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품 절도의 다양한 이유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지난 8월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불리는 영국 최대 국립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이 근속 30여 년의 직원에 의해 무려 2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절도를 뒤늦게 발견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세계에 전해졌다. 박물관의 명성과는 달리, 내부 보안 시설이나 소장품 목록 관리 등 실제 전시물 관리는 엉망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도난된 유물은 주로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작은 조각들인데, 이 중에는 3,500년 전 보석류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훔쳐서 내다 팔아도 티가 나지 않을 물건을 중심으로 절도 행각을 벌인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박물관(미술관) 절도 사건 중에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곧바로 들통나고 말 것 같은 작품을 훔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예술품은 왜 훔치는 걸까? 내다 팔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필자는 그 이유를 ①경제적 절도, ②정치적 절도, ③개인적 절도, ④도무지 알 수 없음, 이렇게 네 가지 정도로 나눠봤다.

■ 경제적인 이유의 절도

유명한 그림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단순히 남의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노트북을 훔쳐다가 파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누가 언제 그린 그림이고, 지금까지 누구의 손을 거치고 있었는지 대개 구체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우 유명한 그림이 도난당한 즉시 다시 시장에서 유통되는 일은 흔치 않다.

돈을 목적으로 훔친 것이라면 많은 경우 작품은 지하 세계를 전전한다. 지하 경제에서 화폐의 대용물이나 담보물로 이용되기도 하며, 국경을 넘나들며 이른바 ‘돈세탁’의 수단으로 쓰인다. 범죄자들은 훔친 작품을 다른 중개매매상이나 경매 회사에 판매하여 불법적인 대가를 얻는다. 이를 숨기기 위해 그 돈으로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다른 작품을 구매하고 되파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범죄와 무관한 듯한 자금을 만든다.

이렇게 지하 세계를 전전하던 작품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없어진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등장한다. 시간이 오래 흘렀기 때문에 대부분 이 작품이 도난품인 줄 모르고 구매한 선의취득자가 최종적으로 소유권을 얻게 될 가능성이 있고, 그들에 의해 작품은 합법적인 예술품 시장에 안착한다. 설혹 그 작품이 오래전 도둑맞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절도범을 찾기는 어려워지고, 아예 공소시효가 지나버리기도 한다.

지하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보다 더 노골적인 방식도 있다. 예술품 소유자나 도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작품을 돌려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방법, 즉 ‘예술품 납치(art-napping)’이다. 절도범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훔친 작품을 불태워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는데, 보험회사에 대해서는 작품이 끝내 소실되었을 때 그들이 소유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거액의 보험금보다 적은 금액을 ‘몸값’으로 요구하므로 종종 이런 방식의 범죄가 성공하기도 한다.

■ 정치적인 이유의 절도

예술품 절도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1911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루어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절도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난 사건일 것이다.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당시 용의자로 붙잡혀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모나리자>는 2년 뒤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발견된다. 범인은 이탈리아 출신의 전직 루브르 박물관 직원인 빈센초 페루자인데(그가 작품 보호액자를 제작한 유리공이라는 얘기도 있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에 작품을 팔려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예술품들 약탈해간 것을 복수하기 위해 이러한 범죄를 계획했으며, <모나리자>를 훔친 것은 조국인 이탈리아에 이를 다시 돌려놓고자 하는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빈센초 페루자는 조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영웅이 되고, 그때까지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모나리자>는 이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정치적이며 더 파괴적인 행위도 있다. 2001년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의 최고지도자인 물라 오마르의 명령에 따라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불상이 파괴되었다. 탈레반은 전 세계에 테러로 인한 공포와 경악을 확산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확대할 목적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인질로 삼았다. 그리곤 이를 보란 듯이 파괴해 세상을 경악에 빠뜨렸다. 예술품, 특히 문화재는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악용하는 수법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그림을 훔친다면 바로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것일 공산이 높다. 그림이 유명할수록 ‘선의취득’제도에서의 취득자의 선의(도품인 줄 몰랐다는 것을 의미) 요건을 갖출 가능성은 줄어드는 반면, 그 그림을 인질로 삼은 정치적 주장의 파급력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앞서 1911년의 <모나리자> 절도 사건은 아마도 당시에는 그 그림이 지금만큼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도범이 과감하게 피렌체의 미술관에 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사적인 동기의 절도

특정 작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간직하며 혼자 보기 위해 절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소장목적 절취행위’의 유명한 예로 클로드 모네의 <푸르빌 해변> 사건을 들 수 있다. 2000년 폴란드 포즈난 국립미술관은 도난된 후 10년 만인 2010년 1월 <푸르빌 해변>을 되찾았다. 범인은 범행 당시 액자에서 작품을 오려내고 복사본으로 바꿔 걸어 놓았다고 한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남겨진 지문 등을 분석해 용의자의 신원은 확인했지만, 그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오랜 기간의 추적 끝에 붙잡힌 범인은 41세의 남성으로 모네의 작품을 경외하다가 그와 같은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자백했다.

훔친 작품을 팔아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이 소장하고 감상하기 위한 절도의 경우, 결코 유통시장에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영영 그 행방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이유를 알 수 없는 절도 사건

1997년 2월 22일 이탈리아 북부 도시 피아젠차의 리치 오디 미술관 내 전시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 23년만인 2019년 12월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경우인데, 발견된 곳이 작품을 도난당한 바로 그 미술관 외벽 속의 작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원사가 미술관 건물 벽을 덮은 담쟁이덩굴을 제거하다가 네모난 모양의 작은 금속 문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검은 쓰레기봉투에 담긴 그림을 찾아냈다.

1997년 절도범들은 지붕의 채광창을 통해 갤러리에 진입하고 나중에 지붕을 통해 달아난 것으로 추정했다. 그 이후로 23년이 다 되도록 절도범이나 없어진 이 그림에 관한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절도범들이 시간이 흘러 수사당국이나 언론의 관심이 희미해지면 나중에 찾아가려고 바로 그 미술관에 숨겨놓았던 것 같다고 의심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단지 자신들의 절도 실력을 과시하거나 장난으로 ‘등잔 밑’에 숨겨놓은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2020년 초 최종적으로 진품으로 판명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 두 명의 남자들이 자신들이 이 그림을 훔쳤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그들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 그 사건에 대한 조사가 자세히 이루어지지는 않으리라 예상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에까지 후속 보도가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흐지부지 끝나고 만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미술품을 훔치는 이유는 이렇게 다양하지만, 처벌은 대개 ‘절도죄’가 적용된다. 증거에 의한 사실인정의 문제가 남을 뿐, 특별한 법이론적인 논란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 편이다. 문제의 작품을 무사히 회수할 수 있는지가 더 큰 관심거리이다. 언론에서도 유명한 전시 기관의 절도 사실은 대서특필하지만 실제로 작품이 회수되는지 등 후속 보도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 듯하다. 궁금한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바로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바로 여러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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