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경 사유를 왜 묻나"... 대법원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설문조사' 논란
"감경 사유를 왜 묻나"... 대법원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설문조사' 논란
  • 장한지 기자
  • 승인 2020.03.26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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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들 "설문 선택지, 아청법 형량보다 낮아... 중대성 인식 못해" 비판

[법률방송뉴스] 텔레그램 'n번방'을 활성화시킨 닉네임 '와치맨' 전모(39)씨에 대해 검찰이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에 대해서까지 성적으로 착취한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죄질에 비해 구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인데요.

우리 법원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에 대해 어느 정도 수위로 처벌을 하고 있을까요.

대법원이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재검토한다고 하는데, 검토 과정에서부터 과연 적절하게 양형기준을 재설정할 수 있을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장한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대법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관련 가장 최근 판결입니다.

2년 전인 2018년 9월 확정된 대법원 판결문입니다.

아동·청소년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하고 배포한 혐의입니다.

피고인 A씨는 18살의 여학생 B양에게 68만원 상당의 동아리 회비를 분실한 것을 알고서는 이른바 '작업'을 했습니다.

B양에게 "68만원을 지급할 테니 시키는 대로 교복을 입은 사진과 나체 동영상 등을 찍어서 보내라, 나중에 스폰서도 해주겠다"는 취지로 제시한 겁니다.

이렇게 B양에게 교복을 벗거나 혼자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 등 성착취 동영상 6개를 촬영하게 한 A씨는 해당 영상을 카카오톡으로 다른 사람에게 배포하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미성년자 여학생에게 큰 상처를 준 A씨에 대해 1심은 징역 3년을 선고했고, 2심은 징역 2년 6개월로 다시 6개월을 감형했습니다.

"피고인은 1992년생으로 아직 젊고 범죄전력이 없으며 피해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이 2심 재판부가 밝힌 감형 사유입니다.

대법원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대법원은 다음달 20일 양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1조에 대한 적절한 양형기준을 논의합니다.

이 양형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대법원은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1심 판사들을 대상으로 해당 법조항에 대한 적정 양형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설문조사 질문과 문항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젠더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법원 관계자]
"아동·성착취 관련 법관들이 글을 올린 게 이게 법관 판사들 커뮤니티, 젠더법 커뮤니티 거기에 올라온 글이라서..."

설문조사 문항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이나 판매, 유포, 소지 등 각각의 사례를 주고 판사들이 객관식 선택을 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SNS 통해 알게 된 13살 여아에게 카메라 앞에서 성행위를 하게 하고 그 장면을 녹화한 피고인이 있다. 이 범죄사실에 대해 가장 타당한 형을 선택해 달라"와 같습니다.

현재 아청법 11조 1항은 미성년자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청법 11조 2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미성년자 음란물을 판매·대여·배포·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운반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성년 음란물 제작의 경우엔 하한이 5년인데 대법원 양형위 설문조사엔 양형 보기로 징역 2년 6개월 이상부터 9년 이상까지 제시돼 선택지 10개 중 5개가 5년 미만의 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무기징역은 선택지에서 아예 없습니다.

설문조사 선택지부터 양형 범위가 지나치게 낮게 제시가 됐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입니다.

이와 관련 젠더법연구회 A 판사는 "(이번 조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중대성과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설문 내용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B 판사도 "아동에 대한 현실공간에서의 성착취 및 가상공간에서의 성착취 영상 범죄가 피해자에게 가하는 피해의 정도를 고려할 때, 보기로 제시된 양형의 범위가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승재현 /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판사들에게 양형의 케이스를 줄 때에도 구체적인 디테일한 정보를 줘야 하지 않느냐, 새로운 형태의 새로운 범죄라면 기존에 있는 전례를 고려하지 말고 이 범죄에 합당한 형이라는 게 국민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잖아요."

설문지에서 아동 피해자의 처벌 불원이나 의사능력 있는 피해 아동의 승낙 등 '감경 사유'를 포함한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작량감경을 통한 '솜방망이 처벌'이 재탕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현직 판사의 지적입니다.

[승재현 /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5년 이상의 징역이면 한 번만 작량감경하면 집행유예가 돼요. 그러니까 적어도 법정형은 7년 이상이 돼야 해요. 그래야 집행유예가 안 나올 수 있어요. 적어도 어린아이의 성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영상물이라면."

양형위원회 사이트는 양형위 스스로를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하여 양형기준을 설정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표현대로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기준 설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대법원 양형위가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어떤 양형기준을 설정할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장한지 기자 hanji-jang@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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