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내 선배 간호사들의 후배 상대 집단 따돌림 가리키는 말 '태움'
“집단 내 위계질서 내세워 '직장 괴롭힘'으로 변질됐다” 지적 이어져
“집단 괴롭힘 입증자료, 자살 인과관계 증명돼야 손해배상 청구 가능”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설 연휴 기간에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이 병원 내 간호사들의 집단 따돌림, 이른바 '태움'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와 파장이 커지고 있다. 

19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A병원 여성 간호사 박모(27)씨가 지난 15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박씨가 거주하던 이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해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박씨의 남자친구라고 밝힌 B씨는 간호사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려 박씨가 숨진 것은 선배 간호사들의 괴롬힘이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B씨는 이 글에서 “여자친구의 죽음은 그저 개인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간호부 윗선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 여자 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태움’이란 병원 내 선배 간호사들이 후배를 상대로 하는 폭언·폭행·따돌림을 가리키는 말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다. 병원 현장에서는 신규 간호사의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영혼까지 태울 정도로 무섭게 교육한다'는 취지로 쓰이지만,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과 마찬가지 의미라는 것이 일선 간호사들의 말이다.

B씨는 "여자친구가 숨지기 전날 메시지로 '큰일 났다. 무섭다'고 불안해했다"며 "2년 동안 만나면서 그렇게 무서워하던 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박씨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됐고 성적도 우수해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박씨의 휴대폰에 남아있는 메시지와 메모 등을 확보해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태움이 간호사 집단 내 위계질서를 내세워 '직장 괴롭힘'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직장 괴롭힘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을까.

직장 내 괴롭힘은 민사적으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입장이다.

신유진 법률사무소 엘엔씨 변호사는 “직장 괴롭힘을 금지하거나 예방을 의무화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형사처벌이 가능하려면 협박, 모욕, 명예훼손 등 구체적 행위가 입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처벌이 가능하려면 형법이나 특별형법에 규정이 되어 있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선배 간호사의 가르침 과정에서 모욕을 했다거나, 집단적으로 따돌린다는 행위로 수군거리거나 없는 말을 한다면 명예훼손은 가능하다. 혹은 협박죄도 형법으로의 적용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또 “태움 문화와 같은 이런 ‘관행’은 명백하게 법질서에는 위반되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내려오던 이런 관행을 입증한다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면서 “이번 사건과 같은 자살의 경우에는 인과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 자살에 이르렀다’라는 법원의 판단이 있어야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변호사는 “직장 내에서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징계처분이 없었다면 사업주가 책임을 지게 되는 문제도 있다”면서 “만약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를 알고 있었는데 합당한 처분을 하지 않았다면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이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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