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96% '집에서 TV 시청'
"자막이나 수어 통역 등 장애인 배려 없다... 재난방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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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 /그래픽=김현진

[법률방송뉴스] “공연 보러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해설이 없어 이해할 수도 없고, 엘리베이터나 장애인 보조기구 같은 게 마련돼 있지 않아서 공연장에서 이동할 수도 없어요.”

한창 보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 많을 나이, 스무 살의 신체장애인 이혜민씨는 문화·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제약이 따른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에서다.

눈이 보이고 들을 수 있는데도 공연 관람의 제약이 따른다. 시·청각 장애인들은 더 하다. 이들이 공연을 보려면 자막이나 음성 해설 등 ‘공연 관람 편의기기’가 있어야 하지만 공연장에 이러한 서비스를 갖춘 곳은 거의 없다. 장애인 배려석이나 점자안내와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24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및 문화·예술 사업자는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장애인이 차별 없이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지만 구체적인 의무 규정은 없어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문화활동(중복 선택)으로 조사대상 9만 1천 405명 가운데 6.4%가 ‘문화예술 공연 관람’을 했다고 밝혔고 96.6%가 ‘집에서 TV 시청’을 꼽았다.

100명 중 6명이 여가 시간에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관람이 포함된 문화예술 관람을 제외한 문화예술 참여활동은 장애인의 3% 미만이 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3년마다 장애인들의 문화활동 실태를 조사한다. 3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사대상 10만 4천 703명 가운데 8.2%가 ‘문화예술 공연 관람’을 했고, 96.2%가 ‘집에서 TV 시청’을 한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국민 1만 498명을 대상으로 국민 여가활동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5.7%가 TV 시청을, 21.1%가 문화예술 관람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공연장 관계자는 “장애인을 위한 관람 편의기기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사실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지원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애인은 ‘TV 시청’ 그마저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시각 장애인의 경우 수어통역이 없으면 방송을 시청할 수가 없고, 청각 장애인의 경우 자막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

박승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뉴스 전문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고 요즘 인기 있는 채널은 볼 수가 없어 방송시청에서의 만족도가 매우 낮다”며 “자막이나 수어 통역 이런 것들이 법으로 의무화가 돼 있지 않다보니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 제52조 장애인의 시청지원 제1항에는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돕기 위하여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한국수어·폐쇄자막·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방송사별로 정해진 비율이 다르고, 비율마저도 상당히 낮다는 것이 박 활동가의 말이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 활동이 매우 열악함을 알 수 있고, 그 원인은 주로 우리 문화예술 환경이 장애인에 대한 물리적인 접근성을 비롯해 정보접근성, 심리적인 측면 등이 미흡한 점 등 많은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적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문화 소외계층인 장애인의 문화 향유를 위한 문화계의 관심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TV 시청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배려해야 할 재난 뉴스에서조차 장애인은 배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40조에 따른 재난방송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의무편성 비율과 상관없이 무조건 수어 통역 서비스 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4일 강원도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재난이 발생했지만 당일에 수어 통역이 제공된 방송은 없었다. 박 활동가는 “긴급 재난 방송을 공영방송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청각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수어 영상이 전혀 없었다”고 박승규 활동가는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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