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를 상대로 한 개인 창작자의 저작권 침해 주장과 판결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달걀을 바위에 던지면 달걀만 산산조각 날 뿐이다. 아무리 맞서도 이길 수 없는 경우를‘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한다. 우리는 거대하고 힘이 센 조직과 맞서 싸우는 개인을 향해 이 비유를 사용한다.

지상파 방송사는 미디어 권력의 정점에 있다. 가히 ‘바위’라 부를만한 존재다. 이 바위에 불만이 많은 ‘달걀’들은 여러 종류가 있다.

잘못된 보도로 명예가 훼손된 개인이 있을 수도 있고, 처우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근로자가 있을 수도 있다. 필자는 2년 전 여름, 주식회사 문화방송(이하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이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꽤 단단한 달걀을 만났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며 한복을 입은 흑인·백인 여성의 대형 그래피티로 유명한 작가 로얄독(Royyal Dog, 본명 심찬양)이었다.

 

■ 반복되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저작권 침해

MBC와 예능 <놀면 뭐하니>의 연출을 맡은 김태호 PD는 2020년 어느 갤러리 카페를 대관하여 유재석, 이효리, 비 등 출연자들이 댄스 그룹 ‘싹쓰리’를 결성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를 44회와 45회에 연이어 방송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각 9.5% 및 12.2%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프로그램은 갤러리 카페에 전시 중이던 로얄독의 대형 그래피티 작품을 전면적으로 프레임에 잡아 무대배경으로 삼고 그 앞에서 출연진들이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래피티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데 있다. 작가 로얄독은 MBC 측으로부터 촬영·방송을 전후로 하여 아무런 연락을 받은 바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인이 우연히 유튜브에서 발견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작품이 허락없이 상업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상황이었다.

사실 지상파 방송사가 타인의 저작물을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부주의하게 이용해 온 역사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건의 당사자들에 국한해도 몇 개의 사례가 있다. MBC와 김태호 PD는 과거 <무한도전>에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개사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지 않아 형사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놀면 뭐하니> 84회차는 2021년 윤직원(윤선영) 작가의 ‘월급쟁이 후회의 삼각지대’ 이미지를 허락 없이 사용했고, 작가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사과의 취지를 담은 입장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창작자들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방송사는 달라진 바가 없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개인 창작자는 본의 아니게 ‘달걀’이 되어버린 셈이다. 작가 로얄독은 이런 상황에서 침해자와 권리자 모두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판례가 만들어지기를 원했다. 필자가 만난 가장 단단한 달걀이었다.

 

■ 작가 로얄독, 저작권을 침해당했음을 판결로 인정받아

소송은 2년이나 걸렸고, 원·피고 사이에 오고 간 서면의 양도 상당했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2민사부(부장판사 이영광)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하며, MBC와 담당 PD가 작가 로얄독의 저작재산권(복제권, 공중송신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법원은‘방송사인 MBC와 담당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다른 사람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각별할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고 설시했다. 그리고 이들은 ‘저작물을 배경으로 촬영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험이 많으므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도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놀면 뭐하니>가 작가 로얄독의 그래피티 작품에 대한 복제권과 공종송신권을 침해하였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MBC 측은 ‘출연자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작품이 포함됐을 뿐이라 저작권침해가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무대의 배경으로 쓰인 저작물의 중요도가 낮다고 볼 수 없고, 노출 분량도 적지 않아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경미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저작권 침해로 배상받을 수 있는 금액은 권리자의 기대에 못 미쳐

방송용 저작물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방송사가 정작 개인 창작자들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볍게 여겼던 사건이다. 방송사든 개인 창작자든 저작권자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다만 ‘체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달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그냥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필자는 작가 로얄독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므로 국내 지상파 방송사의 횡포를 굳이 감내해야만 할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동료 창작자들을 위해 자신이 나서서 본보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강렬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단단한 달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판결에서 인정받은 손해액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저작권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전반적인 경향이다. 저작권 소송은 물품대금청구나 대여금청구 등과는 달리 정량적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금액을 주장·입증한다. 나름대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려 노력하지만, 문제되는 저작물 이외의 여러 요인들이 섞여 상업적인 이익을 창출하곤 하니 정확한 금액을 산출해 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 결국 법원도 최대한 보수적으로 손해액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보수적인 경향은 향후 일반 대중 및 사법부의 인식 변화를 통해 조금씩 바뀌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거대한 콘텐츠 권력에 계란을 던진다. 균열을 내지 못하고 그냥 노크 정도에 그칠지 몰라도 저작권에 기한 문제제기를 계속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도 덩치에 걸맞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조직으로 변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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