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한 '개밥그릇 싸움'의 말로 - 누더기 선거법, 하루빨리 개정하라
교활한 '개밥그릇 싸움'의 말로 - 누더기 선거법, 하루빨리 개정하라
  • 박한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 승인 2020.05.0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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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박한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지난달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용지를 받아 본 많은 유권자는 당황스러웠다. 우선 투표용지가 상상보다 길었기 때문에 그랬고 또 정당 번호가 1, 2번 없이 3번부터 시작해서 더욱 그랬다. 마치 선다형 문제에 1, 2번이 없는 것처럼. 상상보다 긴 투표용지야 군소정당의 난립에 대한 보도도 많았고 잠깐만 살펴보면 마치 구호 같은 정당 명칭에 특정 지역, 특정 종교까지 아주 다양했으니 씩 웃으면서 그러려니 했다. 다만 위성 정당이 어쩌네, 의원을 꿔 주네 마네, 어느 정당이 위에 표시되네 하면서 이 선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했다.  그래서 창세기 편처럼 당 간의 혈연관계까지 따질 이유도 없이 어느 당 내지 몇 번을 찍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투표장으로 가기는 했지만, 막상 1, 2번 없이 3번부터 시작하는 난생처음 접하는 번호 매기기의 결과물을 보는 기분은 ‘황당’이라는 표현이 딱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고등학교에서 헌법을 배울 때 참정권과 함께 접하는 수준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 처음 도입된 이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오죽했으면 이런 엉터리 선거법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참패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민들은 계산방식을 알 필요가 없다’라고까지 했을까? 알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기 불가능했거나 국민들이 아는 것이 불편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해 본다.

전제군주 시대의 ‘사람에 의한 통치’를 근대 시민사회에서 ‘법에 의한 통치’로 바꾸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누구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또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인간인 군주의 마음이 아니라, 문자로 기록된 법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만인이 공유하면 요건과 절차 그리고 결과에 대한 누구나 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된 선거법은 어떤가?

ax²+bx+c=0을 만족하는 x의 값은 b²-4ac가 ‘0’보다 크면 2개이고, ‘0’이면 하나이며, ‘0’보다 작으면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x의 값은 없다. 중2 때 배운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할 때는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따져서 취지가 훼손되지 않을 장치들을 미리 마련하거나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비례대표용 계열 위성 정당의 탄생, 1, 2번 없이 3번부터 시작하는 투표용지, 의원 꿔 주기로 선거보조금을 조절하는 등 이번 선거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이번 선거법 개정은 중학교 2학년이면 배우는 2차 방정식의 근의 개수 판별식의 개념도 모르는 무식의 극치였다. 21대 국회의원들은 다시 공부하기 바란다. 아니면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는 4년마다 숙명처럼 경우의 수를 꼼꼼히 따져온 대한축구협회나 스포츠 기자에게 특강이라도 청하든지.

지난 대통령 선거 여당 후보였고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당선된 홍준표씨는 이번에 적용된 선거법의 개정 과정에서 선거법을 개밥그릇 나누는 일에 비유했다. 그의 말대로 선거법이 개들에 개밥그릇을 나누어 주는 방법을 정하는 일이라 쳐도 개 주인인 국민은 어떻게 하면 어느 개에게 어느 정도 크기의 밥그릇이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개 주인은 그냥 사료의 양만 정하면 되고 나머지는 개들끼리 알아서 나누어 가지겠다”고 덤빈다면 개 주인을 무시하는 처사다. 무례하고 교활하다.

보통 사람은 직접 경험하면서 깨닫고, 현명한 사람은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도 깨닫지만 멍청한 사람은 경험하고도 깨닫지 못한다 했다. 무릇 선거법이란 지금 활약 중인 직업정치인들에게 밥그릇을 효율적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국민들의 뜻을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기본에 충실하게 이 누더기 선거법을 하루빨리 개정하기 바란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행정부나 사법부의 절반을 조금 넘는 24% 수준으로 나타났으니 이 조사는 상당히 타당하다. 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그런데 제대로 된 법이라야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바로 설 수 있다. 입법권이 중요한 이유다.

박한규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webmaster@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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