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변의 국제법 이야기] 김익태 미국변호사(CIL 외국법자문 법률사무소 대표)는 미국 형사법원 국선전담변호사, 헌법재판소 연구원, 통상교섭본부 자문위원 등을 지낸 외국법자문사입니다. 복잡한 국제 법적 분쟁(국제 형사, 민사, 가사 등)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을 실무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5년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목격했던 미국사회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영어 사용의 확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혼과 일인 가구의 증가, 반려동물의 일상화 등은 처음 미국에서 느꼈던 문화적 이질감을 고향에서 다시 느끼는 데자뷰 같은 상황이었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카피하는 우리사회가 미국사회를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좋은 점은 닮아도 되겠지만, 나쁜 것도 닮아간다.

그중 하나가 최근 불거지는 마약의 보편화이다. 과거에는 특정집단의 전유물이었던 마약이 일반대중과 젊은 층에 게까지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마약 범죄에 대한 사법적 대처가 임박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미국 형사법원에 근무할 때 마약 전속법정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잘 사는 나라의 청년들이 왜 마약에 취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잘 사는 건 기업과 소수의 부자이며 이미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던 당시, 대부분의 미국 청년들은 대학졸업과 함께 학자금 대출과 취업에 발목 잡혀 경쟁과 빈부격차의 풍랑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미국에서 10년정도 산 이후였다.

재범이 보편화 되는 마약 범죄는 사법당국으로서도 골치거리이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의 관심과 전문적인 치료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자발적으로 치료 기관에 입소하는 경우 처벌을 면해주는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연방 국가인 미국에서 각각의 주는 독립된 사법체계를 운영하기 때문에 치료 또한 주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주정부나 민간단체등에서 운영하는 치료 기관은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구설이 많았다. 결국 효과적인 치료 기관을 찾아내고 본인이 진심으로 치료에 임하는게 관건이었다. 이에 관한 오래된 사례를 소개한다.

“미스터 킴, 잠시만요.” 오전 스케줄에 밀려 서둘러 샌드위치를 픽업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나를 누군가 부른다. 단정한 외모와 교양 있는 말투 때문에 인상이 남아있던 L양의 어머니였다. “죄송합니다. 점심시간이신 줄 알지만 마음이 급해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잠깐만 시간을 내 주시면 안될까요?” 나의 점심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 절박해 보였다. 그리하여 더운 여름날, 누런 샌드위치 백을 들고 서서 L양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L양은 마약소지 재범자로 체포된 나의 의뢰인 이었다. 워낙 경찰의 물증 확보가 철저 했고 L양 또한 이미 유죄를 인정하기로 한 상태라 사실상 나로서는 검사와의 협상을 통해 좀더 나은 구형을 확보하는 것 이외에는 별반 할 일이 없던 상태였다. 미국의 형사사건은 유죄를 인정할 경우 형량을 깎아주는 플리바겐(Plea Bargain)이라는 제도가 있다. 바겐세일도 아니고, 형량을 깎아 준다는 흥정이 우리 눈에는 이상할 수 있지만 실용주의 문화권인 미국에서는 사법적 효율이라는 목적 하에 자리 잡힌 제도이다.

L양의 어머니는 말한다. “아시다시피 제 딸은 점점 심한 마약 중독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 고운 얼굴이 점점 추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L양이 이전에 어땠는지 알 수 없었지만 눈에 띄게 미인이었던 그녀의 눈빛이 참 불안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감옥에서 나간다 하더라도 또 다시 마약사범으로 잡혀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어머니는 일리노이주의 인접 주인 위스콘신(Wisconsin)주에 소재한, 한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여성전용 마약 치료소와 관련한 자료를 꺼내 보이며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일반 치료사와는 달리 종교적인 접근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 다녔던 L양 에게는 효과적일 것이며 무엇보다 여성전용 기관이라는 점이 어머니에게 어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치료를 목적으로 마약사범을 타 주로 보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감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 판사와 검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는 것뿐이었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 덕인지 판사와 검사는 L양을 위스콘신 주로 보내는 데에 동의했고, 사건은 그렇게 어머니의 정성으로 좋은 결실을 보는 듯 했다. 남은 것은 일주일 후로 잡힌 선고공판 뿐이었다.

선고공판을 하루 남긴 오후 L양의 어머니의 긴박한 전화가 나를 긴장시켰다. 이틀 전 L양이 보석금을 내고 감옥에서 나갔다는 것이었다. L양의 친구들이 돈을 모아 그녀를 빼낸 것 이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L양이 다시 친구들을 만나 마약에 빠져있다면 그녀가 선고 공판에 불참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수배자 신세로 다시 잡혀와 모처럼 공들여 만든 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또한 시간 문제였다.

드디어 공판일. 삼십 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그녀를 초조히 기다리던 나와 어머니에게 검사가 다가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영장을 발부하겠다며 돌아섰다. 바로 그때, 어머니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L양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잠깐만요! 지금 그 애가 저기 오고 있어요.” 달려가는 어머니를 보고는 L양도 달려온다. 그러고는 서로 말없이 한참을 부둥켜 운다. 지켜보는 나도 괜스레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도 붉어진다. 미국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결국 그렇게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돌아온 L양은 치료소로 보내졌고, 이 사건을 통하여 당시 마약 사건에 관한 신축성 있는 법 적용이라는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었다. 한국 어머니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었는데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이렇게 보편적인 것이며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힘이었다.

그 이후 L 양의 삶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개선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다시 법원에 돌아오지 않은 것은 기억한다. 성인이 되면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거리를 두는 미국사회에서 드물게 경험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계속되었다면 L양의 삶은 변했을 것이다. 마약을 위시한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생각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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