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로 밸모럴성에서 별세... 장남 찰스 3세, 국왕 자리 이어받아
영연방 최장기 재임 군주... 전세계 사랑 받았지만 가족 문제 근심

/연합뉴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영국 연방 최장기 재임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8일(현지시간) 별세했습니다.

영국 왕실은 이날 오후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96세로 서거했다고 알렸습니다.

왕위 계승권자는 큰 아들 찰스 왕세자입니다.

찰스 왕세자는 '찰스 3세' 칭호로 국왕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여왕은 밸모럴성에서 보내고 있었고, 지난 6일엔 웃는 얼굴로 신임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

곧바로 다음날 왕실은 의료진 휴식 권고로 여왕의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전했습니다.

8일 정오가 조금 지나 왕실은 여왕의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찰스 왕세자와 왕실 가족은 밸모럴성에 모였고, BBC 등 현지 방송은 여왕 관련 소식을 생중계로 전했습니다.

여왕은 지난해 4월 70년 해로한 남편 필립 공을 떠나보낸 뒤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졌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입원하는 상황이 있었고, 올해 초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엔 간헐적 거동 불편으로 일정이 임박해서 취소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밸모럴 AP
/밸모럴 AP

1926년 출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입니다.

1952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연합왕국인 영연방의 여왕에 즉위했습니다.

이후 70년간 여왕 지위를 유지한 엘리자베스 2세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영연방의 군주로 기록됐습니다.

기존 최장 기록은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의 63년 7개월이었습니다.

지금 영연방에 포함된 국가는 영국·호주 등을 비롯한 54개국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은 현대사 자체로 평가받습니다.

공주 시절엔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육군으로 참전했으며, 즉위 후에는 영국 식민지의 독립을 지켜봤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의 냉전 대립, 공산권 붕괴와 독일 통일,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습니다.

여왕이 만난 미국 대통령만 14명, 지난 6일 취임한 트러스 총리는 즉위 이후 15번째 영국 총리입니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고, 올해 6월 성대하게 치러진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에는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조차도 축하를 보냈습니다.

여왕은 국가에 헌신하고 개인적 감정은 뒤로하는 모습으로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고, 대영제국 해체 이후 영연방을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현대사 격변기 영국은 한결같은 여왕을 중심으로 통합하고 위기를 극복했다는 분석입니다.

영국의 상징이자 최대 소프트 파워였으며, 왕실이 구시대 계급사회 상징이라는 지적도 여왕은 사실상 비껴갔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와 국제정치 흐름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유머와 친화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밸모럴 AP
/밸모럴 AP

여왕의 아버지는 영화 '킹스 스피치' 주인공인 조지 6세입니다.

1936년 형 에드워드 8세의 갑작스러운 퇴임으로 조지 6세가 왕이 되면서, 맏딸 엘리자베스 2세는 후계 1순위로 올랐습니다.

아버지가 2차 대전 후 병환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여왕에 즉위했습니다.

즉위 이듬해인 1953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으며, 2500만명이 지켜봤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왕실의 전통을 고수했습니다.

총리 임명권자이지만, 의회의 결정을 존중했으며 의회 시정연설에서도 총리실에서 작성한 원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총리와의 면담 때도 직접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재임 기간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회하며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에 힘썼습니다.

여왕의 방문이 역사가 된 순간도 있었는데, 1965년 당시 서독 방문은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전쟁의 종결을 상징하는 외교 행사가 됐습니다.

또 2011년 옛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공화국을 방문해 해묵은 갈등 봉합에 노력했습니다.

당시 여왕은 "우리가 모두 지난 역사 속에서 과도한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슬프고 유감스럽다" 말한 바 있습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다만 가족과 관련해선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찰스 왕세자가 고 다이애나 비와 이혼하는 과정에선 지지도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다이애나 비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불운의 사고로 사망했을 땐 엘리자베스 2세와 영국 왕실이 대중의 비난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여왕의 입장 표명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해리 왕자가 왕실 밖으로 나가 가족들과 불화를 겪고 있고, 아끼던 차남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전하' 호칭까지 박탈당했습니다.

여왕은 한국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199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초청으로 필립 공과 3박 4일 국빈 방문해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73세 생일상을 받았습니다.

여왕은 안동에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여왕이 만난 한국 대통령은 6명입니다. 

김 전 대통령과 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왕을 만났습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