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준 대전고법 판사, '빨대사회' 책 출간
사기범죄 조직이 국민의 미래를 빼앗아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 (사진=사법정책연구원 유튜브 캡처)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 (사진=사법정책연구원 유튜브 캡처)

[법률방송뉴스]

현직 판사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진보 정치권이 추진했던 국가 수사 시스템 변경에 대해 정면 비판했습니다.

모성준(사법연수원 32기) 대전고등법원 판사는 최근 출간한 저서 '빨대사회'에서 "앞에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뒤로는 사기 범죄 조직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어렵게 하는 납득할 수 없는 법률을 통과시켰다"며 "국회가 국가 전체 수사 권한을 토막내 국제적 사기 범죄 조직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주장했습니다.

모 판사는 "범죄 조직이 국민을 상대로 마음껏 빨대를 꽂는 사기 범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수 국민을 사기 피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어리석음이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 기록해 두기 위한 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국내에서 발생한 전체 범죄(149만2,433건) 중 가장 많았던 유형은 사기(32만5,848건)였습니다. 그해 사기 피해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집계되는데, 멕시코 마약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 엘 차포가 30여년간 거둔 범죄 수익(16조4,000억원)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모 판사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모바일 메신저, 인터넷, 암호 화폐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을 꼽았습니다. 이런 기능이 보이스피싱, 주식 리딩방, 온라인 다단계 등 범죄와 접목돼 범죄 조직이 돌아가는 빨대 구조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모 판사는 "형사법이 이미 상당한 정도로 파편화된 상황임에도 국회가 고등학생 조별 과제 수준의 법률안을 자랑스럽게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또 "범죄 조직 수괴에 대한 형사재판은 과도하게 지연되고, 수괴는 보석으로 석방됐다가 결국 무죄 판결이라는 초라한 결론으로 종결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고 쓴소리했습니다.

모 판사는 특히 "조직적 사기 범죄를 막아야 할 국회는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며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며 국가의 전체 수사 권한을 토막 내고, 수사 기관과 법원의 인력·예산을 삭감해 제대로 된 수사·재판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형사법을 파편화해 법원이 개별 사건에 대해 합당한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고 질타했습니다.

그는 이어 "검찰청법 등을 개정해 경찰과 검찰 사이의 수사 흐름을 끊어버렸다"며 "수사 흐름에 따른 오너십(수사주체)의 승계 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수사 기관의 역량을 축소시키고, 효율적 수사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검경 수사권 조정' 폐해를 지적한 것으로 보이는데, 검찰 수사 개시 권한이 일부 범죄로 제한돼 수사를 적극적으로 개시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현재 검찰은 사기 범죄 가운데 피해액 5억원 이상만 직접 수사할 수 있습니다.

모 판사는 "(수사를 한 뒤에 알 수 있는) 공소 사실과 적용 법조를 (사전에) 제대로 알지 못하면 수사에 착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검찰 수사 권한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범죄자는 절대적으로 유리해졌다"고 전했습니다.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해선 "영화 감독이 소품 감독이 책임지는 소품이나 의상 디자인, 작가가 책임지는 대사나 지문에 대해 직접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했습니다.

모 판사는 2020년에 있었던 형사소송법 312조 1항 개정도 비판했습니다.

피고인이 동의할 때만 검찰 신문 조서의 증거 능력이 인정되도록 한 것에 대해 "사기 조직 수괴에게 수사 기관의 모든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준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법정에서 우두머리가 앞장서 혐의를 부인하고 이에 따라 부하들이 진술을 거부하면 검찰 수사 결과가 휴지 조각이 돼 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모 판사는 "빨대사회의 주인공인 국제적 사기 범죄 조직들은 이미 대한민국의 가운데 또아리를 틀고 앉아 천문학적인 범죄 피해를 안기고 있다"며 "청년은 국제적 사기 범죄 조직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후 극도의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학업을 포기하고, 안정적 직장을 찾거나 주거를 마련할 기회를 상실한 탓에 행복한 미래를 위한 희망을 모두 잃어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중년의 직장인이나 노년의 은퇴자도 범죄 피해를 겪은 후 행복한 노후 준비는커녕 재적정 어려움으로 이혼에 이르거나 자살을 고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분석했습니다.

모 판사는 "낮은 출산율·행복지수, 높은 자살률은 국민의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꺾고 있는 거대한 세력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며 "범죄 조직으로 흘러간 막대한 범죄 수익은 다시 자산시장으로 유입돼 부동산 등 재화가격이 폭등하고, 이로 인해 범죄 피해자를 비롯한 서민은 정상적 생활을 유지는 것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모 판사는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6년 광주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22년 대검찰청이 개최한 검수완박 법안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조직 범죄의 수괴가 가장 바랄 법한 시스템이라 생각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며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모 판사는 "2020년대의 대한민국은 국제적인 사기 범죄 조직들이 본격적으로 창궐했던 시대로 기억될 것"이라며 "국회가 수사 기관을 성공적으로 무력화하고 오히려 사기 범죄 조직에 대한 강력한 회피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에 조직적 사기 범행의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사기꾼의 천국이 대한민국에 임하게 됐다"고 꾸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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