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 드라마 콘텐츠 내용 중 관객과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최종화 변호사는 실제 발생했던 청각장애 아동들에 대한 성폭력·학대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로 보는 법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편집자 주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예전에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민원 해결이나 법령 제·개정을 위해 많은 분들의 경험담과 의견을 청취하게 되었는데, 그때 들었던 한 사례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납니다.

50대 아주머니가 한밤중에 자다 깨 부엌에서 물을 마시다가 평소에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사소한 소음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서 실뇨를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10대에 입주가정부를 하였을 때 야밤에 주인집 남자에게 몹쓸 짓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트라우마가 40년 넘는 세월 동안 오롯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혈기왕성했던 저는 의원회관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으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아주머니의 그 오래 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영화 ‘도가니’에서는 이에 못지않은 참담한 상황들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교장과 교장의 쌍둥이 동생 1인 2역을 맡은 배우 장광은 본디 성우 출신으로 이 영화에서 실감나는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면서 영화배우로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연기가 너무나도 좋았던 나머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랜 기간 욕을 들었다고 스스로 소회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정도로 영화에는 목불인견의 장면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오는데, 피해아동으로 분한 아역배우들이 어떻게 이 장면들을 연기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교장 등이 솜방망이같은 처벌을 받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지난 칼럼의 내용과 같이 부장판사 출신 변호인에 대한 전관예우였습니다.

다만 부수적으로 만13세 이상인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경우 합의가 있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당시의 법률도 어느 정도 기여한 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에는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성폭력 관련 5개 법률이 개정된 바 있고 그 결과 친고죄가 일괄 폐지되는 등의 변화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그칠 줄 모르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범죄를 더욱 무거운 형벌로 엄단하여 감히 범죄를 행할 생각을 못하게 하거나, 가해자를 더 오랜 기간 사회와 격리되도록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형법과 성폭력 범죄를 규율하는 모든 법률들이 대원칙으로 삼고 있는 죄형법정주의 중 ‘적정성의 원칙’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는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의 ‘비례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도출된 개념이며, 그 중 ‘비례성의 원칙’은 범죄와 형벌 사이의 적정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범죄의 경중과 이에 대한 처벌의 수위가 최대한 등가관계가 성립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을 성폭행하면 무기징역에 처한다’와 같이 가해자를 더욱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률이 제정되고 이러한 처벌규정의 존재 사실을 널리 홍보한다면 해당 범죄의 발생률은 조금이라도 감소될 수 있다고 보이지만, 이는 입법권자와 국민들의 법 감정이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어느 정도의 피해로 인식하고 있는지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측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그 고통을 직접, 간적적으로 체험해본 경우가 아니라면 그 처벌의 수위에 대해서는 다분히 이론적인 접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이유는 성폭력범죄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발생하여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모든 범죄는 증거로 공소사실이 입증이 되어야 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무거운 중형이 예정되어 있는 범죄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보다 확실한 증거에 의한 엄정한 입증을 요한다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체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와 경위에 대해 당사자 간 입장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피해자의 진술 외의 다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할 때, 만약 법정형의 하한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 있어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면, 이 범행에 대해 재판부가 유죄 판결을 선고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적법하지 않은 수사과정을 거쳐 재판에서 잘못된 판결을 받은 어두운 과거에 대한 반성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이뤄졌고, 이에 따라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데 그 총아가 바로 위에서 언급된 죄형법정주의의 강화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 회복에 방점을 두고 법과 제도를 재정비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죄형법정주의를 정면으로 훼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필연적으로 그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는 과정을 요하기에 많은 국민들의 인식의 변화, 참여가 요구되는 또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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