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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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선거철이 되면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이 후보, 저 후보에게서 투표를 호소하는 문자가 날아옵니다.

지난해 국회의원 309명(의원직 사퇴와 보궐선거 당선 인원 포함)이 쓴 문자 메시지 비용은 51억원.

정치권도 이런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당선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

'기업메시징'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들도 울상이기는 마찬가지인데요.

공정거래위원회 제재에도 공짜망으로 시장을 장악한 거대 이동통신사만 떼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 결제 문자, 그냥 오는 게 아니었어?

기업 메시징 : 기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지 발송 서비스입니다.

기업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개인이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요.

기업은 대량으로, 아니면 서버 같은 전산 시스템을 이용해 자동으로 메시지를 보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메시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통사 등은 기업을 위해 별도의 망을 마련하고, 이들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열어둡니다.

기업 메시징 서비스를 실제 제공하는 곳은 이통사지만, 실제 이들이 모든 기업을 상대하지는 않습니다.

소위 중계사를 두는데, 이통사 A2P 망은 기본적으로 해당 이통사 가입자에게만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신자 단말의 이통사를 상관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중계 처리 기능을 필수로 포함해야 합니다.

기업 메시징은 신용카드 승인, 쇼핑 주문과 배송 안내 등 기업이 고객에게 대량으로 문자를 전송하는 기능도 있는데요.

1997년 벤처회사 인포뱅크가 통신사에 제안해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많은 중소 사업자가 뛰어들었습니다.

현재는 KT와 LG유플러스가 전체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 '기업 메시징' 시장 독점한 KT와 LGU+

망을 가진 KT와 LG유플러스는 자사 망을 공짜로 쓸 수 있어 가격을 낮춰 경쟁 업체를 내쫓을 수 있었습니다.

SK텔레콤은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관련 사업을 하는데, 망 사용료를 내고 있고 시장 점유율이 2% 정도로 미미합니다.

두 통신사가 기업 메시징 시장에서 덩치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2009년 KT-KTF 합병, 2010년 데이콤·파워콤-LG텔레콤 합병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통사를 내재화해 자사를 제외한 타 이동통신사업자에만 망 이용료를 부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를 싸게 팔 길이 열리면서 통합 KT, LG유플러스가 출범한 해인 2010년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47%로 치솟았습니다.

그 사이 중소기업은 잇따라 쓰러졌는데요.

모모웹과 카이낙스 등은 폐업했고, 인포뱅크와 다우기술, 스탠다드네트웍스 등 상위 회사는 기업 메시징만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없어 재판매 사업 병행에 들어갑니다.

재판매 사업은 기업 메시징 서비스를 구매해 메시지 발송 물량이 적은 소형 기업 고객에 판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묶어서 구매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사서 저렴하게 팔 수 있는 구조입니다.

공정위는 재판매사를 '통신사의 하부영업조직·대리점' 역할로 규정했습니다.

재판매사로의 사업 전환을 유도해 경쟁 사업자를 사실상 퇴출시키고, 이들을 하부 영업 조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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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리 취한다" 20년 전부터 나온 정치권의 지적

이런 지적, 국회에서도 약 20년 전부터 나왔습니다.

지난 2005년 진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이동통신 3사가 문자 메시지와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 등 부가 서비스로 폭리를 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2004년 이통 3사의 문자 메시지 서비스 매출이 4060억원으로 전년 대비 860억원이나 증가했는데, 소비자를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공정 경쟁을 방해한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이통사가 저축은행을 대신해 대출 광고를 뿌려 연간 10억원 이상의 저축은행 광고대행 매출을 올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특히 KT 측은 "금융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통신정보를 활용한 통신신용등급을 저축은행과 공동으로 개발했다"며 "KT 제휴광고 수신에 동의한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금리 할인 등 할인 혜택이 적용된 저축은행 제휴문자를 발송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T가 통신료 연체 사실 등을 기반으로 자체 신용등급을 나누어, 분류된 고객 정보를 낮은 신용등급의 이동통신 가입자를 선호하는 저축은행에 광고 대행 서비스로 판매했다고 봤습니다.

이통사에 가입하거나 이통사 어플을 설치하며 무심코 동의하다 보면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통사의 기준대로 구분돼 광고 폭탄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 의원은 "이통사 광고대행 서비스는 가입자 동의를 전제로 한다"며 "하지만 동의서에는 이통사 및 제3자의 광고를 전송하는데 동의한다고 기재돼 있지, 대출 광고를 따로 구분해서 묻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고객 정보를 선별해 대출 광고 등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용자 보호를 위해 실태점검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사법부도 공정위도 모두 중소기업 손들었지만...

지난 2013년 한 기업 메시징 중소기업이 통신사의 기업 메시징 서비스 저가 판매를 불공정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통신사가 망 제공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필수 원재료로 하는 기업 메시징 서비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출발선이 다른 경기'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공정위는 통신사의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보고 LG유플러스에 약 44억원, KT에 약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두 회사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진행했으나, 최근 패소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21년 "공정위의 통상거래가격 산정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과 관련된 배제남용 행위를 판단하기 위한 도구 개념으로서) 적법하고, 이윤압착 행위로서 부당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환송한 바 있습니다.

그것이 이번에 결론났는데, 한국 최초의 이윤압착 판례입니다.

'이윤압착'은 원재료를 독과점적으로 공급하면서 완성품도 동시에 생산·판매하는 수직통합 기업이 원재료 가격을 완성품 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완성품 시장에서 효율적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입하면 문제가 된 기업 메시징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이통사의 경쟁력은 실제 경쟁력이 아니라 이용자를 독점적으로 보유하는 시장구조에서 나온 것일 뿐이기에, 이를 경쟁력 있는 사업자의 공정한 경쟁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10년의 분쟁은 중소 기업 메시징 사업자의 손을 들어준 공정위의 승소로 일단락됐으나, 문제는 통신사가 관련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을 전망이라는 것입니다.

통신사는 과징금을 내고 시정명령에 따라 향후 5년간 관련 회계를 분리해 연 2회 이를 공정위에 보고해야 합니다.

자사 망 이용료도 내라는 것입니다.

기업 메시징 시장은 금융정보와 개인정보, 마케팅 문자 등을 중심으로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2011년 3000억원대였던 시장 규모는 2023년 1조2000억원으로 4배 성장했습니다.

업계는 2025년에 시장 규모가 1조5000억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기업 메시징 중소기업의 시름은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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