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법률방송뉴스]

"문재인 정권의 무리한 사법부 장악의 결과."

"수사 맡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부터 입장 밝혀라."

2017년 2월 불거진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은 전·현직 법관 100여명이 수사 선상에 오르는 등 사법부에 깊은 상처와 혼란을 남겼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판결은 1심 결과지만, 전직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을 먼지 털듯 재판에 넘길 사안은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민망하거나, 복잡하거나... 평가 물어보니 딴소리하는 정치권

이번 사건을 최초로 고발했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늘(29일) MBC 라디오에서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를 뒷조사했다는 건 인정됐는데, 판결 내용은 양 전 대법원장은 몰랐다는 것"이라며 "정말 비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했는지 여부가 핵심입니다.

2017년 2월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던 이 의원이 양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 연구회를 견제하라는 지시를 받고 사직서를 내면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이 의원은 "법원행정처는 법원장의 비서 조직이고, 이 조직에서 양 전 대법원장 수족 역할을 했던 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 판결에 대한 공식 논평 등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양당 대변인은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관련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애포 사안 자체가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법원을 찾은 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건화됐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법농단 의혹은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장악을 위한 과정이었다는 겁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문재인 정권 때 정치적 판단으로 마구잡이 정치 수사가 이뤄진 것"이라며 "당시 야당(자유한국당) 대표로서 그분들을 도와주지 못한 걸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기소한 검찰 수사 라인에 초점을 두고 이번 판결에 대한 평가보단 현 여권 지도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3차장 검사이자 수사팀장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부터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국민과 언론은 지탄할지라도... 수도승 생활한 재판관들

꼬박 5년이 걸렸던 이번 재판.

한때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며 사법행정권 남용 여부에 대한 첫 법적 판단으로 주목받았지만, 어느새 '재판 지연의 교과서'란 비판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검찰에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치 아래 특수부 검사 30여명이 투입돼 8개월간 수사를 벌였습니다.

47개 혐의에 전부 무죄가 선고되자 사정(司正) 수사 명목으로 정책적 판단에 직권남용죄의 칼날을 들이대는 검찰 관행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에 대한 이들의 노고를 기억합니다.

공판준비기일 포함 290차례의 공판, 증인만 200명, 수사기록은 20만쪽에 달했습니다.

재판부는 3200쪽의 판결문을 써내려갔습니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 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에 대해선 3년 동안 수도승 생활을 한 재판부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 사건은 본래 형사 35부(박남천 재판장)에 배당됐습니다.

박 부장판사는 검찰 제출 증거를 꼼꼼하게 따지는 유형이라, 당시부터 무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 2월 부임한 박 부장은 2021년 2월 서울중앙지법 재임기간 3년을 채웠지만, 이후에도 재판 기일을 잡아 놓는 등으로 재판에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은 '중앙지법 3년 재임' 원칙에 따른다며 박 부장을 서울동부지법으로 전보시켰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 '임종헌 재판부' 윤종섭 부장판사가 유례없이 6년째 중앙지법에 잔류한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현재의 35-1부는 박 부장의 전보에 따라 당시 중앙지법에 새로 전입한 세 부장판사로 꾸려졌는데, 이들은 3년동안 중앙지법 공식행사나 비공식 모임에도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건 특성상 동료나 선·후배 판사가 피고인이자 증인이라 재판부로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엄격히 처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인이나 재벌 등의 거물급 형사 사건을 맡는 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과거에는 '엘리트 코스'로 통했지만, 현재는 '기피 부서'로 통합니다.

내용이 어렵거나 정치 세력으로부터 공격받기 쉬운 사건을 맡지만, 김명수 대법원에서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 등을 없애면서 그에 따른 보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2년만 재임하면 같은 법원 내 다른 재판부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35-1재판부는 지난해 2월 재임 2년을 맞았지만, 모두 잔류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수천장에 달하는 판결문과 기소 후 선고까지 기간만 1810일이 걸린 역대급 사건의 1심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두 쪽으로 갈린 사법부... "조희대 대법원장 리더십 필요"

사법농단 의혹의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건 이후 법원 내 실력 있는 법관이 대거 법원을 떠났습니다.

유능한 법관들이 떠나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려 해도 선택의 여지 자체가 없어진 상황일 정도라고 말합니다.

사법농단 의혹 대처 과정에서 법원은 사실상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형사처벌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내부 징계와 인사 조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쪽과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쪽이 부딪혔습니다.

김 전 대법원장은 2018년 6월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엇고, 사법농단 의혹 제기와 확산에 앞장섰던 판사들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입성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이탄희 의원과 이수진·최기상 의원이 법복을 벗고 정치에 입문했고, 김형연 전 판사는 사표 제출 이틀 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법원 안팎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 리더십이 중요해졌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이 전임 대법원장들의 잘못은 개선하고, 법원 내 갈등을 치유·봉합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김 전 대법원장 체제와 달리 법원행정처 역할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대법원이 일선 법원의 재판 지연을 방치하다시피 해선 곤란하다는 시각입니다.

수평적 문화를 강조했던 김 전 대법원장 체제의 문제점을 정확히 분석해 열심히 일하는 판사를 독려하고 재판 지연을 개선하는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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