자들이 궁금증을 가지는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곽노규 변호사는 디즈니 영화, 우리의 '춘향전'과 '흥부전', 동서양의 전래 우화 등을 예로 들어 흥미로운 법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곽노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곽노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임금님 귀가 당나귀같이 생긴 것을 알지만 이를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이발사는 참다 참다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갈대숲으로 들어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습니다.

비로소 가슴이 뻥 뚫린 이발사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언젠가부터 바람만 불면 갈대숲이 술렁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를 내더니 기어이 온 나라에 소문이 퍼지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으로서는 절대 함구할 것을 당부했음에도 이를 어긴 이발사가 괘씸할 것도 같은데요, 다행히 동화 속 어진 임금님은 이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더욱 건강해졌지만 속이 좁은 임금님이었다면 이발사에게 벌을 내리고 싶었을 겁니다.

이발사에게 어떤 죄책을 물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면, 업무상 비밀누설죄, 명예훼손죄 정도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①형법 제317조가 규정하고 있는 업무상 비밀누설죄란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제사, 약종상, 조산사,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공증인, 대서업자나 그 직무상 보조자 또는 차등의 직에 있던 자, 종교의 직에 있거나 있던 자가 업무 처리 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이 죄는 조항에 열거된 자들에게만 성립할 수 있는 범죄인데요, 그렇다면 이발사에게는 업무상 비밀누설죄의 죄책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②형법 제307조에서 규정하는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성립하는 범죄’로, 진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요, 해당 죄의 성립에는 ‘공연히 적시하는 것’ 즉, 공연성이 요구됩니다.

공연성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더라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우리 판례입니다.

온 나라에 소문이 퍼지긴 했지만 이발사는 깊은 갈대숲으로 들어가 혼자 소리를 질렀을 뿐이니 이를 가지고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이는데요, 따라서 이발사에게 명예훼손죄의 죄책도 역시 물을 수는 없을 겁니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미필적으로나마 범죄 성립 요건에 대한 인식이 있을 것이 필요한데요, 이발사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퍼뜨릴 의사, 인식은 전혀 없었을 겁니다.

이발사에게 형사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하지만, 나의 비밀이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한 상황일 수 있으니 아무리 가슴이 답답하더라도 타인의 비밀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삼가야겠습니다.

곽노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ltn@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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