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변의 국제법 이야기] 김익태 미국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미국 형사법원 국선전담변호사, 헌법재판소 연구원, 통상교섭본부 자문위원 등을 지낸 외국법자문사입니다. 복잡한 국제 법적 분쟁(국제 형사, 민사, 가사 등)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을 실무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
김익태 cil 외국법자문 법률사무소 대표

기독교 경전인 구약성서는 여러 개의 작은 소재를 담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단군신화 플러스 삼국사기 같은 책이다. 여기에 “룻기” (룻의 기록) 라는 짧은 책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타민족 출신인, 그것도, 여성이 책의 주인공이니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편찬이다. 기록에 의하면, 룻 이라는 여인은, 이스라엘인 남편과 사별하고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나, 시어머니를 모시고, 밭에서 추수 후 남은 이삭을 주워 가며 힘겹게 살았다.

하지만, 가난한 여인의 삶은 반전이 있었다. 이 여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되고, 다윗의 자손인 예수의 조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주민 여성이 일국의 가장 귀한 이름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는 여자의 이름 중 “루스(Ruth)” 가 제법 있다. 국내에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의 주인공이자 2020년 타계한 미국의 진보적 여성 대법관의 이름도 “루스 긴스버그 (Ruth Ginsburg)”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동력에는 여성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미군이 한국에 들어왔고, 미군기지가 상주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가난한 집을 떠나 미군과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이들은, 가난한 조국에 남겨진 가족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기도 했고, 가족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일세대 미주한인인구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양색시”라 불리우며 멸시를 받기도 했고 심한 경우에는 호적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산업화 시기였던 1970년대 시골에서 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서울의 하꼬방에서 미싱을 돌리던 누이들의 아픔이 고도성장의 그늘이었다면, 미군과 결혼하여 이민간 한인여성들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1960년 ~ 1970년대 가장 많이 이주했던 미주한인 1세대는, 시간이 지나 이제 세상을 떠날 때에 이르렀다. 대부분은 배우자나 자녀를 남기고 세상과 이별하지만, 현지에서 재산을 물려줄 가족들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사슬에서 제일 약한 고리였던 이주한인여성들이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남편과 새로운 문화에서 살아내야만 했던 현실을 생각하면 이들이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지 못하고, 홀로 남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현지에 상속할 자녀나 배우자가 없는 이들은 한국에 있는 친족들에게 상속을 하게 되며, 이런 경우가 국제상속에 해당한다.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이니, 다소 특이한 경우인데,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에 기인한 바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수한 상속은, 국제결혼을 통한 이민 1세대 여성들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된 지금, 향후 5년에서 10년간은 지속되리라고 예상한다.

말 그대로 국제상속이니 그 절차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우리의 상속제도와는 다르게, 법원을 통해서 프로베이트(Probate)라 부르는, 상속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상속 금액이 크지 않을 경우, 그 절차가 간소 하지만, 크든 적든 법원을 통해서 상속 절차를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만 상속이 집행된다. 한국의 경우, 요즘은 원스톱 서비스로 조회하면, 고인의 모든 재산 관계가 나오고, 상속인들 (자녀나 배우자)간에 협의를 통해서 재산을 분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국의 모든 상속은 원칙적으로 법원의 허가를 통해서만 이루어 진다. 나라가 크고 주별로 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전국민의 재산을 전산화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상속은 유언장 (Will)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우리 에게도 익숙한 유언장의 역할은, 피상속인 (고인) 사망 시 고인의 재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사회에 환언을 할 것인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속을 할 것인지 여부가 유언장의 내용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언장의 내용이 절대적이다.

적법한 유언장은 상속법원 (Probate Court)에 제출된 후, 유언장에서 지정한 상속관제인 혹은 집행인 (administrator, personal representative 혹은 executor 로 불리움)을 통해서,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고, 고인의 유언대로 집행이 된다. 이 과정은 통상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데, 이는, 고인이 채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채권자에게 상속개시에 대해서 공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무가 있을 경우, 채권자는 상속절차 중 채권변제를 요구할 수 있다. 설령, 채무가 없더라도 절차 상, 채무의 존재 여부는, 공시 후 일정한 시간을 두고 확인해야하기 때문에 이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채무가 없다면, 유언장에서 명시한 유산을 확인하여 유언장에 의하여 집행하게 된다. 명료한 절차이다.

하지만, 유언장이 없는 경우 (intestate)는 좀 복잡하다. 상속인을 확정하고 재산관계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속인은 배우자와 자녀가 일 순위인데, 일반적으로, 배우자가 1/2 그리고 자녀가 나머지 1/2의 1/n을 상속한다.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경우, 부모가 상속인의 지위를 갖게 된다.

만일, 피상속인 사망 시, 부모도 이미 사망했을 경우, 남아있는 친족에게 상속이 확대된다. 영화에 나오는 오지의 먼 친척을 찾아 나서는 상속변호사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되며, 한국에 있는 친족에게 상속되는 경우가 이 경우이다. 이때, 친족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결혼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때문에 호적에서 제외된 경우 등이 발생할 경우, 입증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상속인의 지위가 확인되면, 재산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한데, 유언장이 없으면, 재산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않다. 집과 같은 부동산은 비교적 쉽게 파악되지만 예금과 같은 동산은 개인정보이므로 파악이 용이치 않다. 한국처럼 국세청 원스톱 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연방국가이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다. 필요한 경우에는 탐정의 도움을 받아서, 재산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재산관계가 파악되면, 이후의 과정은 유언장이 있는 경우와 같은 절차를 통해서 상속이 개시된다.

이 모든 절차는 변호사가 처리한다. 어떤 경우에는 변호사가 재산을 찾아 주기도 하고, 상속집행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소 복잡할 수 있기는 하지만, 변호사에게 맡기고 고인의 뜻대로 상속받고 잘 쓰면 된다. 생과사의 갈림목에서 떠날 사람에게는 짐겠지만, 남은 사람들에겐 귀한 식량 되는 것이니, 절차를 이해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때로는 보물섬 찾듯이 지도를 들고 헤매기도 하지만, 은행에 있는 현금이건 부동산이건, 어디 가지 않고 상속인을 기다린다.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상속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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