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공수처장 (법률방송 DB)
김진욱 공수처장 (법률방송 DB)

[법률방송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고위공직자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는 공정한 수사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지난 2021년 1월 김진욱 공수처장 취임사)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의 퇴임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역 없는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과 인권 친화적 수사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지만, 참혹한 성적표와 미완의 과제를 남긴 채 떠나게 됐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 검찰의 5배... 유죄 판결 '0건'

오늘(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처장은 오는 19일 이임식을 진행하고 공식 업무를 마칠 예정입니다.

판사 출신인 김 처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21년 1월 21일 초대 공수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에 따라 처장 임기는 3년입니다.

김 처장은 앞서 인사청문회 답변과 취임사 등을 통해 '인권 친화적인 수사'를 강조하며 비판을 받아온 검찰과의 차별화를 강조했습니다.

검찰의 기소독점권 견제 등을 명분으로 탄생한 만큼 검찰의 기존 수사 관행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정작 수사기관의 본령인 '수사'에서는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법조계는 공수처가 부족한 인력으로 검찰 특수부급의 고난도 수사를 맡아야 하는 데다, 법적으로 수사 대상자와 혐의 등이 제한되는 등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럼에도 수사 실적은 부족했고, 그 한계는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공수처가 지난 3년 동안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173건.

이 가운데 45건(26%)는 기각됐는데, 같은 기간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5.86%)보다 5배 가까이 높은 수치입니다.

출범 이후 재판에 넘기거나 공소 제기를 요구한 이들도 단 8명에 그칩니다.

재판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공수처가 출범 후 직접 재판에 넘긴 사건은 총 3개.

손준성 검사를 둘러싼 고발 사주 의혹 사건, 공문서 위조 혐의의 전직 검사 사건,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의혹 등입니다.

이 가운데 유죄 판결은 한 건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처장은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판사 출신 처장이나 차장 체제가 수사기관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지 못한 채 떠나게 됐습니다.

공수처가 출범 후 뇌물수수 혐의로 처음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지난 10일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수처가 출범 후 뇌물수수 혐의로 처음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지난 10일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완전한 조직과 체제... 수사·인사 등 두고 여전히 갈등

김 처장은 또 상호 견제를 위한 수사 부서와 기소 부서 분리를 차별점 중 하나로 내세웠는데, 지난해 12월 수사 인력 확보를 위해 공소부를 폐지하고 수사 부서가 직접 공소 유지를 맡도록 직제를 개편하면서 약 3년 만에 없던 일이 됐습니다.

주요 사건 수사의 적정성과 적법성을 심의하는 기구인 공수처 수사자문단도 폐지됐습니다.

허익범 전 특별검사가 지난해 6월 자문단장으로 위촉됐지만, 반 년 만에 기구 자체가 없어지게 됐습니다.

아울러 공수처와 검찰이 원만하게 협력·공존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정비하는 과제도 김 처장 임기 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현재도 공수처가 수사해 검찰에 넘긴 사건을 검찰이 '수사 미비'를 이유로 공수처에 다시 돌려보낼 수 있는지를 놓고 양 기관이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리더십을 발휘하며 내부 인적 기반을 충실히 다지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힙니다.

공수처 1기로 임용된 검사 13명 대부분은 임기 만료 전 사표를 내고 떠났고, 현재까지 조직에 남아있는 사람은 두 명뿐입니다.

김 처장 퇴임 이후 지휘부 공백 사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입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자 선정과 이후 대통령 지명, 국회 인사청문회 등 임명 과정을 고려하면 최소 한 달 넘는 공백이 우려됩니다.

후보추천위는 지난 10일 6차 회의에서 후보자에 대한 표결을 하지 못하고, 다음 7차 회의 일정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처장은 그간 여권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김태규 후보자(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률방송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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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가 해결 못하면 공공수처가?... 급박한 출범 '부작용' 속출

무엇보다 공수처 수사를 둘러싼 '편향성' 논란이 거듭되면서,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다지지 못한 것은 앞으로도 수사의 발목을 잡을 전망입니다.

공수처가 여야 갈등 속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진보권 주도로 설립됐고, 이후에도 현 야권의 고소·고발이 공수처로 집중됐다는 점에서 이를 지휘부만의 잘못이라고 평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김 처장 본인도 공수처 검사 임용 전 피의자인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직접 면담 조사하면서 조서를 남기지 않고, 이 전 지검장의 과천정부청사 출입 때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 조사' 논란을 부르는 등 의구심을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인권 수사'를 지향하는 공수처가 정치인과 언론인, 일반인의 통신 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 비판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적법 과정을 거쳤으나, 수사 목적과 동떨어진 조회 사례가 나오면서 '사찰' 논란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이전 정부가 충분한 논의 없이 급하게 출범시킨 공수처이지만, 현재는 민주당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를 '난파 직전의 조난선'에 비유하는데, 초대 공수처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풀어야 하는 2기 공수처도 시작이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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